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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시민공원에서 서면까지 부산 문화·예술·젊음 1번지

우리 사는 부산 ⑤부산진구
삼성·LG·대우 대기업 태동지… 공원·광장·동물원 문화시설 다양

내용

배롱나무는 칠팔월 여름철에 꽃이 핀다. 붉은 꽃을 100일 동안 피워 목백일홍으로 불린다. 도로변 조경수로 심은 지자체도 적지 않다. 한국의 산과 들판, 도로변은 지금 배롱나무 붉은 꽃이 절정을 맞고 있다.

단 한 나무. 그 많은 배롱나무 가운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는 단 한 나무다. 그 나무가 부산진구에 있다. 부산진구 양정동 화지공원 배롱나무가 그것이다. 한반도 최고의 명당자리로 꼽히는 동래정씨 2세조 정문도 묘소를 지킨다. 800살을 훌쩍 넘긴 천연기념물 배롱나무는 멀리서 봐도 있어 보인다. 멀리서 봐도 부산진구를 있어 보이게 한다.

송상현광장. 사진·마이클카제미

배롱나무·구상반려암… 천연기념물 곳곳에

'부산의 중심.' 도시철도 서면역에 내걸린 부산진구 홍보문구다. 문구대로 부산진구는 부산시민 누구나가 수긍하는 부산의 중심일 수 있다. 지리의 중심이며 교통의 중심이며 상업과 금융, 유통, 의료, 관광 등등의 중심이다. 젊은이들 북적이는 젊음의 중심이기도 하다.

부산진구는 문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한국 최고(最古)의 서점 영광도서가 부산진구에 있고 부산 유일의 문화로가 부산진구에 있고 영남지역에서 하나뿐인 국립부산국악원이 부산진구에 있다. 지자체에선 부산진구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청소년예술학교와 라온소년소녀합창단도 돋보인다. 초읍동 시립시민도서관과 시립부전도서관과 별개로 국회도서관 별관도 부산진구에 들어설 예정.

자연이 빚어 낸 유산도 내세울 만하다. 내세울 정도가 아니라 세계적이다. 전포동 구상반려암. 구상반려암은 말이 좀 어렵다. 둥근 무늬가 있는 바위 정도로 이해하자. 구상반려암은 6천만년 전 화산활동 분출물. 전포동 동의과학대학교 뒤편 구상반려암은 반려암 안에 구상암이 들어간 형태다. 세계적으로 희귀암석이다. 아시아에선 우리나라에 유일하다. 전포동 구상반려암도 천연기념물이다. 우리나라에 광물 천연기념물은 셋에 불과하다. 그 중 하나가 전포동에 있다. 배롱나무도 그렇고 구상반려암도 그렇고 부산진구는 알고 보면 천연기념물을 품은 순수천연 그 자체다.

화산활동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백양산 자락 공룡발자국 역시 화산이 분출하면서 생긴 지구의 유산. 7천만∼8천만 년 전 백악기 말기 오리부리공룡 발자국이다. 2005년 등산하던 주민이 발견해 부산진구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공룡발자국 안내판에는 바위에 새겨진 발자국 화석이 120여 개란다.

부산대표공원 부산시민공원·송상현광장 들어서

뭐가 달라도 다른 부산진구는 역사도 장구하다. 선사시대 이전 역사인 패총이 전포동과 범전동에서 발굴됐다. 당감동에서는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고분군이 발굴됐다. 고려시대 동평현성 토성터, 조선시대 부산진성의 연장일 것으로 보이는 수정산 석성터, 그리고 거기서 출토된 유물들, 황령산 봉수대도 부산진구 역사를 장구하게 한다.

부산진구에는 부산을 대표하는 공원인 부산시민공원과 송상현광장이 있다(사진은 송상현광장 분수를 관람하는 시민 모습).

