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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핫도그 아줌마와의 추억

내용

내가 부산에 살았을 때가 갓 대학 새내기 무렵이었으니 벌써 14년 전의 일이다. 그러고 보면 꽤 오래전이다, 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해 열렸던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기점으로 열광의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도 모자라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총 네 번의 월드컵이 열렸던 시간이니 말이다.

98년의 겨울은 참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아늑한 원룸이 아닌 차갑고 냄새나는 경성대 후문 남부시립도서관 발치의 반지하방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연탄을 떼는 무보증 월세 10만원의 좁은 반지하방에서 나의 20대가 시작하고 있었다.

당시 내 자취방에서 보이는 풍경은 단순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신발과 다리가 전부. 추운 겨울 이불 속 잠을 깨우는 소리도 사람들의 바쁜 발소리였다. 가끔 주말엔 잠이 깨어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곤 했는데 결코 날씬한 여대생들의 짧은 치마를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땅히 볼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상 용돈은 생각지도 못했을 때, 나는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 내 한 달 월급은 30만원으로 이 중 집세 10만원을 제외하면 내게 남은 건 20만원이었다. 이건 학교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금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난 바람 빠진 풍선마냥 뱃가죽이 딱 붙을 정도로 처절하게 굶는 날이 많았다. 그 날 역시 그랬다. 먹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지 못한 스무 살의 나는 제대로 된 싸움도 시작하지 못한 채 항복하고만 패잔병 같았다. 그때였다.

똑똑.

그 누구도 두드리지 않았던 내 반지하방 창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잘못 들은 건가' 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잇따라 들리는 소리.

똑똑.

열어 재친 창문 밖에는 핫도그 아줌마가 서있었다.

신학대학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에 자리 잡은, 즉 내 자취방 옆에 위치한 핫도그 가게의 바로 그 아줌마였다.

“학생, 이거 먹어요.”

그녀는 메시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아줌마 손엔 들려있던 식은 핫도그 한 개는 나의 구원자였다. 그것도 500원짜리 일반 핫도그가 아닌 감자가 붙은 700원짜리 고급 핫도그가 아니었던가. 어두운 반지하방을 뚫고 들어오는 핫도그의 식은 냄새는 진정으로, 여태껏 맡아본 가장 맛있는 '음식'의 냄새였다.

그때부터였다.

오후 5~6시를 기다리는 일상이 시작됐던 것이. 아침 10시에 장사를 시작하는 핫도그 아줌마는 오후 5~6시면 일을 끝마치곤 했다. 아줌마가 셈을 아주 잘했던 날이 아니고는 거의 한, 두개의 핫도그가 남았었는데, 아줌마는 늘 내게 남은 핫도그를 건네어 주곤 했다. 쾌쾌한 반지하방의 창문을 통해서 말이다.

그때부터 나와 핫도그 아줌마 사이에는 사인이 생겨났다. 500원짜리 일반 핫도그는 '민둥산 ', 감자튀김이 여러 개 박힌 700원짜리 핫도그는 '도깨비방망이'라고 말이다.

“학생, 오늘은 도깨비방망이네.”

또는 “학생, 안타깝지만 오늘은 민둥산이야.”

라는 식이었다.

대한민국 90% 이상의 아줌마들이 그러하듯 대략 50대로 보이는 그녀 역시 까만 뽀글 파마머리에 허름한 앞치마, 추위를 피하기 위한 여러 장의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 통영에 있는 엄마 생각이 날 때도 있었다. 물론 우리 엄마는 매 끼니마다 핫도그를 먹이진 않지만.

핫도그 아줌마와의 추억은 또 있다. 앞서 말했듯 내 자취방은 연탄을 떼는 반지하방이었는데 연탄을 살 돈도 없었던 적이 많아 입 밖으로 숨을 뱉을 때마다 허연 입김이 나오곤 했다.

“아줌마, 잘 먹을게요.”

라며 감사 인사를 건넬 때마다 부끄럽게 새어나오던 뭉친 입김을 보았던 것일까.

똑똑.

이 날 역시 익숙한 노크소리.

드르륵.

문을 연다. 역시 핫도그 아줌마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그녀의 손엔 핫도그가 없다.

“학생, 안 바쁘면 잠깐 나와 볼래?”

“네? 무슨 일이세요? 뭐 도와드려요?”

