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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1961년 영주터널로 개통, 국내최초 차량 터널

부산 기네스를 찾아라! ②부산터널
개통 당시 인도로 시민 지나다녀 … 1988년 제2터널 완공

내용

부산터널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산최초’를 넘어 ‘한국최초’다. 1926년 개통한 여수터널이 국내최초 터널이지만 군사용 터널이 아닌 일반 차량용 터널은 부산터널이 국내최초라고 해도 무방하다.

부산터널은 그만큼 역사도 길고 사연도 길다. 원래 이름은 ‘영주터널’. 중구 영주동과 서구 대신동을 잇는 터널인데도 ‘대신동터널’이라 하지 않은 건 입구를 영주동이라고 본 까닭이다. 실제로 개통식도 영주동에서 열렸다. 후에 터널을 하나 더 뚫어 외굴에서 쌍굴이 되면서 이름도 스케일이 커져 ‘부산터널’로 바뀌었다.

현재 부산터널 모습.

1945년 착공 … 1961년 개통

부산터널 개통식은 1961년 열렸다. 부산 첫 터널이고 광복 이후 첫 터널인 만큼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최고의장이 테이프 커팅을 했다. 군복 차림이었다.

“개통식 하는 날 박정희 대통령이 온다고 해서 단체로 나가 태극기를 흔들었지요.” 건축 관련 일을 하는 김문철 기술사는 이 무렵 초등학생. 박 의장 환영 인파에 섞여 태극기를 흔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개통되기 전 터널 안은 탄광 같았다며 물이 질퍽질퍽한 길을 걸어서 중간쯤 갔다가 되돌아온 추억담도 들려준다.

부산터널이 처음 삽을 뜬 건 1961년보다 훨씬 이전인 1945년 4월 일제강점기 당시다. 착공은 했지만 오랫동안 완공하지 못하고 방치돼 김문철 기술사의 추억담처럼 어느 지점이 꽉 막힌 탄광 갱도 같은 느낌을 줬다. 완공을 미룬 이유는 광복을 맞아 일본이 물러가고 뒤이어 터진 6·25전쟁 때문이다.

1988년 2터널 완공 … ‘부산터널’로 이름 바꿔

터널 길이는 640m. 부산역 맞은편 왼쪽 구봉산과 보수산이 이어지는 산기슭을 뚫어 길을 냈다. 터널을 개통하면서 영주동과 대신동을 오가기가 편해졌다. 지금은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바뀐 미국 공보관(문화원)이 있던 대청동 대청로 쪽으로 돌아가야 했던 불편에서 벗어나 600m 남짓만 걸으면 여기와 저기가 이어졌다. 오늘날에는 차만 다니지만 애초에는 차도와 인도를 겸한 2차선 도로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차가 늘어나고 터널은 수시로 막히고 밀렸다. 1980년대 중반 터널 옆에 제2터널을 뚫는 공사를 벌였다. 제2터널은 88올림픽을 치르던 해 완공했다. 기존터널은 영주동에서 대신동으로 가는 2차선 일방통행로가 됐고 2터널은 반대 방향의 일방통행로가 됐다.

터널 영주동 입구에서 고개를 들면 산비탈에 동아와 금호아파트가 보인다. 시영아파트였던 영주아파트가 있던 자리고 그 이전에는 6·25전쟁 피란민들의 ‘하꼬방’ 판자촌이 있던 자리다. 그러니까 부산터널은 피란민의 곤궁한 삶을 떠받친 터널이고 곤궁한 삶에서 벗어나 자수성가로 이끈 터널이다.

작성자
부산이야기 2014년 1월호
작성일자
2014-02-0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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