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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623호 기획연재

소리·춤 장단 맞추는 부부 “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마세요!”

부산의 꾼-국악인 김준호 손심심 부부

내용

남편은 소리꾼, 아내는 춤꾼. 남편이 추임새를 넣으면 아내의 춤사위는 더 신명나게 허공을 가른다. 아내의 춤사위가 리듬을 타면 남편은 맛깔나게 소리를 보탠다. 두 사람은 늘 붙어 다닌다. 공연만이 아니다. 강연도 방송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부부의 입담은 걸쭉하다. 호흡은 착착 맞아 떨어진다. 눈빛만 보고도 서로에게 가장 잘 맞는 장단을 차지게 쳐주는 최고의 파트너다. 한길을 걷는 부산국악인 김준호 손심심 동갑내기(51) 부부는 그래서 늘 신명이 나 있다. 1990년대 후반 '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는 책을 내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말, 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며 걸쭉한 입담으로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던 김준호 씨. 그가 올해 인간문화재가 됐다. 부산광역시가 소리꾼 김 씨를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4호 동래지신밟기 풀이 예능보유자로 지정한 것이다. 전통 국악인 출신이 아니면서 무형문화재가 된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국악인 김준호, 손심심 부부는 국악방송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김준호 손심심의 오락 가락'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은 라디오 방송을 진행중인 부부의 모습).

국악방송 라디오 프로 진행… 찰떡궁합 과시

두 사람은 무대 위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남편의 소리가 아내의 춤을 받쳐주고 아내의 춤이 남편의 소리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공연뿐만 아니라 강연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 없으면 신명이 날 수 없다.

요즘 두 사람은 국악방송 '김준호 손심심의 오락가락'을 진행하며 애청자들과 만난다. 국악소식과 전통문화소식을 전하며 우리 소리를 들려준다. '찰떡궁합'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87년이다. 먼저 아내 손심심 씨 이야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우리 춤에 '미쳐서'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산업을 하다 쫄딱 망한 아버지 몰래 어머니는 반지를 팔아 딸의 학원비를 대주었다. 1981년부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인 동래야류 예능 보유자 양극수 선생에게서 할미역을 배웠다. 문장원 선생에게서 양반춤을, 김동원 선생에게서 학춤을 배웠다. 그런 까닭에 1987년엔 이미 춤 잘 추고 잘 가르치는 유명한 춤꾼이 돼 있었다.

당대 최고의 명무들을 사사한 만큼 그의 춤 솜씨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3 2학기 때 부산시립무용단에 들어가 3년가량을 활동하다 뒤늦게 1985년 동아대 무용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동아국악콩쿠르 예선에서 살풀이춤, 본선에서 승무를 춰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부산연극계에 익히 알려져 있던 손기룡 씨 소개로 '서울말뚝이'라는 공연의 무당 역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사무실에 갔다가 만난 게 바로 김준호 씨였다. 당시 손 씨는 자신의 춤에 장단을 맞춰 줄 사람을 찾고 있을 때였다.

"그때 이미 김 선생은 우리 소리와 구음(입소리, 입장단)에 있어 탁월한 솜씨를 자랑하던 이였지요."(손심심)

구음, 판소리, 장구, 북 까지 팔방미인

다음은 김준호 씨 이야기. 그는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한 학기 남기고 중퇴했다. 민요, 판소리 같은 민속학이 좋아서 택한 것이 국어국문학과였다. 그가 우리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할머니 덕분. 들일하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다 보니 할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일하면서 읊조리는 노래며 가락이 자연스레 몸에 뱄다.

우리 소리, 우리 가락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자라면서 점점 더 커져갔다. 결정적 계기는 고2 때 찾아왔다. "진주 촉석루를 지나가다 구음(口音)에 이끌려 발길을 멈췄습니다. 당대 명인 김수악 선생이 세종대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만 홀딱 반하고 말았습니다." 문하에 들어갔다. 1980년이었다.

김수악 명인에게서 구음, 판소리, 장구, 북 등을 배웠다. 아울러 고 허종복 명인에게 고성오광대 상여소리를, 고 한윤영 명인에게 가산오광대 중타령을, 고 양극수 양극노 명인에게는 동래지신밟기 풀이, 고 문장원 명인에게서 동래상여소리를 배웠다. 강원도 정선을 찾아가 김병하 선생에게 '정선아라리'를 사사했고, '적벽가' 인간문화재 한승호 선생을 찾아가 서편제를 배웠다.

민속예술보존회서 소리·춤 가르쳐

두 사람은 결혼 후에도 결혼 전처럼 서로를 손 선생, 김 선생으로 부르고 있다. 부부이기 이전에 함께 공연하고 함께 강연하는 동료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요즘 한달에 2~3차례 부산 온천동 금강공원 안에 있는 부산민속예술보존회서 우리 소리와 춤을 무료로 지도한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한 일이다. 부부는 대학생들의 강의요청, 기업연수, 공공기관 강연 같은 요청이 들어오면 전국 어디라도 달려간다. 벌써 10년 넘게 하는 일이다.

보람은 크다. 우리 소리와 춤의 저변확대와 대중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믿는다. "아리랑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것을 보고도 아직 우리 것을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떠들고 다닐 생각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국악, 우리 소리, 우리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그날까지 말입니다."

※이 글의 전문은 부산 대표 잡지 '부산이야기(iyagi.busan.go.kr)' 4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작성자
글·박재관/사진·문진우
작성일자
2014-04-0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623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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