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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11월호 통권 133호 호 기획연재

부산 사랑 하나로 지역화랑 한계 뛰어넘다

1999년 개관 … 한국 미술사가 놓친 부산 근·현대미술 집중 조명 ‘꽃피는 부산항’ 올해로 5회째 … 향토작가 발굴 보람 크고 ‘뿌듯’

내용

고풍스럽다. 그림도 고풍스럽고 액자도 고풍스럽다. 세월의 무게감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그림이고 액자다. 1966년 강변 갈대 유화가 있고, 1967년 금정산 유화가 있고, 1969년 돛단배 유화가 있다. 내용도 고풍스럽다. 외갓집 가는 듯한 엄마와 딸, 갓난아기를 업은 여인, 소와 아이들, 흰 접시에 청포도와 복숭아를 담은 단아한 정물이 보는 이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부산 1세대 작가 알리는 일 뿌듯”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2009년부터 시작한 기획전입니다.” 

뿌듯함이랄지 당당함이 밴 말투다. 10년 가깝게 한 길로 왔다는 뿌듯함이고 어려움은 많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는 당당함이다. 일반인에게 생소하다면 생소할 수도 있는 지역작가 전시회를 다섯 차례나 기획한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미광화랑 김기봉 대표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결연함까지 느껴진다. ‘꽃피는 부산항’. 김 대표가 말한 기획전 제목이다. 제목에서 엿보듯 부산을 담았거나 부산에 연고가 있는 작가를 대상으로 한 전시회다. 엇비슷한 전시회는 많지만 미광화랑 기획전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건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살았으면 100살 이쪽저쪽이 됐을 부산 1세대 작가를 재조명하거나 발굴한 전시회가 ‘꽃피는 부산항’이기 때문이다. 전시가 전시인 만큼 작품 모으기가 가장 어려웠다. 2~3회 정도야 소장품이나 알음알음으로 구색을 갖출 수 있었지만 다섯 차례나 열기엔 버거웠다. 4회를 마지막으로 기획전을 접을까도 했다. 그럴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그림이 모였다. 

“희한하게도 작품이 와요. 그림이 저에게 걸어오는 기분까지 들었고요.” 이름만 들었지 처음 보는 작품도 있었다. 희한했다. 옥영식 미술평론가는 생존해 있다면 100살 이쪽저쪽이 됐을 미광화랑 귀신들이 도와준다고 그랬고 김 대표는 작품이 걸어온다고 그랬다. 김 대표 고집도 한몫했다. 고집이라면 고집이고 오기라면 오기였다. 돈 안 되는 전시회를 왜 계속하느냐고 주변에서 말릴수록 전시회를 이어 가고 싶었고 부산 1세대 작가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 평가가 덜 된 부산 1세대 작가를 소개하는 보람은 컸다. 그게 화랑의 사명이자 공적인 기능이라고 여겼다. 좋은 작품을 남긴 지역 원로작가에 대한 예우라고도 여겼다.

 

김기봉 미광화랑 대표
▲김기봉 미광화랑 대표 

 

부산다운 전시 하자는 마음으로 화랑 열어

“다른 사람이 안 하는 전시라서 했고 나만의 전시라서 했습니다.”

김 대표가 1세대 작가전을 5회나 이어 온 데는 나름의 가치관이 작용했다. 그 가치관은 화랑 경영정신과도 맥을 같이한다. 김 대표는 돈 벌겠다는 마음으로 화랑을 시작하지 않았고 운영해 오지 않았다. 팔리지 않아도 좋으니 전시다운 전시, 부산다운 전시를 하자는 마음으로 화랑을 열었고 1세대 미술전을 열었다. 1세대 미술전을 다섯 차례 열면서 무엇을 얻었을까. 무엇보다 부산 미술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 어떤 작가가 중요한지 보였고 부산 미술의 특성이 보였다. 김 대표는 항구도시 부산의 1세대 미술이 갖는 특성을 다양성에 둔다.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파와 6·25전쟁 피란 화가, 그리고 토박이 작가가 어우러진 1세대 부산미술은 항구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 개방적이면서 개성적인 다양한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미광화랑에서 조명한 1세대 부산 근대미술 작가는 누굴까. 

