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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서면, 그곳에 부산이 있었다

함께 걷는 부산 길③당신이 몰랐던 서면, 근대산업 유산 추억 길

내용


서면걷기 1 

서면(西面) 이라는 지명은 옛 행정구역인 동래부의 한 면에서 유래했다. 최근에는 각종 상업·금융·의료기관 등이 밀집한 부산 최대의 번화가로 성장했다(사진은 서면 거리를 걷는 시민들). 사진·권성훈


전차·버스·도시철도를 타고, 영화를 보러, 학원을 찾아, 출근을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안고 서면으로 몰려들었다. 도시철도 이용객만 하루 평균 7만6천여 명. 부산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곳.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곳에서 당신이 몰랐던, 또는 잊고 지냈던 서면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본다.

부산사람 자존심, 옛터 지키는 영광도서

영광도서앞 부산탑

영광도서 앞 부산탑 모형.


도시철도 1·2호선이 교차하고 상업·금융·의료기관 등이 밀집한 부산 최대의 번화가 서면. 서면(西面)이라는 지명은 부산의 옛 행정구역인 동래부의 한 면에서 유래했다. 봄날같이 따스했던 2월의 어느 날, 영광도서 앞에서 옛 서면의 기억을 더듬는 도보투어를 시작했다. `영광도서 앞'이라는 간단한 설명에도 참가자들은 누구 하나 헤매지 않고 출발지로 모여들었다.
1968년 문을 열어 1971년부터 50년째 자리를 지키는 영광도서는 이제는 자취를 감춘 동보서적과 더불어 부산을 대표하는 양대서점으로 군림했다. 오랜 세월 동안 영광도서는 누군가에게는 목마른 지식의 창구요, 누군가에게는 만남의 장소로 부산사람들의 삶과 함께하며 부산, 그리고 서면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1980 서면로터리

1980년 10월 서면 교차로 모습. 뒤로 부산탑이 보인다. 사진·국제신문


부산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서면 영광도서 앞에서 김덕숙 문화관광해설사는 우리가 잊었던 첫 번째 서면의 기억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바로 부산탑 모형이다.
"부산탑을 기억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김 해설사의 질문에 몇몇의 손이 수줍게 올라간다. 부산탑은 1963년 부산시의 직할시 승격을 기념해 서면로터리에 들어섰던 부산의 상징물이다. `국민학교'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어쩌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직할시'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할지도 모른다. 1995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부산을 포함해 5개 직할시가 모두 `광역시'로 개정됐다. 영광스러운 우리나라 첫 직할시를 기념하는 부산탑은 1981년 도시철도 1호선 공사로 철거됐으며, 지금은 영광도서 앞에 있는 작은 모형으로 그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직할시의 기억을 품은 부산탑 모형을 뒤로 하고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지나 부산은행 부전동지점 방향으로 향했다. 지금부터는 보물찾기하듯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작은 표지판으로만 남은 소중한 기억들을 더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419진원지비

4·19혁명 진원지 표석.


서면에서 만날 두 번째 기억은 `4·19혁명 진원지 표석'이다. 4·19혁명은 1960년 4월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무너뜨린 민주주의 시민혁명이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반대하며 전국 각지에서 학생시위가 일어났다.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마산상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며 시위는 기름을 부은 듯 더 번졌다. 부산에서는 부산상고·동래고·동성고·혜화여고·데레사여고·항도고·경남공고 등에서 7천800여 명의 학생들이 서면 등 시가지에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의 발포로 경남공고 강수영 열사(당시 17세)를 비롯해 부산에서만 33명이 희생됐다.


