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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 그 역사 속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부산 나들이 - 피란수도 부산 버스 투어

내용

바람 속에 집을 지었다. 산비탈이든 공동묘지든 손바닥만 한 땅만 있으면 군용텐트나 판자로 집을 지었다.

 

펄럭거리는 바람벽에 기대 내일이라는 단꿈을 꿨다. 이것은 불과 68년 전 피란수도 부산의 생생한 민낯이다.

 

망자가 누웠던 좁은 공간에서도 산 자의 행복은 자랐다. 치열했던 삶과 역경, 그 모든 것을 견뎌냈던 부산을 만나는 여행.

 

어떤 곡진한 풍경을 만나게 될지 사뭇 기대된다.

 

 

임시수도정부청사였던 동아대석당박물관.

▲임시수도정부청사였던 동아대석당박물관.

 

 

‘피란수도 부산 버스 투어’는 부산관광공사가 피란수도 부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알리기 위해 지원하고, 부산시티투어전문 여행사 ‘부산여행특공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전문 스토리텔러와 함께 ‘피란수도 부산’의 흔적을 따라간다. 올해 12월 15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30분, 오후 1시 40분,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한다.

오전 코스는 임시수도기념관~임시수도정부청사(동아대석당박물관)~아미동 비석문화마을~천마산로전망대~최민식갤러리. 오후 코스는 1시 40분에 출발해 영도대교 도개 관람~부산항 대교~UN평화기념공원~우암동 소막마을~부산항 제1부두(경유)를 거쳐 출발지인 부산역으로 돌아온다.


6·25전쟁 중 대통령 관저였던 ‘임시수도기념관’은 당시 대통령관저와 피란시절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기념관으로 구성돼 있다.

▲6·25전쟁 중 대통령 관저였던 ‘임시수도기념관’은 당시 대통령관저와 피란시절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기념관으로 구성돼 있다.


피란시절 건물 그대로 … 임시수도기념관·석당박물관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25인승 흰색 버스, 외관이 독특하다. 부산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가득하다. 호랑이와 오리는 안창마을, 그리고 분홍색 돼지는 초량 돼지갈비 골목을 상징한다. 가을비가 거칠게 내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만원이다. 초등학생부터 80대 노부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조합이다.

 

제일 먼저 6·25전쟁 중 대통령 관저였던 ‘임시수도기념관’을 구경한다. 부산은 6·25전쟁 1129일 가운데 1023일간 임시수도였으니 그 시절 정치·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경무대’로 불렸던 ‘임시수도기념관’은 대통령 관저와 기념관으로 구성돼 있다. 대통령 관저는 당시 실내구조와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전시관 건물은 1987년 개원한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로 지어진 단층 벽돌가옥이다. 2012년 전시관으로 거듭났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보통열차’와 지금의 국제시장인 ‘도떼기시장’, 문화예술을 꽃피운 ‘밀다원 다방’ 재현이 인상적이다. 상반된 이념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흑색선전 삐라, 중공군들이 사용했던 컵 그리고 ‘대한도기’에서 만든 화려한 장식용 접시들도 전시돼 있다. 대한도기 공장이 영도에 있다 보니 부산으로 피란 온 유명한 화가들이 고용됐다. 주로 한국의 풍경과 풍속을 그렸는데 화가 ‘이중섭’도 여기에 적을 뒀다.

 

방바닥에는 성근 멍석이 깔려있고 신문으로 도배한 판잣집이 전시돼 있다. 피란민의 생활상이 아프도록 섬세하다. 전시물을 들여다보던 초등학생이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곳에 어떻게 사람이 살았지?”라며 묻는다. 여행이 끝나면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부산의 저력을 저 아이는 눈치 챌지 모르겠다.


공동묘지 위에 지어진 마을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임시수도기념관’을 나와 왼쪽으로 10분 남짓 걸어가면 ‘임시수도정부청사’가 나온다. 지금은 ‘동아대석당박물관’이다.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석당박물관까지 500m 구간은 ‘임시수도기념거리’로 조성돼 있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피란시절 피란민들의 모습을 표현한 벽화와 쪽자를 만들어먹는 아이 조각상, 피란민 조각상 등을 볼 수 있다.

