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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사랑, BIFF와 운명적 만남이 첫 시작이었죠

1997년 BIFF 보며 한국영화 매력에 빠져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 영어 자막번역
한국영화 메신저로 해외에서 더 유명
"명예시민으로 부산 홍보 최선 다할 터"

내용

부산 바다 ‘광안리’를 사랑하고 부산 음식 ‘밀면’을 즐겨 먹는 달시 파켓(48)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가 부산시 명예시민이 됐다.
달시 파켓 교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영어 자막번역에 참여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탁월하게 전달,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달시 파켓 교수와 부산의 인연은 24년 전인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달시 파켓.



∎달시 파켓 부산시 명예시민

부산 바다 ‘광안리’를 사랑하고 부산 음식 ‘밀면’을 즐겨 먹는 달시 파켓(48)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가 부산시 명예시민이 됐다.

달시 파켓 교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영어 자막번역에 참여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탁월하게 전달,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달시 파켓 교수와 부산의 인연은 24년 전인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IFF·아시아영화학교 교수로 부산과 24년 인연

“1997년 영어 강사 일을 위해 한국을 처음 찾았다.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태동한 바로 다음 해였다. BIFF를 통해 처음 만난 한국영화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BIFF가 맺어준 한국영화와의 인연이 어느새 24년이 됐다. 한국영화를 자막 없이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한국 사람이 다 된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도시 부산에 반한 파란 눈의 남자

‘영화 기생충의 번역가’, 현재 달시 파켓 이름 앞에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일반 대중에게 ‘달시 파켓’이라는 이름을 알렸지만 영화도시 부산과 한국영화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데 있어 예전부터 많은 역할을 해 왔다.

그가 하는 일은 영화 자막번역만이 아니다.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 저예산 독립영화제인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 한국영화 소개 웹사이트 ‘코리아필름(Koreafilm.org)’ 대표, 영화평론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때때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영국의 영화 산업지 ‘스크린 인터내셔널’과 미국 영화잡지 ‘버라이어티’ 한국 통신원, 영화 주간지 ‘씨네21’의 고정 칼럼니스트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의 이름은 ‘한국영화 메신저’로 이미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2~3면-메인-달시파켓 교수가 부산아이상영화학교에서 국제 영화비즈니스 아카데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달시 파켓은 영화 자막번역뿐만 아니라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 저예산 독립영화제인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웹사이트 `코리아필름' 대표, 영화평론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때때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사진은 달시 파켓 교수가 부산아시아영화학교에서 국제 영화비즈니스

 아카데미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부산아시아영화학교

 


△부산시 명예시민이 된 소감은.

-영화도시 부산의 명예시민이 되어 큰 영광이다. 부산은 영화 관련 일을 하기 좋은 도시이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촬영 스튜디오 등 영화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바다와 산, 강이 그려내는 다양한 풍경과 과거와 현재의 도시 문명이 공존한다. 영화적으로 매력이 넘쳐나는 도시이다. 영화도시 부산을 알리는 데 힘껏 노력하겠다.


△부산과의 인연은.

-한국의 어느 도시보다 인연이 깊다. 기회가 되면 부산에서 꼭 한번 살아 보고 싶다. 대학원 공부(인디애나주립대 대학원 슬라브어학 전공)할 때 한국인 친구가 많았다. 고향이 부산인 친구와 특히 친했다. 어린 시절부터 매사추세츠 고향을 떠나 아시아에서 살아 보고 싶었는데 부산 친구 영향으로 1997년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에 와서는 고려대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 그때까지도 영화는 취미정도였다. 영화 관련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밤기차 타고 내려와 만난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과 한국영화의 매력에 운명적으로 빠져들게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후 23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찾고 있다. 어느덧 미국에서 살았던 시간과 영화도시 부산이 맺어준 한국에서의 시간이 비슷해졌다.


△부산에서 자주 찾는 장소나 즐기는 음식은.

-BIFF의 발상지인 남포동과 부산아시아영화학교와 가까운 광안리를 자주 찾는다. 몇 년이 흘렀지만 강의를 위해 일요일 밤 기차를 타는 순간부터 사흘간 부산과 만난다는 설렘의 기쁨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밀면 한 그릇은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밀면은 부산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마술 같은 음식이다.


△부산아시아영화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특강을 하고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잡지 기자, 평론가, 코리아필름 대표 등을 하면서 영화인들과 쌓은 인연으로 2017년부터 부산아시아영화학교의 국제 영화비즈니스 아카데미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아시아 영화산업, 영화 장르, 영화법 등의 과목을 강의한다. 교육생의 작품 개발을 지도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촉망받는 영화 인재 발굴에 힘쓰고 있다. 학교에서 배출한 인재들이 칸·베를린·베니스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고 수상했다. 교육생들이 좋은 성과를 거둬 부산아시아영화학교가 명성을 얻고 부산이 아시아 영화교육 메카로 발돋움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어 보람이 크다. 학교가 배출한 학생들이 각 나라 영화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제작자가 돼 다시 부산을 찾는다면 영화도시 부산의 명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올해 강의가 중단돼 안타깝다.