신라 화랑과 밀접한 이름도 있다. 부암3동 선암사(仙巖寺)다. 선암사 원래 이름은 견강사(見江寺). 신라 문무왕 15년(676) 원효대사가 백양산 정상에서 낙동강 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장관을 보며 창건했다는 절. 이후 신라 화랑을 일컫는 국선(國仙)이 여기서 심신을 수양해 절 이름에 선(仙)이 들어갔다고 한다. 부산 고지도엔 '선암(仙庵)'이란 암자가 나온다. 선암사와 함께 범천동 팔금산 광명사, 초읍 삼광사, 부전교회, 초읍교회, 양정성당, 당감성당 등 곳곳의 종교시설도 역사의 나이테가 나날이 다달이 연년이 늘어나고 있다.

부산진구는 한국 대기업의 발상지이자 신발산업의 중심지였다(사진은 옛 진양고무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신발동상').

부산진구는 공원의 도시다. 부산을 대표하는 공원 부산시민공원이 있고 송상현광장이 있다. 화지공원이 있고 가야공원이 있고 전포돌산공원이 있고 개금테마공원이 있고 백양산 애진봉이 있다. 황령산레포츠공원이며 엄광산과 만리산 체육공원, 가야산책공원 등 산마다 동네마다 체육공원과 소공원이 있다. 그리고 어린이대공원.

부산시민공원은 지난 해 5월 개장, 부산시민의 쉼터로 자리잡았다(사진은 부산시민공원에서 휴식을 즐기는 시민 모습).

성지곡수원지를 낀 어린이대공원은 유서가 깊다. 부산진구는 물론 부산은 물론 한국에서 이름을 드날린 공원이다. 한국 최초의 현대식 콘크리트댐이 거기 있고 100년은 더 됐을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이 거기 있고 1970년대 세운 어린이회관이 거기 있다. 한때 부산시민 식수원이던 수원지 둘레를 산책하면 속이 확 풀린다.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대부 요산 김정한 선생 문학비 문구는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사람답게 살아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와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 문학비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부산진구에는 비석도 빛난다. 곳곳의 비석이 부산진구를 깊고 높게 한다. 한국 최고의 명문상고 부산상고생 등이 주축이 되었던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비, 이수현 추모비, 고태국 음악비, 헌7학병 1661명 기념비 등은 어린이대공원에 있다. 동래부사 정언섭이 쓴 화지공원 정묘비, 고관대작도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던 양정 하마비, 당감동 어모장군단비, 스웨덴 참전비, 이종무장군 대마도정벌 기념비 등이 부산진구에 있다. 동래부사비도 빼놓을 수 없겠다. 가야공원 김선근과 정인학, 화지공원 정치화 송덕비가 그것이다. 동래부사는 조선시대 부산 최고위직. 요즘으로 치면 부산시장이다.

성지곡수원지 산책로는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가득해 시민이 즐겨찾는다.

1960∼70년대 대기업 몰려있던 산업 중심지

부산진구는 한국 대기업 발상지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과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 대우자동차의 모태인 신진자동차가 부산진구를 발판으로 삼았다. 부산진구가 있었기에 한국 산업이 부흥했다는 말이 결코 허사가 아닌 셈이다. 세계 최대의 합판공장 동명목재, 대상그룹 모태 미원식품, 넥센타이어 전신 흥아타이어, 양복지 대표브랜드 태광산업, 제비표 페인트 건설화학공업, 한일그룹의 경남모직, 대동벽지, 동산유지, 동성화학 등도 부산진구를 거쳤다. 그 기업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은 부산진구 어디를 가도 굴뚝이 있었고 굴뚝에서 줄기차게 내뿜는 연기는 1950년대와 60년대, 70년대 한국경제의 뼈가 되고 살이 됐다.

신발산업은 1960년대 이후에도 부산진구를 지켰다. 이전하거나 폐업한 90년대 초반까지 부산진구 소재 신발대기업은 모두 여섯 군데. 당시는 부산의 신발산업이 곧 한국의 신발산업이었고 세계의 신발산업이었다. 부산의 신발산업 중심지가 부산진구였기에 부산진구는 한국의 부산진구였고 세계의 부산진구였다. 신발 대기업 자리는 대부분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부산진구는 올해 3월 진양고무가 있던 자리에 '신발동상'을 세워 그 시대를 반추한다. 부산진구 신발 대기업 여섯 군데는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대표 상표다. 삼화고무(범표)와 보생고무(타이어), 동양고무(기차표), 진양고무(왕자표), 태화고무(말표), 대양고무(슈퍼카미트). 동양고무는 화승 전신이다.