1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외롭고 무거운 길을 간 이는 누굴까. 어느 분야든 1세대가 가는 길은 외롭고 무겁다. 춥고 고달프다. 그러나 그 길을 앞서간 이가 있기에 뒷사람이 가는 길은 덜 외롭고 덜 춥다. 뒷사람이 가고 또 가면서 길은 딴딴해지고 반듯해진다. 1세대 작가를 조명하는 이유고 미광화랑 부산 근대미술 작가전 ‘꽃피는 부산항’이 주목받는 이유다.  

김경·김영교·김원갑·김윤민·김종식·서성찬·송혜수·양달석·오영재·우신출·임응구·임호·추연근·한상돈·황규응…. 미광화랑이 전시한 부산 근대미술 1세대 작가는 참 풍성하다.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다. 그만큼 우리가 우리 지역 작가를 모르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지난 9월 9일부터 한 달간 열린제5회 전시회만 해도 24인의 작품이 내걸렸다. 이들은 앞서 열린 전시회 작가와 겹치기도 하지만 작품은 겹치지 않는다. ‘꽃피는 부산항’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다.

 

김기봉 미광화랑 대표는 1999년 화랑을 열었다. 김 대표는 ‘꽃피는 부산항’ 기획전을 5회째 개최하며 부산 1세대 작가의 작품을 재조명하고 있다.

▲김기봉 미광화랑 대표는 1999년 화랑을 열었다. 김 대표는 ‘꽃피는 부산항’ 기획전을 5회째 개최하며 부산 1세대 작가의 작품을 재조명하고 있다. 

 

좋은 전시 위해 발품 팔아 작품 구해

“1930년대 활동한 임응구는 부산 최초 서양화가에 들고요, 우신출은 1940년대 작가입니다.” 김 대표가 꺼내 놓는 뒷이야기는 하나같이 구수하다. 나보다 앞서 살았던 부산사람 이야기라서 받아 적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양달석 그림은 일본에서 어렵사리 구했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던 부산사대부중 미술교사 김봉기의 ‘창덕궁 후원 풍경’은 제자 서상환 화백도 못 봤다는 미공개 작품. 김경·김윤민·김종식 등은 부산 최초 서양화 동인 ‘토벽’의 멤버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토벽동인 전’을 열어 그들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공공 미술관과 사설 화랑은 어떻게 다를까. 전시를 통해 작가와 작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같지만 가장 큰 차이는 판매를 하느냐 안 하느냐다. 그 차이는 공공 미술관을 정적이게 하고 사설 화랑을 동적이게 한다. 사설 화랑은 좋은 작품을 찾아 발품을 팔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사회적 공감대 확산이란 화랑의 공적 기능을 뒤로하고 상술에 치중하면 욕이 따른다. 그래서 김 대표는 작품을 파는 걸 자랑하지 않고 걱정한다. 제대로 된 작품을 팔았는지 걱정하고 사 간 이에게 손해를 입히지나 않았는지 걱정한다. 

 

 

김종식 ‘해경’

▲김종식 ‘해경’ 

   

김경 ‘명태와 여인’

▲김경 ‘명태와 여인’ 

 

부산·고향 사랑 모두 담은 이름 ‘미광’

