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2월호(통권 124호)호 기획연재

만날 듯 스치는 점과 점 점(點)에 담은 현대인 고독과 소외

점화로 동양적 선 세계 탐닉 … 세상 그늘과 이면 담아내
지루하고 단순한 반복작업 견디는 “내 그림은 노동의 산물”

관련검색어
부산화가,
점묘화,
성현섭
내용

그는 고요하다. 그를 만나기 전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별다른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서양화가라는 직업과 지난해 제28회 봉생문화상 전시 부문 수상자라는 건조하고 딱딱한 내용이 전부였다. 정보사회의 그늘에서 비켜서 있는 화가, 궁금증이 증폭했다.



2017124_14_01.jpg 

 

 

 

초등학교 때 미술대회 수상, 화가 꿈 키워

그의 출신 학교 동문을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오프라인에서의 정보검색은 거칠고 단순했지만 뜻밖의 수확을 주었다. 

‘성현섭 선생은 은자(隱者)예요.’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번잡함을 싫어하는 은둔자라면, 그와의 인터뷰는 성사될 수 있을까? 걱정하며 그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네, 성현섭입니다.”

그는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고, 조금 주춤하는 듯 했으나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동래향교 앞 야트막한 언덕 입구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부산 미술계에서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으나 대중적인 화려함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그림을 그리는 구도자를 만나러 가는 길은 겨울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날이었다. 구도자를 만나기에 어울리는 날씨였다.“이 누추한 곳까지 오시고….”

첫인상이 맑고 정갈했다. 오십대 중반 연령의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기 쉽지 않은 정결함이 있었다. 오래된 3층 건물의 2층에 자리 잡고 있는 그의 작업실도 주인을 닮아 있었다. 오른쪽 벽면으로 투박하고 오래된 나무 이젤과 낡은 책상이 놓여 있다. 왼쪽 벽에는 4단 책꽂이 두 개가 서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서 있다. 책꽂이에는 미술과 철학 관련 책들이 보인다. 오래 곁에 두고 읽었는지 모서리가 나달나달 헤져 있다. 미술 관련 책보다 철학책이 더 많은 서가에서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힌트를 본다. 

다시, 그의 공간이다. 작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몇 개의 액자. 특별하게 보이는 액자가 눈에 띈다. ‘교육경남’이라는 잡지의 표지가 액자에 담겨 있다. 오래전 잡지의 표지인 듯 누렇게 낡았을 뿐 아니라, 투박하고 촌스러운 제호가 족히 40년은 지난 잡지의 표지임을 짐작하게 한다.

“저기에서 제 그림 인생이 시작됐지요.”

 

 

부모 반대 딛고 부산대 미대 진학

성현섭 화가는 1964년 울산에서 태어나 경상남도 김해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다.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1학년 때 부산으로 왔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꼼지락’대는 걸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 중에 그림도 포함돼 있었다. 만화와 미술 교과서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놀았다고 했다. 곧잘 그린다는 칭찬도 들었지만 그림에 재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랬던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작은 기적을 만든다. 우연히 나간 제8회 경남매일미술실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림을 그려 처음 받은 상이었다. 학교와 동네를 놀라게 한 소년은 희미하게나마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미술대회에서 그린 그림은 ‘교육경남’ 표지화로 사용됐고, 그는 자신의 첫 그림이 인쇄된 잡지의 표지를 액자에 담아 40년 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느 아이들이 그랬듯 그의 소망은 쉽게 잊혀졌다.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 가난한 환쟁이가 되겠다는 데 말리지 않을 부모가 드문 시절이었다. 그는 부모에게 순종했고, 공과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이과반을 지원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만 했죠.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미대를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그림은 그의 운명이었다. 이과생으로 수학의 정석과 씨름하던 고3 어느 날, 공대를 가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벼락처럼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때는 고3 2학기. 계절은 이미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입시까지 남은 기간은 겨우 두 달. 근처 화실에 적을 두고 두 달 동안 미친 듯이 그림에 매달렸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화실로 가서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입시를 준비한 두 달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치열하게 그림에 몰입한 시기이기도 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그의 열정과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덕분에 대학(부산대 미대)에 무사히 진학했다. 기쁨은 잠깐, 힘들게 진학한 대학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좌절한다. 벼락치기로 대학에 들어온 자신에 비해 동기생들의 실력이 멀찌감치 앞서 있었던 것. 그 간격을 넘을 수 없었다. 동기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겠다는 갈망으로 몸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새로운 길이 절실했다. 그는 공부에서 새 길을 찾기로 하고, 학교를 휴학하고 책을 싸들고 독서실로 향했다.

 

 

 

2017124_16_01.jpg 

▲ 부산 화단 중견작가 성현섭 씨는 점(點)화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한다.

 

 

 

미대 진학 후 방황, 그림 대신 세상 공부

“1년 동안 공부 많이 하셨어요?”