부산진구의 중심 서면

부산진구의 중심은 '서면(西面)'이다. 서면은 조선시대 행정지명. 부산 중심인 동래의 서쪽에 있어서 서면이라 했다. 동면과 북면, 남면은 사라지고 서면만 남았다. 부산진구 자생력이랄지 생명력을 살아남은 지명에서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서면이 중심부지만 구도심 동래와 원도심 중앙동 일대 그 사이에 끼여 지나가는 경유지이던 시절도 있었다. 경유지 서면이 부산 중심 서면으로 부각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부산발전연구원 2014년 연구보고서 '부산 그대도심으로서 서면 재생방안'은 그 요인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부산진구 부전동에 위치한 영광도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부발연은 요인을 아홉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로 1950∼70년대 한국 대기업 창업지가 서면을 중심으로 형성됐음을 꼽는다. 둘째는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기간 군보급창, 군형무소, 포로수용소, 공작창, 정비창 등 전쟁 지원시설을 주목한다. 셋째 1970년대 사상공업단지 번성과 서면 주변지역 공장 활성화와 그 여파로 서면에 영화관 40여 군데가 밀집하면서 문화와 소비의 중심지로 부상, 넷째 전차 철도 도시철도 버스 승용차 등 교통수단의 결절점이 되면서 서면이 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부산진구 서면 쥬디스태화와 젊음의 거리는 젊은이들로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다섯째에서 아홉째 요인도 경청할 만하다. 다섯째 개방과 포용의 공간적 특성이 있다. 이는 사통팔달이란 지역적 특성 외에 심리적 요소도 작용한다. 여섯째 동천을 중심으로 부전천, 전포천, 가야천 등 여러 개의 하천이 연결되는 천변(川邊)의 도심이다. 일곱째 오피스 공동주택 쇼핑 비즈니스 지원시설이 집중돼 여느 도심지와는 달리 직주(職住) 근접형 도심지다. 여덟째 원도심과 부산역에서 이어지는 중앙로 연결에너지와 강서지역에서 넘어와 사상지역을 매개로 하는 가야로 일원 산업적 기능과 연계성이 높다. 부발연 연구서는 마지막 아홉째로 금융·쇼핑 공원·광장·공구·철물·인쇄거리 등 다양한 첨단시설과 전통적인 산업유산이 혼재된 복합재생의 중심지로서 서면의 역할과 위상에 주목한다.

활력·젊음·낭만 넘치는 서면

부산진구는 언제 가 봐도 활력이 넘친다. 활력은 특정계층에 한정되지 않는다. 쥬디스태화 인근 서면 젊음의 거리에서 발산되는 활력이며 영광도서 인근 경륜 갖춘 노장들의 활력, 부전시장과 서면시장 등 재래시장 주부들 활력, 동의대와 부산여대를 비롯한 대학생들 활력, 업(業)으로 우리 사회 파이를 키워 나가는 직업인과 자영업자가 내뿜는 활력이 포개고 겹쳐져 부산진구 미래를 파릇하게 한다. 부산진구청 홈페이지 표현대로 '부산진구에 살거나 부산진구에서 일하는 것은 큰 자랑'이 되게 한다.

부산진구는 필자의 첫 직장이 있던 곳. 대학 졸업할 무렵부터 햇수로 7년을 다녔으니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초반 참 좋던 시절 매일매일을 보낸 곳이 부산진구다. 부산진구 골목골목 부산진구 거리거리, 내가 모르는 곳이 어디 있으리. 나를 몰라보는 곳이 어디 있으리.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달빛 비추는 물결처럼 반짝이는 곳, 부산진구. 우리 사는 부산은 눈으로 보아도 반짝이고 기억에도 반짝인다. 나에게 부산진구는 더욱 그런 곳이다.

작성자
글 동길산 시인
작성일자
2015-09-0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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