김 대표는 충청도 광천(廣川)이 고향이다. 1955년생이다. 20대 초반이었던 1978년 한겨울 생면부지 부산에 왔다. 미술 쪽 일을 했고 경상도 여자를 만나 결혼했으며 1999년 수영구 망미동 토곡에서 33㎡짜리 자그마한 화랑을 열었다. 알고 지내던 망미동 토곡 주공아파트 박청륭 시인이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를 소개해 줬고, 신 대표 조언을 받아 개관 기념전 ‘서양화 작가 15인전’을 열었다. 소장하던 부산 원로작가 10여점이 중심이었다. 우리나라 미술판에 내로라하는 대가들의 작품은 없었지만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알려지지 않은 지역작가, 열심히 하는 젊은 작가를 그때부터 꾸준히 알려 왔다. “아름다운 광안리란 뜻도 있고, 폭넓은 다양한 아름다움이란 뜻도 있고, 아름다운 내 고향 광천이란 뜻도 있습니다.” 화랑 이름 미광(美廣)은 뜻이 다의적이다. 죽을 때까지 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안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았고 다양한 아름다움이 넘치도록 하려는 마음을 담았고 고향 사랑하는 마음을 담았다. 아름다울 미, 빛 광(光)이던 화랑 이름을 광안리 인근으로 옮기면서 아름다울 미, 넓을 광(廣)으로 바꿨다. 미광. 솔직히 촌스러운 작명이다. 구닥다리 사진관 이름 같기도 하다. 서울 경매에 미광으로 나섰다가 촌스럽다며 바꾸라는 핀잔도 더러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핀잔이 쏙 들어갔다. 2010년 천하의 화가 ‘천경자 전’을 열면서 지명도가 급상승한 덕분이다. 천경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미광화랑 기획전을 눈여겨본 천 선생 딸이 미국 뉴욕에서 전화를 걸어왔고 전시회는 성사됐다. KBS기자가 서울에서 총알택시를 타고 왔고 9시 뉴스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그때부터 미광은 전국구 화랑이 됐고 아무도 이름 갖고 책하지 않았다.

 

‘천경자 기획전’ 이후 전국구 화랑 명성 얻어

화랑 20년. 어려움은 적지 않았다. 살던 집을 팔아서 ‘올인’했다. 가족을 담보로 화랑을 이어 왔고 아이들 학비를 걱정할 정도로 쪼들렸다. 불평 대신 옷소매 걷어붙이고 밀어준 아내가 고맙고 좁은 방에서 견뎌 준 아이들이 고맙다. 그런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부산 원로작가 작품을 한 점 두 점 사 모을 수 있었고, ‘꽃피는 부산항’을 다섯 차례나 기획할 수 있었다. 미광화랑의 스펙트럼은 이름처럼 넓다. 그리고 부산 미술의 특성처럼 다양하다. 부산 1세대 작가를 조명한 ‘꽃피는 부산항’과 별도로 송혜수·오영재·황규응·황인학·이석우·이규옥·허민 등 작고작가 회고전을 열었다. 2세대, 3세대 작가도 지속적으로 조명할 예정이다. 경남지역도 들여다본다. 젊은 작가전은 꾸준히 여는 중이다. 올 연말에는 바다를 줄곧 그린 전미경과 여성의 일상성에 주목한 이진이 전시회가 열린다. ‘꽃피는 부산항’이 워낙에 조명받기는 했지만 전시회 횟수로 따지면 젊은 작가전이 훨씬 많이 열린다. 4배 이상 많다. 종교화가 서상환을 비롯해 정일랑·정복수·김원백·김춘자·심점환·류회민·김난영·염진욱·방정아·박봉래·김성철 등 입지를 굳혔거나 굳혀가는 작가 초대전을 연 바 있다. 신구(新舊)를 아우르려는 미광화랑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김기봉 대표는 전시회를 열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다. 지금껏 보이지 않던 손이 여기까지 이끌어 왔듯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끌어 줄 것으로 믿는다. 살았으면 100살 이쪽저쪽이 됐을 미광화랑 귀신들이 보살펴 주실 텐데 뭐 어떠랴 싶기도 하다. 

작성자
동길산
작성일자
2017-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11월호 통권 133호 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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