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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100년 세월 부산바다 지킨 든든한 파수꾼

부산 기네스를 찾아라! ⑤영도등대
1906년 첫 점등 … 2004년 해양문화공간 변신, 시민 발길 이어져

내용

등대는 항로표지 중 하나다. 항로표지는 배의 운항을 돕기 위한 인공시설을 뜻한다. 빛을 이용한 광파표지, 생긴 모양을 이용한 형상표지, 전파를 이용한 전파표지 등이 있다.

등대는 광파표지에 해당한다. 등대는 지키는 사람이 있고 없음에 따라 유인등대와 무인등대로 나눈다. 유인등대는 먼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육지를 처음 인지하는 등대라 해서 육지초인등대라고도 불린다. 부산에 있는 유인등대는 세 군데. 영도와 오륙도, 가덕도 등대다. 세계 모든 유인등대는 등탑을 흰 색으로 쓰기에 세 등대 모두 희다.

영도등대는 부산최초 등대다. 1906년 12월 첫 불을 밝혔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1974년 영도등대로 이름 바꿔

영도등대는 부산최초 등대다. 1906년 12월 첫 불을 밝혔으니 100년이 넘은 등대다. 우리나라에선 열 번째 등대다. 남구 감만동 제뢰등대 점등일은 영도등대보다 한 해 이른 1905년 6월. 그럼에도 영도등대가 부산최초 등대로 불리는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제뢰등대가 있는 곳은 지금은 뭍이지만 원래는 바다 한가운데 오리처럼 생긴 암초였다. 그러니까 처음은 등대가 아니라 암초나 수심 얕은 곳에 설치했던 등표였다. 제뢰등대는 2001년 등대 기능을 마감하고 영구보존 등대로 지정돼 부산 앞바다 터줏대감이 됐다.

영도등대의 처음 이름은 목도(牧島)등대.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어 영도를 목도라 불렀고 그게 등대 명칭이 됐다. 워낙에 빠른 명마들이라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해서 절영도(絶影島)라고도 했다. 광복 이후 1948년부터는 등대 이름도 절영도등대가 된다. 1974년 영도등대로 개칭했고 1988년 8월 영도항로표지관리소란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덩달아 등대지기란 호칭도 항로표지관리원으로 바뀌었다. 등대지기란 호칭이 가난해 보이고 추워 보여서 그렇게 바꿨지만 정답기는 등대지기가 훨씬 정답다.

2004년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 탈바꿈

“우리나라 최초로 등대와 해양문화공간을 접목시킨 등대죠.” 영도항로표지관리소 김흥수 소장은 등대지기 경력 25년이 넘는 부산바다 파수꾼. 서해 끝 격렬비열도에서 등대지기를 시작한 이래 안 가 본 등대가 없다. 영도등대가 가진 남다른 면을 묻자 곧장 영도해양문화공간을 소개한다. 2004년 문을 연 영도해양문화공간은 등대 세계에선 독보적이다. 등대만의 등대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등대, 사람의 등대로 거듭나게 한 공이 크다. 영도해양문화공간은 자연사전시실, 갤러리, 도서관, 영상관, 전망대, 카페 등을 갖추고 있다.

영도등대는 풍광이 빼어나다. 영도등대가 있는 곳은 태종대. 국가가 명승지로 인정한 국가지정명승지가 부산에 두 군데 있는데 그 하나가 태종대다. 그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태종대란 지명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 태종 무열왕에서 비롯한다. 풍광 좋은 곳에서 대왕이 휴양을 취하며 소일 삼아 활쏘기 했다는 곳이 태종대다. 신선이 살았다고 해서 신선대라고도 불린다. 곳곳 공룡발자국도 볼 만하다. 등대에서 암벽 계단을 내려가면 해녀들의 해산물이 부산바다 의 깊은 맛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작성자
부산이야기 2014년 3월호
작성일자
2014-03-0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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