“아이고, 공부는 무슨…. 처음에는 열심히 했지요. 미술사와 철학, 미학 책을 쌓아두고 읽었어요. 이해가 안 됐지요. 공대 가려고 수학 문제만 풀었잖아요. 그만둘까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포기가 안됐어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이해될 때까지 읽었어요. 처음에는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는 놀았어요.”(웃음)

놀았다고 말하지만 휴학했던 1년은 그의 그림 인생의 큰 틀을 가늠하는 토대가 됐다. 고전과 씨름했지만 고전은 그 이름만큼 크고 높았다. 세 번쯤 보니 세상의 길이 희미한 실금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러자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는 학생이라는 온실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잠시 나간다. 거친 일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세상을 빨아 들였다. 가는 곳마다 깨달음과 배움이 있었고, 새로운 그림이 펼쳐졌다. 

수줍게 말하는 그의 말을 들으며, 화실 한 켠에 놓여 있는 그림을 보았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이라는 그의 그림의 주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겠다. 독서실 구석 칸에서 책과 씨름하던 한 청년, 힘들게 들어간 대학에서 비주류의 소외감에 몸을 떨어본 청년, 역사와 철학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한 청년은 작은 독서실 책상과 그가 나섰던 길 위에서 현대인의 고독한 자화상을 선연하게 만났으리라.

 

 

10년 공백 넘어 다시 화가로

그는 과작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대략 10년 정도의 공백을 만난다. 1993년 ‘다다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두 번째 개인전까지는 무려 10년의 세월이 놓여 있다. 그 10년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1993년부터 2004년까지의 시기를 그는 선생으로 살았다. 부산교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0년 선생질을 하고 나니 새로운 한계가 보였다. 그림을 도통 그릴 수 없었다는 것. 이미 결혼해 아이 둘을 둔 가장이었던 그의 고민은 깊어졌다. 생활인과 예술가 사이의 간격은 크고 깊었다.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없었다. 오래 고민한 끝에 학교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로 한다. 어려웠지만 쉬운 선택이었다. 어렵고 쉬운 선택이라는 모순 속에서 그의 그림은 새로운 전망을 열게 된다.

가난을 선택하면서 그림 작업은 활발해진다. 2004년 ‘갤러리 李’에서 열었던 두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1~2년 간격으로 지금까지 모두 10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30년에 이르는 작가 이력을 생각하면 과작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전시 화랑 중에는 ‘인사아트센터’ 같은 서울의 메이저 화랑도 눈에 띈다. 그의 작품이 화단 안팎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곁눈질만으로도 알 수 있다.

드물었던 개인전과는 달리 2~3인전과 그룹전은 활발했다. 전업작가를 시작할 당시 그는 이미 부산 화단에서 주목받는 중견작가였다. 그렇다보니 선후배들의 전시 참여 요청이 줄을 이었다. 청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룹전은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7124_17_01.jpg 

▲ escalato



2017124_17_02.jpg 

▲ ​cat

 

 

새로운 미술언어 꿈꾸는 영원한 청년

성현섭 작가는 점(點)의 화가다. 그는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린다. 멀리서 보면 선과 면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수많은 점이 선과 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초기에는 수묵화같은 작품세계를 보였다. 흑백의 대비를 통해 선(仙)적인 세계를 담아냈다. 지금은 채색을 가미했다. 검고 푸른 색조를 주로 사용한다.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검고 푸른 점들의 군무는 우주 사진을 보는 듯 점점이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하다. 그는 왜 점에 매료되었을까?
“사람이 점이고, 점이 우주잖아요.”

그에게 점은 우주다. 한 개의 점은 한 개의 우주이고, 천 개의 점은 천 개의 우주이다. 그의 그림은 징그러울 정도로 부단한 노동에서 나온다. 매일 아침 8시에 집을 나서서 작업실까지 걸어온다. 작업실까지 걷는 20분 혹은 30분동안 그는 세상과 만난다. 그는 눈과 귀, 온 몸으로 세상을 빨아들인 후 낡은 작업실에서 밤새 점을 찍는다. 한 개의 점은 하나의 우주, 캔버스에 수 천 혹은 수 만의 우주를 뿌려놓고 하루의 노동을 마감한다.

“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사실 생각보다 육체적으로 힘들어요. 시간도 엄청 걸리죠. 언제까지 점을 그릴지 알 수 없지만, 요즘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어요. 새로운 미술언어를 찾아내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부산 화단에서 선후배의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는 작가는 오십대 중반에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겠노라 말한다. 그의 말은 느리고, 수줍다. 그러나 그의 힘은 느림에 있다. 느림의 힘으로 기어이 새로운 미술 언어를 발견해내리라는 믿음을 얻은 채 그의 작업실을 나섰다. 사위가 어두웠다. 2층 작업실 창밖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나왔다. 그가 그린 점(點)들이 작은 창을 날아올라 캄캄한 우주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부산은 참 좋은 화가를 품고 있다.

 

작성자
김영주 기자
작성일자
2017-02-0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2월호(통권 124호)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