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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통권 122호 부산이야기호 기획연재

빙하시대 신비 간직한 칠레 최대 국립공원 파타고니아 눈과 바람이 빚어낸 경관 웅장

지구의 끝, 바람의 땅을 걷다

내용

지구의 끝, 바람의 땅을 걸었다. 야생의 길에선 숨이 찼고, 웅장한 풍광 앞에선 숨이 막혔다. 강풍이 불고,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다가도 해는 떴다. 푸른 빙하와 옥빛 호수, 너른 초원과 하얀 설산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곳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한다는 비경, ‘여행자들의 로망’ 파타고니아의 대표 관광명소, 칠레 남부에 위치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Parque Nacional Torres del Paine)이다. 파타고니아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남위 39° 이남 지역을 말한다. 면적 90만㎢, 한반도의 10배가 넘는 넓은 지역에는 거친 산맥과 광활한 대지, 거대한 빙하와 호수가 어우러져 있다. 남극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 ‘지구의 끝’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곳, 극지방의 생태와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지구의 마지막 비경’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19세기 후반에서야 문명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에 파타고니아의 독특한 자연환경은 오늘날까지 비교적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빙하가 많은 지역이며, 약 30개의 국립공원이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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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❶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칠레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이다. 전체 면적이 2천273㎢로 부산의 약 3배 정도이며, 다양한 지형을 만나볼 수 있다.

​ ❷ 칠레노 산장 앞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자들.

 


세계적 명성 트레일 … 다양한 야생동물 서식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칠레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 중 하나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쪽으로 3천100㎞ 거리에 있으며, 전체 면적은 2천273㎢, 부산의 약 3배 정도이다. 연평균 15만5천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숲, 강, 호수, 빙하, 계곡 등 파타고니아를 상징하는 다양한 지형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하루에 사계절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파타고니아 날씨로 유명하다. 이곳은 오랫동안 ‘꿈의 트레킹’으로 불리며 수많은 여행자가 꿈꿔온 곳, 세계적인 여행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이자, 지상 낙원 10위에 뽑힌 곳이기도 하다.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는 모든 이들은 112㎞ 떨어진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를 거쳐야 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태평양 바다와 안데스 설산이 조화를 이루는 항구도시이자 여행자 도시이다. 캠핑장비, 등산용품, 여행자 숙소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 중 필자는 캠핑을 하면서 8일간 100㎞ 이상 걷는 일주코스를 계획했다.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토레스 델 파이네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차창 밖 아름다운 풍경에 배낭 무게로 무거워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세계적 명성 트레일(트레킹 하는 길)에 발을 디딘다는 설렘 반, 예측할 수 없는 날씨에 대한 걱정 반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트레킹을 다녀온 여행자를 통해 11월 초는 시기상 봄이라도 고도가 높은 곳엔 눈발이 날린다고 전해 들었다. 여행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는 남반구의 여름시즌인 12월부터 2월까지이다.

국립공원 입구 방문자 센터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나오니 멀리 평원에 과나코(Guanaco)가 보인다. 과나코는 안데스 산맥에 거주하는 낙타과의 초식 동물이다. 이 국립공원은 1978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야생동물 보호지역으로, 과나코·퓨마·여우·사슴·콘도르·플라밍고 등 다양한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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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가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주저앉고 싶다가도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나면 강풍 따위는 아무래도 괜찮은 것이 된다. 트레킹 도중 여행자가 산과 호수를 바라보며 쉬고 있다.

 


토레스 델 파이네, 자연이 빚은 푸른 기둥

평지를 걷고, 다리를 건너고, 언덕을 오른다. 아센시오(Ascencio) 계곡을 지날 땐 칼바람이 협곡을 지나간다.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8일치 식량과 텐트, 침낭, 조리도구가 든 배낭은 어깨를 짓누른다. 땅이 발을 잡아끄는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경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경관은 그나마 큰 위안이 된다. 첫째날은 고작 2시간, 5㎞를 걷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칠레노 캠핑장에서 캠핑을 했다.  

둘째날은 울창한 숲을 지나 화강암이 굴러다니는 돌산을 걸어 ‘토레스 델 파이네’ 전망대에 도착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1천300만 년 전 거대한 화강암이 땅 위로 솟아올라 해발 

2천500m에 만든 세 개의 봉우리이다. 빙하의 푸른빛이 비친다고 해서 ‘푸른 탑’이라는 뜻을 가진 ‘토레스 델 파이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국립공원 이름 역시 이 화강암 삼형제에게서 따온 것이다. 고도가 높아지자 풍속이 빨라지고 눈발이 날려 한참을 기다려도 세 개의 탑을 볼 수 없다. 둘째날은 13㎞ 6시간을 걸었다.

셋째날이 되자 적응이 돼갔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지어 먹고, 다음날 반대로 아침 먹고, 텐트 걷는 일이 제법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도 배낭을 메면 여전히 우주의 끝을 향해 걷는 것마냥 길은 멀고 아득했다. 13㎞ 4시간 트레킹 후 세론 야영장에 들어섰다. 

넷째날은 19㎞를 6시간 동안 걸었다. 강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땐 주저앉고 싶다가도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나면 바람 따위는 아무래도 괜찮은 것이 됐다. 이날 하룻밤을 묵은 딕슨 캠핑장 옆 산장에는 젖은 등산화를 말리는 여행자 대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트레킹 시작하고 처음에로 여러 사람을 만난 덕분에 난로의 온기만큼이나 마음도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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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덮인 자갈 고개를 오르면 만년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거대한 빙하가 모습을 드러낸다.


