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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우리의 시간여행

내용

참 많이 아팠다.
그리고 참 많이 추웠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들을 더듬어 다시 용기 내어 찾아간 나의 시간 여행.

“이제 그만하자”
담담하게 이별을 통보하는 그 사람 앞에서
6년이란 시간을 해운대 앞바다에 눈물과 함께 토해내며 잊었다.
우리의 앞날을 약속하며 평생 행복하리라 믿었던 내 믿음을 무참히 쓸고 가버린 해운대의 파도가 꼴도 보기 싫었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해 겨울은 참 길고 추웠다.

야속한 현실은 날 잡아먹을 듯 괴물처럼 달려들었다.
예식장을 취소하고,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책상위에 널부러져 있는 청첩창을 멍하니 보는 건 내 몫이니 이 악물고 견디리라. 수백번 수천번을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깨져버린 미래를 설명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던 나에게.
내가 왜 이런 비참한 삼류영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던 나에게.
그곳은 지옥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보다.
아무런 의미도 삶의 목적도 잃은 것처럼 미친 사람처럼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나를
안타깝게 여기시던 엄마의 제안.

“ 아픔은 정면으로 부딪히면 차라리 무던해지더라. 겁내지 말고 용기 내보자 ”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엄마의 반 강제적 제안에 끌려가다시피 나의 시간 여행을
출발 했다. 자식 된 도리로 더 이상 불효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컸다.

“ 마지막 기억부터 더듬어 가며 정면으로 부딪히며 지우개로 싹싹 지워버리자 ”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보이시는 엄마의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 된 엄마와의 부산 여행.
34년이라는 시간을 살면서 난생 처음 엄마와 떠나는 여행.
죄송하게도 난 설레 이지 않았고, 기대도 없었고, 그냥 싫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졌으리라.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하고 기차 여행에는 삶은 달걀과 김밥이 필수라며 새벽부터 도시락을 준비하시던 엄마의 웃음 뒤에 피눈물이 있었으리라.
그땐 내 아픔에만 집중하느라 바보같이 몰랐다. 무너지는 어미의 마음을.

해운대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엄마와 나누었던 이야기, 엄마의 마음.
광안대교 야경을 보며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시며 소녀처럼 베시시 웃으시던 엄마의 모습은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웠다.

 【 그곳이 아빠의 프로포즈 장소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 날 내가 만들어졌다는 놀라운 사실. 】

기분이 묘했다.
나에겐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지옥 같았던 그 곳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사랑의 결실의 장소였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 헛웃음의 의미를 지금도 잘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 웃음 후에 내 마음의 지옥을 버렸다.
엄마의 사랑의 추억여행의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나의 지옥이 조금씩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부산여행을 제안했을 때 왜 부산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단 한번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신기하게 여자로써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 동질감이 생겼다.
'엄마도 여자구나'
나도 모르게 엄마와의 아름다운 동행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후,
이제 엄마의 마음을 헤야리며 여자로써 함께 살아가리라 다짐하고 돌아 온 후,
엄마에게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간혹 허리가 아프다는 말씀을 하셔서 무리하지 마시라고 지나가는 말로만 이야기 했었는데,
그게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걸 뒤늦게야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집 앞 계단에서 주저 앉아 버리신 엄마의 병명은
'파킨슨병'
뇌 속에 도파민이라는 물질의 이상으로 생기는 병.
완치가 없는 병.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외국의 유명한 스포츠선수가 앓았던 병이었던가.
손떨림 증상이 동반되고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러워 진다는 그 병.
어쩌면 엄마와의 부산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후회가 밀려왔다.
좀 더 잘 할 걸,
좀 더 편안하게 해 드릴걸.
사람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진실이 싫었다.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평생 약을 복용하고 사셔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죄송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엄마는 지금도 그 때의 부산여행이 최고의 행복한 시간이었노라.
엄마에게 부산은 최고의 장소라고  
자랑처럼 이야기 하신다.  

엄마에게 행복인 그곳.
이제는 그곳이 나에게 지옥 같은 곳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사랑의 추억의 장소.
엄마와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준 장소.
나를 한 단계 성장하게 만들어 준 장소.

그 날 광안대교 야경을 보며 들었던 엄마 아빠의 그 시절의 추억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 30주년을 맞이하신 우리 부모님께 추억 여행의 장소로 만들어 드리려고 한다.
이제 엄마에겐 편안하게 여행을 즐기실 수 없는 몸의 불편함이 있지만,
마음만큼은 세상 최고로 멋진 여행으로 만들어 드리고 싶다.
세상 최고의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드리고 싶다.

이젠.
나도 사랑하고 싶다.
부산 앞바다의 프러포즈를 꿈꾸고 싶다.
아직까지 이 세상은 살 만 하다.
그리고,
부산의 바다는 따뜻하다.

작성자
최소진(서울시 수유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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