경남공고 강수영 열사 추모비

경남공고에 자리한 강수영열사 추모비. 사진· 권성훈

 어쩌면 불의에 항거하는 이 정신은 부산사람의 유전자에 일찍부터 자리 잡아 왔었는지도 모른다. 일제강점기의 노다이 사건, 부산진일신여학교·동래고를 필두로 한 3·1운동, 6월 민주항쟁, 10월 부마민주항쟁 그리고 가장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이 정신은 부산사람과 함께했다. 인파로 넘쳐나는 서면역에서 조금은 한산한 11번 출구 앞. 4·19혁명의 기억은 평화로운 길가에 담담한 세 줄의 표지석으로 남았다.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학생 수천 명이 1960년 3월 이곳에서 여러 번 시위하였고 그 결과 4·19혁명이 일어났다."
 2010.12.3. 설치,  제50주년 4·19혁명기념사업회

원조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스웨덴 참전 기념비

스웨덴병원기념비

스웨덴 참전 기념비. 사진·권성훈


이번엔 지하도를 가로질러 롯데백화점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옆 작은 골목에서 김덕숙 해설사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수없이 지나다니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스웨덴 참전 기념비'가 그곳에 있었다.

6·25전쟁 당시 중립국이던 스웨덴은 인도·덴마크·노르웨이·이탈리아와 함께 우리나라로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스웨덴 의료지원단은 지금의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자리에 스웨덴 야전병원(옛 서전병원)을 열고 1950년 9월부터 환자를 치료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1955년 5월 남구 대연동으로 옮겨 진료 활동을 펼쳤다. 1957년 3월까지 6년 6개월간 총 1천124명의 의료진이 200만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 특히 결핵 퇴치를 위한 BCG 접종과 국립중앙의료원의 탄생 등에 큰 역할을 했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세계 각국의 도움을 받던 작은 나라는 어느새 성장해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했다. 이제는 수많은 `이태석 신부'가 곳곳을 누비며 스웨덴병원에서 받았던 도움을 전 세계로 돌려주고 있다.


`대부',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할리우드·홍콩 키드 낳은 옛 극장가

공구골목

서면공구골목 조형물.


롯데백화점 떡볶이 골목을 지나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넜다. 예전 같으면 지하도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지만 중앙버스전용차로(BRT) 덕분에 복잡한 이 거리에도 횡단보도가 생겼다. 이번에 만날 곳은 `서면 공구 골목'.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주점골목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1960∼70년대 이곳은 하야리아 부대나 전포동 차량 재생창 등에서 나온 최신 부품을 구할 수 있는 인기 장소였다. 1980년대 사상 산업용품 유통단지가 생긴 이후 대부분의 공구상이 이전하고 현재는 맛집과 의류·액세서리 전문점이 가득한 곳으로 변신했다. 골목 한중간 덩그러니 자리한 노란색 공구 모양의 조형물만이 이곳이 예전에 공구골목이었음을 말해 준다.


극장가

엣 극장가 대한극장(현 대한CGV). 사진·권성훈


공구 골목을 지나 쥬디스태화(옛 태화쇼핑) 방향으로 계속 가면 옛 극장가이다. 멀티플렉스가 장악하기 훨씬 전, 서면에는 북성극장, 대한극장(현 대한CGV), 태화극장, 동보극장 등이 자리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각종 영상을 편리하게 볼 수 없던 그 시절, 영화는 최고의 오락거리였다. 클린트 이스트우트의 `황야의 무법자', 왕우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말론 브랜도의 `대부'…. 한류가 생기기 훨씬 전, 할리우드와 홍콩 영화가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극장가의 추억은 이 골목에서 조금만 더 가면 만나는 학원가와도 이어진다. 서면 학원가는 `부산의 노량진'이라 불릴 정도로 공무원 시험 전문 학원들이 많은 곳이다. 그러나 사실 학원가의 시초는 대입 전문학원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산학원·한양학원 등 대형 대입 전문학원들이 이 일대를 채웠다. 부산 각지의 학생들이 서면으로 몰려들었다.


1950년대에 태어난 김덕숙 해설사는 학원에 간다고 하고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를 보다 가족에게 들켰다. 1980년대에 태어난 기자는 시험 기간에 몰래 홍콩 무협영화를 보다 시험을 망치고 서면 단과학원으로 보내졌다. 극장가와 학원가의 영광은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졌다.