2~3면-달시파켓교수01-권성훈

△부산은 한국의 어느 도시보다 인연이 깊다. 기회가 되면 부산에서 꼭 한번 살아 보고 싶다. 밤 기차 타고 내려와 만난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과 한국영화의 매력에 운명적으로 빠져들게 했다. 
 

△영화도시 부산의 매력은.

-부산은 영화적 상상력과 다양성, 역동성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다이내믹한 도시이다. 영화 관련 인프라뿐만 아니라 송강호, 문소리 같은 배우와 윤제균, 곽경택 감독 등을 배출한 도시이다. 기회가 되면 부산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참여하고 싶다. 물론 부산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겠지만, 도울 수 있는 만큼 힘껏 힘을 더하겠다.


△한국에서 영화인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본 이후 한국영화에 푹 빠져들었다. 1998년, 지금은 부산으로 이전했지만 당시 고려대 근처에 있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일하던 동료 강사분이 개인 사정으로 일하기 어렵게 됐다며 영화 홍보물 번역 감수를 대신할 사람으로 나를 추천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일하면서 고전부터 최신 작품까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그 해 주옥같은 한국영화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 식사’ ‘조용한 가족’ ‘넘버3’ 등 모두가 영화적 독창성이 뛰어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그 영화들을 찾아보니 영어로 된 소개 자료가 없었다. 1999년부터 개인 홈페이지에 한국영화 정보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국영화를 영어로 소개하는 웹사이트인 ‘코리아필름’의 시작이다.


△한국영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데 열심이다.

-‘코리아필름’의 출발은 소박했다. 당시만 해도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찾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박찬욱·김기덕·홍상수 같은 젊은 영화감독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세계가 한국영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코리아필름’이 한국영화를 쉽고 자세하게 소개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외국인들이 관심을 보여왔다. 한국영화 역사, 아시아영화 특징, 부산국제영화제 소식 등도 자세하게 다뤘다. 자연스럽게 한국영화와 세계인을 이어주는 통로로 떠올랐다. 지금은 하루 평균 방문객 2천여 명, 5천 페이지 뷰를 기록하고 있다.


코리아필름을 운영하고 2∼3년 뒤에 영국 런던에 있는 영화 산업지인 ‘스크린 인터내셔널’에서 연락이 왔다. 코리아필름 사이트를 보고는 한국영화 관련 기사를 써달라고 제안했다. 그때부터 6년 정도 한국통신원으로 일했다. 미국 영화잡지 ‘버라이어티’에서도 연락이 왔다. 버라이어티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주로 보는 영화 전문 매체다. 기사 한 꼭지 한 꼭지가 한국영화 홍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성을 다해 관련 소식을 전했다.


△영화는 자주 보는지, 한국영화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1년에 200여 편 이상을 본다. 장르를 구분하지는 않지만 코미디물을 좋아한다. 한국영화는 할리우드와는 다른 에너지가 느껴진다. 미국 영화는 아이러니가 많고 감정선이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영화는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이게 한국영화의 매력이고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인 것 같다.


△‘기생충’으로 일반에 알려졌지만, 많은 영화의 자막번역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홍보물을 감수하면서 영화 자막번역 요청을 받았다. ‘살인의 추억’이었다. 살인의 추억은 공동 번역으로 진행했다. 2014년 부산이 배경인 ‘국제시장’을 기점으로 단독 번역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대부분과 ‘아가씨’ ‘암살’ ‘히말라야’ 등 150여 편의 영화를 번역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은 번역이 한몫했다. 해외 관객이 작품 속 상황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평소에는 번역 수정을 두세 번 정도 하는데 기생충은 일곱 번을 보고, 수정은 더 많이 했다. 미국 사람들은 ‘짜파게티’와 ‘너구리’라는 상품을 잘 모른다. ‘짜파구리’라는 단어 하나를 두고 어떻게 표현할지 몇 시간을 고민했다. 결국에는 모두가 다 아는 ‘라면’과 ‘우동’을 합쳤다. 실제로 영화에서 ‘짜파구리’는 ‘ramdong(ramen+udong)’으로 표현했다. 


영화에서 재학 증명서를 위조한 딸 기정에게 아빠 기택(송강호)이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 없냐?”고 묻는 대사는 서울대를 ‘옥스퍼드(Oxford)’로 바꿔 의미 전달을 한층 높였다.


2~3면-달시파켓 교수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진행되는 AFiS&NAPNet Night 에서 교육생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달시 파켓 교수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진행된 아시아 단편 소개 프로그램에서 교육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영화 자막번역에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영화 자막번역은 책처럼 각주를 붙일 수도, 관객에게 추가 설명을 할 기회도 없다. 번역할 때 원래 대사가 지니고 있는 톤과 뉘앙스,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영화 속 배우들이 하는 대사 길이와 발음까지도 반영한다. 원래 대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넘어서지 않아야 하지만 너무 부족해도 안 된다.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간결해야 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까지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명예시민이 된 만큼 영화도시 부산을 알리는 데 더 많이 노력하겠다. 부산아시아영화학교를 통한 아시아영화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다. 저예산 영화와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이어가겠다.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 시(詩)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 부산시민의 응원을 기대한다.

작성자
조민제
작성일자
2020-05-27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다이내믹부산 제202006호

다이내믹부산 제1883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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