두꺼운 외투를 대충 걸쳐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가보니 대문크기만한 스티로폼이 여러 장 세워져있었다.

“아줌마, 이게 뭐에요?”

“응, 학생. 방바닥에 이거 놓고 위에 장판 깔고 자면 좀 괜찮을 거야.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순간,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눈물이 찔끔 나올 뻔 했다. 물론 감동의 눈물.

“보니까, 방이 좀 추운 거 같더라고. 바닥이라도 덜 차가우면 나을 거야.” 라며 아줌마는 쑥스러운 듯 슬며시 웃었다.

문득, 평생을 살던 작은 고향을 뒤로 하고 부산이라는 낯선 땅에 살기로 마음먹었을 때가 떠올랐다. 새로운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 반, 집을 떠난다는 낯설음에 대한 두려움 반이었다. 그리고 이날 본 낯선 부산 아줌마의 쑥스러운 웃음은 부산에 대한 경계심을 풀기에 충분했다.

이후 나는 도톰한 스티로폼의 힘이었는지 젊은 스무살의 패기였는지 연탄을 떼지 않고도 한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 나의 핫도그 아줌마와의 이별이 오고 있었다.

겨울이 끝나가던 2월 중순, 이날도 어김없이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

도깨비방망이를 든, 쭈그리고 앉아 몸을 창가로 숙인 핫도그 아줌마가 말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녀의 표정엔 왠지 아쉬움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학생, 오늘이 마지막 핫도그야. 다행히 도깨비방망이네.”

도깨비방망이를 힘주어 말하는 그녀가 웃었다.

마지막 핫도그라는 말에 난 긴장했다. 마지막은 늘 슬픈 법이니까.

“아줌마, 어디 가세요?” 라는 내 질문에

“응, 집에 일이 좀 생겨서 당분간 장사를 못할 거 같아.” 라고 대답하는 그녀.

내 스무살의 추운 겨울, 배고픔을 달래주던 그 눈물 젖은 핫도그와 이제는 이별 할 때가 온 것이다.

핫도그 아줌마의 기약 없는 이별 통보에 나는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듯,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나는 말했다.

“아줌마, 잠깐만요.”

그리곤 대책 없이 쌓인 짐꾸러미를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는 무언가를 들고 그녀 앞에 섰다.

“아줌마, 이거 언젠간 필요하실 때가 있을 거예요. 제가 아끼는 물건이에요.”

중학교 때까지 탁구 선수생활을 했던 내가 보물처럼 가지고 있던 탁구채, 국가대표 선수 김택수가 쓰던 탁구채였다.

“이거 탁구채 아니야? 난 탁구 안치는데 필요 없어. 게다가 학생이 아끼는 거라면서 안 줘도 돼.” 라며 그녀는 탁구채를 가볍게 밀어냈다.

“아니에요. 정말 제가 드릴게 없어서 드리는 거예요. 나중에 탁구라도 배우시려면 탁구채가 있어야 되거든요. 이게 허름해보여도 15만원은 거뜬히 넘는 거예요. 게다가 국가대표가 직접 쓴 탁구채구요.” 슬며시 웃는 그녀. 그녀는 늘 슬며시 웃는다.

“그래, 고마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탁구채로 탁구 배워볼게.”

이것이 그녀와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리고 이 날의 핫도그는 내가 20대에 먹은 마지막 핫도그였다. 몇 달째 먹은 핫도그에 물렸다는 사실을 그녀가 떠난 이후에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4년간의 대학생활을 추억할 때면 벼락치기 시험 준비로 날을 샜던 일도, 친구들과 정말 코가 삐뚤어질 기세로 술을 마셨던 일도, 2년간의 연애 끝에 이별을 고했던 여자친구도 아닌 핫도그 아줌마의 핫도그가 먼저 떠오른다. 쾌쾌한 반지하방 창문을 통해 건네지던 식은 핫도그. 눈물 젖은 빵이 아닌 나에게는 마음이 담긴 따뜻했던 그 핫도그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을 떠나 지금은 다른 지역에 있지만 늘 부산을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든든하다. 그리고 보고 싶다.

부산은 그런 곳이다. 내겐 사랑하는 연인과 같고, 생각만으로 든든한 가족과 같은 곳 말이다. 한 사람을 통해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 이것이야말로 나와 부산의 '찐한' 러브스토리가 아닐까?

 

작성자
최성우(서울시 신림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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