 

석당박물관에는 진귀한 보물급 전시물도 많지만 미국에서 무상원조로 들어왔던 ‘부산전차’를 구경할 수 있어 좋다. 전차노선은 지금의 부산 도시지하철 1호선 정류장과 거의 비슷하다. 다만 영도대교를 지나 영도구로 들어가는 지선이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전차는 대중교통의 시발점으로 1구간에 단일요금 5전을 받았다. 석당박물관 3층은 ‘임시수도정부청사 기록실’로 박물관이 되기 전 건물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임시수도정부청사 시절 사용된 부자재들과 기와 등은 물론 건축 양식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디좁은 골목, 구한말까지 ‘아미골’이라 불렀던 아미동에는 화장터와 공동묘지가 있었다. 아미동 ‘까치고개’는 제사 음식을 먹기 위해 까치들이 많이 모여든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던 이곳은 광복 후 일본인들이 떠나자 움막에 있던 사람들이 평평하게 다져진 무덤 자리에 집을 지었다. 비석과 상석은 훌륭한 건축자재가 됐고, 묘지와 묘지의 경계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골목이 된 것이다. 동네를 둘러보면 구조가 독특한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2층이 1층보다 서너 뼘 나와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피란민들에게는 땅보다 하늘을 가지는 게 쉬웠던 것이다.

 

 

 

사진작가 최민식은 피란시절 부산의 현실을 사진에 담아냈다.

▲사진작가 최민식은 피란시절 부산의 현실을 사진에 담아냈다.


전쟁 상흔 사진에 담은 사진작가 ‘최민식’


비석마을 바로 아래에는 부산 최고의 야경을 보여주는 ‘천마산로전망대’가 있다. 부산의 본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다. ‘천마산로전망대’는 천마산 허리를 휘감아 도는 4개의 도로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높은 만큼 전망도 압권이다. 광안대교, 영도다리, 부산대교, 부산항대교, 자갈치시장·용두산공원·공동어시장·영도·봉래산·북항·남항 멀리 해운대까지 보인다. 그 뒤에 누구라도 공평하게 나아갈 수 있는 바다가 넓게 열려있다.

 

투어버스로 돌아와 피란음식인 주먹밥을 먹는다.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피란수도 부산을 느껴보는 프로그램의 일부다. 피란시절 먹던 주먹밥은 보리가 많이 섞여있어 식감도 거칠고 색도 거무스레했단다. 지금 먹는 주먹밥은 그때의 주먹밥보다 훨씬 맛있지만 그 시절을 상상하며 먹어본다.

 

다음 코스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갤러리’를 찾았다. 부산을 대표하는 사진작가였던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 가진 자의 장식품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 아닌 현실을 찍었다. 자갈치시장 노점, 거리의 부랑자가 모델이 됐다. 전쟁의 상흔을 적나라하게 표현했지만 불씨 같은 희망이 살아 숨 쉬는 흑백사진들. 그의 낡은 카메라와 창작노트에서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받는다.

 

오전 투어가 끝났다. 오전 투어와 오후 투어는 각각 다른 프로그램으로 오전과 오후 모두 참가하려면 각각 신청하고 참가비도 두 번 내야 한다. 하지만 오전 투어만으로는 아쉬워 오후 투어까지 간다.


‘영도대교’는 피란민들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모여들었던 곳이다. 2013년 복원공사를 완료, 하루 한 번 다리를 든다.

▲‘영도대교’는 피란민들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모여들었던 곳이다. 2013년 복원공사를 완료, 하루 한 번 다리를 든다.


피란민 애환 서린 만남의 장소 ‘영도대교’


점심 식사 후, 1시 40분 오후 투어를 시작한다. 오후 투어의 시작은 영도대교 도개. ‘엥~’ 사이렌이 울리고 차단기가 내려간다. 영도대교를 향해 달리던 차들이 일순간 멈춘다. 구경꾼들은 흥분과 긴장 사이에서 숨을 죽인다. 어디선가 거친 기계음이 들리고 다리 난간에 불빛이 반짝인다.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도대교는 무게 590t의 다리를 80도까지 번쩍 들어올렸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굳세어라 금순아’가 1세대 대중가수였던 고 현인 선생의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영도대교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연륙교이자 국내 최초의 도개교다. 1934년 당시 개통식 도개 장면을 보기 위해 6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하루 6번씩 다리를 들어 올렸지만 1966년 영도구의 인구 증가에 따른 교통량 증가로 도개를 중단하게 됐다. 2013년 복원공사를 완료하면서 지금은 매일 오후 2시, 1회 15분간 도개한다.

