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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길에서 청렴을 만나다 ①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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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청렴을 만나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청렴이 문제다. 꼭 한두 사람, 두세 사람이 문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드는 격이다. 절대다수 공직자는 청렴하다. 대다수 공직자는 그래서 억울하다. 한두 사람 때문에 공무원 사회 전체가, 혹은 정부가, 도맷값으로 ‘썩었다’는 지탄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관공서란 관공서는 온 힘을 다해 청렴교육, 청렴시책을 펴고 있다. 청렴도 일등을 향해 직원들은 교육을 받고, 머리를 짜 시책을 만든다. 단언컨대 청렴교육, 청렴시책은 부산시가 으뜸이다. 하지만 늘 ‘한건’이 문제다. 터지면 좌절이다. ‘올해도 청렴도 꼴지 면하는 거 물 건너갔다’는 자조와 비애가 씁쓸하다.

부패를 없애고, 청렴문화를 이루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깨끗한 나라’일수록 ‘잘사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반부패, 청렴문제는 국제적 이슈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청렴은 개인과 조직은 물론 국가 경쟁력의 핵심요소다.

나는 깨끗한가? 당연하다. 그래도, 혹 모른다. 완벽한 사람은 드물므로.

부산시 인터넷신문 ‘부비뉴스’, 공식 블로그 ‘쿨부산’은 역사 속 청렴이야기 ‘길에서 청렴을 만나다’ 기획을 연재한다. 국민권익위원회 청렴교육 자료를 참고로 강직하고 청렴한 삶을 실천한 성현들의 되새길만한 사례를 가볍게 재구성한다. 다시, 청렴을 생각하며, 청렴의지를 시민과 함께 다지고, 청렴문화를 두루 확산하기 위해서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에 속해 있는 ‘발포’라는 지역에서 만호라는 벼슬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이순신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왔다.

“좌수사께서 무슨 일로 자네를 보내셨는가?”
“네, 이곳 발포 진영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오라고 하십니다.”
심부름꾼이 송구스럽다는 듯 이순신에게 대답한다.
“오동나무를 베어오라고? 그래, 무엇에 쓰신다고 하더냐?”
“예,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만든다고 합니다. 좌수사께서는 풍류를 즐기시는지라….”
이 말을 들은 이순신은 발끈했다. ‘아니, 나라가 위급한 시기에 전함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거문고를 만들어 풍류를 즐기려 하다니!’

그러나 그런 기색을 나타낼 수는 없었다.
“좌수사께 말씀드려라. 관아의 오동나무도 나라 것이니 함부로 베어 쓸 수 없다고.”

심부름꾼은 ‘하찮은 만호 따위가 자기 우두머리에게 대들다니, 미쳤군’하고 중얼거리며 돌아갔다. 직속상관인 좌수사의 명을 거역한 것이니 이제 이순신의 운명은 바람결에 쓸릴 낙엽과도 같을 터. 심부름꾼에게서 이순신의 말을 전해들은 좌수사 성박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러나 당장 어찌할 수는 없었다. 나라의 물건을 사사로이 쓸 수 없다는 이순신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 청렴교육 자료.

이순신 하면 명량대첩을 떠올린다. 명량대첩은 선조 30년(1597)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왜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다. 그러나 그전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다대포, 칠천곡에서 대패하여 해상권을 상실한 상태였다. 조선 수군의 군선은 칠천량에서 모두 격침되었고, 원균, 이억기를 비롯한 수군 장수들은 모두 전사했다. 이에 따라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

이순신 장군의 영정(왼쪽)과 용두산공원에 세워진 동상.

일본 수군은 벌써 섬진강 하구까지 진출해 있었다. 이순신은 패전 후 남은 13척의 전선과 수군을 정비하여 닥쳐올 전투에 대비했다. 수군 세력이 약한 것을 걱정한 선조는 이순신에게 해전을 포기하고 육지에서 전투할 것을 종용했다.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도 13척의 군선이 있으니 바다를 지킬 수 있다”며 이를 거절했다.

이순신은 적의 함대가 어란포에 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9월 15일 벽파진에서 우수영으로 진을 옮겼다. 장병들을 모아 “必死卽生, 必生卽死(필사즉생, 필생즉사)”를 강조한 뒤 죽기를 각오하고 적의 내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한 어르신이 술 한통을 들고 이순신을 찾아왔다.

“장군님, 감사합니다. 장군님이 다시 오셨으니 왜놈들의 침략에도 큰 걱정이 없습니다. 가진 것 없는 저희들이 겨우 술 한통을 준비했으니 받아 주십시오.”

이순신은 이에 병사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오늘은 술 마시는 날이다. 모두 술잔을 들고 다시 모여라!”

병사들은 모두 술잔을 들고 모여들었다. 이순신은 강가로 그들을 데려갔다. 그리고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술통의 술을 강물에 부었다. 병사들은 귀한 술이 강물에 버려지는 것을 보고 매우 아쉬워했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이순신은 먼저 술잔에 강물을 채운 뒤 잔을 들어 올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술잔에 강물을 채워라. 이 물은 맹물이 아니라 어르신이 우리를 믿고 승리를 당부하는 술이다.”

한 동이의 술로 병사들 모두를 먹일 수 없음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몇몇 장수들에게만 술을 나누어주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순신의 자신들을 배려하는 마음씨와 전투에 임하는 결연한 태도를 지켜본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마침내 다음날, 왜선 133척이 어란포를 떠나 명량으로 공격해오자, 13척의 전선과 군사를 정비하여 왜선을 격침시켰다. 13척의 배로 133척을 물리친 것이다. 이 전투로 조선은 다시금 해상권을 회복했다.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순신 생애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부분 10가지를 그림으로 묘사한 십경도 중 '명량대첩'(왼쪽)과 중상모략으로 공직을 박탈당해 서울로 압송되는 모습을 담은 '죄인의 몸'.

 

작성자
박재관
작성일자
2012-05-1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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