피고 지는 부산산업 흥망성쇠, 전차기지터∼동명목재

전차기지

한전 부산울산본부에 자리한 전차기지 터 기념비.


학원가를 지나 한전 부산울산본부로 들어섰다. 전차기지 터가 있는 곳이다. 1915년부터 1968년까지 부산에도 전차가 달렸다. 전차는 일제강점기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편의를 위해 처음 설치됐다. 광복 후 미국 애틀랜타에서 30년 이상 달리던 전차를 무상 원조 형식으로 도입하면서 부산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영광을 누려왔다. 특히 서면은 공설운동장행, 영도행, 온천장행 3개 노선의 출발점이었다. 사람들은 전차를 타고 동래온천, 미화당백화점, 서면 극장가를 돌았으리라. 부산사람의 애환을 싣고 달렸던 전차는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1968년 사라졌다. 부산의 마지막 전차는 동아대 부민캠퍼스에서 영원한 휴식 중이다.


이곳은 부산에서 전력사업이 태동하여 1915년 1월 1일부터 1968년 5월 20일까지 53년간 부산시민들의 삶과 애환을 싣고 달려온 전차기지의 터전으로 개항 이래 부산항과 동래를 잇는 대중교통의 요충지이었는 바 전력사업 100주년을 맞아 이곳에 전차의 상징물을 세워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한전 부산울산본부 전차기지 터 기념비

이번에는 그야말로 표지판도 없이 이야기만 전해지는 부산산업의 흥망성쇠를 돌아볼 차례다. `동천'이라고 애기하면 코를 잡는 시늉부터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금은 하천 정화사업으로 예전보다 덜하지만, 범내골 교차로 인근으르 흐르는 동천은 오염된 도심하천의 대명사였다. 근처만 가도 악취가 풍겨 `똥천'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동천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부산산업을 대표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산항에서 하역한 각종 원재료는 동천 물길을 타고 서면까지 이르렀다. 지금의 부산교통공사 자리에는 합판 수출로 유명세를 떨친 동명목재가, 맞은편 부전우체국 자리에는 현 CJ와 삼성그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일제당이 자리했다.

1925년 제재소로 시작해 1960년대 동명목재그룹을 일궈낸 강석진 회장은 그야말로 부산 상공계의 신화다. 단일품목으로는 국내 최대 수출까지 기록했던 동명목재는 원자재 가격 상승, 무리한 사업 확장, 신군부의 정치적 이용에 따라 1980년 해체됐다. 이후 국제그룹까지 해체되면서 부산 대기업은 오랫동안 기를 펴지 못했다.


삼성의 전신은 1938년 이병철 회장이 대구에서 시작한 삼성상회로 알려졌지만, 본격적인 발전은 서면 제일제당 시절이라 할 수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이 회사 내에서 숙식하며 진두지휘했던 제일제당은 정제 설탕 생산으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정제 설탕이 나온 이후 명절이나 병문안 선물로 설탕이 주를 이룰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제일제당 직원은 임금이 높아 1등 사윗감으로 꼽히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당시 번성했던 부산산업의 흔적은 사라지고 동천의 영광도 잊혀졌다.


은행나무길

은행나무길을 걷는 시민들. 사진·권성훈


옛 제일제당 터에서 뒤편으로 나와 맑은 동천을 기원하는 `동천약어상'을 지나면 탁 트인 보행로가 인상적인 은행나무길이 맞이한다. 주말이면 프리마켓이 펼쳐지고 가을에는 노란 은행잎이 매력적인 길이다. 호젓한 기분으로 길을 걷다보면 경남공고다. 앞서 언급했던 4·19혁명 때 부산 최초로 희생한 강수영 열사의 추모비가 있는 곳이다. 방학이라 어느 때보다 한적한 교정을 지나 추모비 앞에 섰다. 17세. 요즘 같으면 한창 사춘기를 맞이해 반항하고 꿈도 가득할 시기. 젊은 영혼은 자유를 위해 그렇게 떠났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뉴욕타임즈도 인정한 핫 플레이스, `전포카페거리'

전포카페거리

전포카페거리. 사진·누리부산.