변화무쌍한 날씨 … 폭설·강풍으로 캠핑장 고립

다섯째날 점심, 딕슨 호수를 뒤로 하고 로스 페로스 빙하를 향해 걸었다. 캠핑장을 떠나올 때만 해도 날씨가 흐린 정도였는데, 가는 비가 내리더니 빗줄기가 굵어진다. 온몸이 흠뻑 젖었다. 피할 곳도 마땅치 않은데 야속한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어깨와 등은 가방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지 근육이 뭉쳤다. 11㎞ 5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를 6시간이 넘게 걸렸다. 

캠핑장은 나올 듯 나올 듯 나오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비바람에 시달리며 녹초가 돼 로스 페로스 캠핑장에 도착했을 땐 반가움도 잠시였다. 캠핑장 시설은 열악했다. 샤워실도 없고,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았다. 여행자들은 텐트를 치지 못하고 임시 대피소인 컨테이너 박스에서 잤다. 생애 가장 추운 밤이었다. 

난방기구가 없는 컨테이너는 몸서리치게 차가웠다. 젖은 옷을 입고 젖은 침낭에서 자는 밤, 아침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긴 밤이었다. 

다음날도 날씨가 사나웠다. 등산화 끈을 바짝 조이며 자못 비장한 심정으로 출발했으나, 3시간 만에 캠핑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 숲길을 지나 드넓은 너덜지대와 마주했을 땐 이미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태풍 같은 바람이 불었다. 자칫 방심하다간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아 자세를 낮췄으나, 길은 찾을 수 없었다. 눈이 이미 세상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강을 건너다 신발이 젖었고, 손발이 얼었다.

레인저(공원 관리인) 숙소 난로에서 젖은 등산화와 침낭, 옷을 말렸다. 꽁꽁 언 몸은 녹아도 마음은 녹지 않았다. 임시로 폐쇄된 트레일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며칠이고 기다리든지 여러 날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가야한다. 남은 식량으로 사흘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리기로 한다. 레인저들은 수시로 상황파악을 위해 파소 캠핑장에 무전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수십 차례 시도 끝에 성공한 무전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빙하가 깎아 만든 비경 … 태곳적 신비 간직

이틀을 더 자고 나서야 로스 페로스 캠핑장을 탈출할 수 있었다. 여덟째 날, 총 14㎞ 11시간을 걸었다. 여전히 눈이 쌓여 있으나, 강풍은 한결 잦아들었다. 가파른 자갈 언덕을 여러 차례 오른다. 고개 정상에 서니 파노라마처럼 설산이 펼쳐지고,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희미하게 보인다. 얼음덩어리, 빙하다. 

빙하는 고원지대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무게 때문에 압축된 얼음덩어리다. 눈 앞에 보이는 이 웅장한 빙하는 그레이 빙하다. 토레스 데 파이네 국립공원의 12개 빙하 중 가장 규모가 큰 빙하로 길이가 27㎞, 폭은 5㎞, 두께는 30m나 된다. 얼음덩어리의 15% 정도만 물 위에 떠 있고, 85%가 물 아래에 잠겨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빙하는 전체 빙하의 일부이다.

그레이 빙하는 멀리서 보았을 땐 흐린 날씨처럼 회색이었다가, 흰색이었고, 가까워지자 하늘을 얼려 놓은 것 같은 푸른색이었다. 빙하는 스스로의 무게에 눌려 얼음 속 공기가 점점 빠져 나오게 되는데, 공기가 많이 포함된 빙하일수록 흰빛을, 순수한 물에 가까운 빙하일수록 푸른색을 띈다고 한다. 

중간 경유지인 파소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세 명의 레인저는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레인저들은 2주간 일하고 1주일을 쉰다. 집에 갈 때 하루를 걸어 산을 내려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갔다가 다시 하루를 걸어 이곳에 돌아온다는 것이다. 20대 초중반 젊은 나이에 자연에서 지내는 생활이 지루할 만하고 사람이 그리울 만한 법. 이들은 틈틈이 지나가는 여행자들에게 각 나라 언어를 배우고, 기타를 치며 이겨낸다고 했다. 파소 캠핑장은 이용객이 적다보니, 레인저들은 외로움을 달래는 방편으로 한 명의 여행자라도 더 반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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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인들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지켜 나간다. 국립공원 안은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안내판과 이정표도 나무로 만들었다.

 


8박 9일 트레킹 … 절망과 희망, 좌절과 감동의 날

다시 걸었다. 사다리 타고 절벽을 내려와, 아찔한 다리를 건너고, 쓰러진 나무를 피해 5시간을 걸었다. 그레이 캠핑장에서 나흘 만에 샤워를 했다. 트레킹 마지막 날을 자축하며 산장 식당에서 저녁을 사먹었다. 전 세계 트레커들이 모이는 곳답게 식당에선 수많은 언어가 들렸고, 일주일 만에 느껴지는 문명 생활이 낯설었다. 

아홉째 날이자 마지막 날 아침, 그레이 캠핑장에서 파이네 그란데 캠핑장까지 4시간여를 걸었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시도 때도 없이 바람은 분다. 이제 이 바람이 절친한 친구 같다. 파타고니아가 버거운 것은 하루에도 수차례 변하는 날씨 때문이겠지만 파타고니아를 빛나게 하는 것도 역시 날씨 덕분 아닐까.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가 하면, 바람이 불어 사무치게 춥다가도 갑자기 해는 쨍하게 뜬다.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의 8박 9일, 기상악화로 비록 완주하지 못했지만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오래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선다. 30분간 배를 타고 페오에(Pehoé) 호수를 건너, 버스로 갈아타고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온다. 페오에 호수의 고운 물빛은 마지막 순간까지 여행자의 마음을 잡아끈다. 바람이 불어온다. 

 

작성자
김정희
작성일자
2016-11-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통권 122호 부산이야기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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