 

피란민들은 전쟁통에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며 부산에 도착하면 영도다리 위에서 보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운명이 호락호락했을까. 가족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답답했던 사람들은 영도다리 밑 점바치를 찾았다. 피란민 100만여 명의 애환을 상담했던 영도다리 아래 점집은 한때 80곳이 넘었고, 뜨내기 점바치까지 합치면 점집 120개가 성업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장사를 한 점집은 ‘소문난 대구 점집’이었다. 몇 년 전 그 집마저 문을 닫고 영도다리 점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지금은 영도대교 아래 유라리광장에 점바치골목기록관이 들어섰다.

 

6·25전쟁 전몰장병 잠들어 있는 ‘유엔기념공원’


도개 행사를 본 후 ‘유엔기념공원’으로 달렸다.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유일의 성지다. 미국·영국·터키·캐나다·호주·프랑스·네덜란드·남아공·콜롬비아·그리스·에티오피아 등 전투지원 16개국과 의료지원 5개국 전사자 2천 300명이 잠들어 있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정문과 추모관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건축물이다. 정문은 한국의 전통 조형미를 추상적으로 보여줬고, 추모관의 내부는 16개 참전국의 의미를 모두 담아 디자인했다. 다국적, 다종교관을 염두에 둔 외형도 눈여겨볼 만하다. 해마다 11월 11일 11시 11분에 긴 사이렌이 울린다. 그것은 유엔군 전몰장병을 추모하고자 전 세계가 부산을 향해 묵념을 올리기 위함이다.

마지막 방문지인 ‘우암동’은 예전에는 ‘적기부두’라고 불렀다. 소를 닮은 바위가 있어 우암동이라 불렀지만, 바다를 매립하면서 바위는 유실되고, 동네 이름 속에 바위만 남아있다. 우암동 하면 떠오르는 ‘소막마을’. 소 막사에 사람이 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찾아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우암시장’ 맞은편 골목에는 무수히 피고 꺼졌을 희망의 온기가 만져졌다.


‘우암동 소막마을’은 광복 후 사용하지 않던 소 막사를 피란민 수용소로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우암동 소막마을’은 광복 후 사용하지 않던 소 막사를 피란민 수용소로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피란민 수용소가 된 소 막사 ‘우암동 소막마을’


소막마을은 일제강점기 소를 수탈하기 위해 소를 검역하던 축사였다. 소 막사와 소각장 등 40동의 막사가 있었다. 일본인이 물러가자 용도가 없어진 소 막사를 전쟁 피란민 수용소로 사용하면서 소막마을이 탄생했다. 소 막사의 환기통이 불쑥 올라온 모양새나, 높낮이가 다른 지붕을 덧댄 건축형태가 파란의 근현대사를 꼿꼿이 지키고 있었다. 마을 가운데에 자리 잡은 문 닫은 양말 공장은 산업화 물결에 고군분투했을 당시 젊은이들의 땀 냄새가 날 것 같았다.

 

공평하게 나눈 9.9㎡(3평)짜리 집. 같은 우물물을 길어 먹으며 실핏줄 같은 골목을 오가며 정을 나눈 시간들이 신선하게, 때론 끈끈하게 흘러들었다. 늦은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들이치는 마을, 마음부자가 진짜 부자라는 듯 평상에 둘러앉은 어르신들의 표정이 넉넉하다. 소막마을의 일부는 최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우암동 ‘골목시장’에는 ‘부산 밀면’의 효시가 된 4대째 내려오는 ‘내호냉면’이 전국적인 입소문을 탔다.

 

가난과 아픔을 이긴 원동력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부산의 재발견이야말로 우리의 참모습을 만나는 적극적인 여행이다.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가을, 지금의 우리를 데리고 과거의 우리를 만나러 가보자. 잊지 못할 여행될 것이다.

이영옥. 기사 입력 2018-09-28 부산이야기 10월호 통권 144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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