경남공고를 지나 최근 서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포카페거리'로 들어섰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곳은 또 어떻게 커피와 인연을 맺었을까?

전포카페거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전후. 초창기 30여 개의 카페로 시작한 카페거리는 원래는 철물점·공구상가 등이 모여 있던 곳이다. 공구 판매가 급감하면서 상가가 문을 닫기 시작했고, 점차 인적이 드물어졌다. 황폐해 가던 이곳에 어느 날부터인가 커피와 디저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카페를 열기 시작했다. 기존 상가의 고풍스러운 느낌을 살려 독특한 내부 장식을 하고, 이색적인 메뉴를 갖췄다. 이곳 카페들은 크지 않다. 테이블 서너 개 정도가 전부이지만, 안락하고 소담하다. 사장님과 도란도란 커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차별화된 분위기, 생소한 메뉴, 오래된 장난감처럼 개성있고 재미있는 모습에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 2017년에는 CNN이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에 선정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커피박물관

커피박물관을 둘러보는 시민들. 사진·권성훈

전포카페거리 한 귀퉁이에 자리한 개인박물관, `부산커피박물관'도 인상적이다. 김동규 관장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진기하고 오래된 커피머신들을 수집해 박물관을 운영하며 가끔 원두 시음회도 연다. 김 관장은 부산이 예부터 커피와 인연이 깊은 곳이라 설명했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을 통해 가장 먼저 커피가 들어온 곳이 이곳 서면 일대입니다. 최근에는 호주 시드니항에 이어 부산항이 커피 물동량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지요. 1위를 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부산에는 최근 이런 개인박물관이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서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젊음의 거리에 자리한 `부산포민속박물관'도 옛것을 사랑하는 관장이 모은 수집품을 무료로 전시한다.


서면로터리 권기학

해질녘, 서면교차로 모습. 사진·누리부산 시민기자 권기학.


골목 한구석, 작은 카페에서 잠시 쉬다 나와보니 거리는 어느새 네온사인이 하나둘 들어와 우리가 아는 익숙한 서면의 모습을 찾아간다. 세월은 매몰차게 노포(老鋪)들을 덥쳤지만 길은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생명력을 발휘하며 변신하고 있었다. 때로는 낙후된 거리가 새로운 중심가로 떠오르고, 오래된 상가는 기호 변화에 따라 커피숍이나 아기자기한 편집숍으로 변화했다. 사람들은 최첨단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대형 쇼핑몰들을 찾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또 소박한 수제품과 빈티지한 멋이 있는 뒷골목으로 모여든다.


쇼핑을 위해, 맛집을 찾아, 친구를 만나러 무심코 들렀던 서면은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모습을 품은 부산 역사의 작은 축소판이었다. 일상의 거리, 표지판이 보이는 어느 한순간 역사 속 그때를 기억해 보자. 풍성한 이야기에 앞으로 서면 방문이 더 즐거워질지 모르겠다.


 글·하나은/사진·권성훈
 해설·김덕숙 부산진구 문화관광해설사


1. `함께 걷는 부산 길'은 시민·해설사·기자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다양한 길을 걸으며 길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 공간입니다. 참여를 원하는 시민은 매월 10일까지 다이내믹부산 편집부(051-888-1291∼8) 또는 이메일(naeun11@korea.kr)로 신청해 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께는 개별로 연락드립니다.
4월호의 걷기 주제는 `동래읍성길'. 코로나19로 인해 취소 또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참가비 무료. 물·간식 등은 개별 지참해야 하며, 우천 시 날짜 변경 가능.
2. 부산진구는 11월까지 주말 `서면에 가면 도보투어'를 운영합니다. 5인 이상 신청하면 진행하며, 소규모 인원은 다른 그룹과 함께 참가할 수 있습니다. 참가비 무료(개별 체험비 별도). 홈페이지 참고. 문의:부산진구 관광과(051-605-4525) 




작성자
하나은
작성일자
2020-03-04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다이내믹부산 제202003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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