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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는 창조다

예술부산 ‘예인탐방’ ② 소설가 김성종金聖鐘 님과 만남의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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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부산|예인탐방
내용

해운대 김성종 추리문학관! 먼바다에서 해안으로 물빛 그늘이 밀려드는 오후다.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엔 불그레해져 가는 노을이 깔리기 시작한다. 창 안에는 음악방송으로 다이얼을 고정시킨 라디오에서 가벼운 고전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추리문학관 관장이신 작가이자 추리소설가 김성종金聖鐘 선생님은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인 뒤 길게 한 모금의 연기를 뱉었다.

“문화의 사랑방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1992년 3월, 25억의 사재를 털었어요. 이곳 달맞이고개에 지하1층, 지상5층의 모습으로 추리문학관을 세우고 전남 구례 출생인 내가 부산 사람이 되었지요. 그게 벌써 30여 년 전 일이네요.

추리문학관 개관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획기적이고 문화적 사건이었으며 시대를 앞서 가는 행위였어요. 고독하고 어렵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도서관인 추리문학관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도 예가 없는 세계 유일의 특이한 시설로 특성상 그 분야의 전문가가 세우고 관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이를테면 건축 관계 도서관을 설립하려고 한다면 전문가인 건축가가 그것을 세워서 운영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렇게 해야만 내용이 더 충실해져서 질적인 면에서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전문도서관의 경우 개인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 설립해야 하는 어려움과, 설립 후에도 계속해서 운영비를 지출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요. 이와 같은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원이 있을 경우 뜻있는 사람들은 사립전문도서관을 그리 어렵지 않게 세울 수 있고, 운영도 보다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립전문도서관에 대한 국가 지원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립전문도서관 설립과 운영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추리문학관은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문화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지난 10년을 고독하게 버텨왔고 앞으로도 버텨갈 것입니다. 국가에서 필요성을 인정하고 지원을 해준다면 다행이지만, 지원이 없더라도 추리문학관은 제자리를 굳건하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도움과 성원입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도움을 부탁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추리문학관을 자주 이용해 주시고, 자기 집처럼 아껴주시는 것이야말로 추리문학관을 돕는 길입니다. 여러분들의 아낌과 보살핌이 계속되는 한 추리문학관은 추리문학의 보고로서 기념비적인 위상을 확립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추리문학관에 대해 추리소설가 김성종은 할 이야기가 차고 넘쳤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추리문학관을 지켜나가기 위해 얼마만큼 그가 애쓰고 있는지를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추리소설은 발표지면이 전무한 상태에서 74년 한국일보 창간25주년 공모전에서 추리적 기법을 이용한 전쟁소설 「최후의 증인」이 당선되었지요. 1986년 추리문학대상을 수상하자, 김성종을 추리문학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소설가라고 평가해 주었지요.

현재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나보다 더 뛰어난 추리작가가 멀지 않은 날 세상에 나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물어봐요. “선생님은 추리소설만 쓰시려고 고집하시나요?”라고 말입니다. 대답을 하자면, 꼭 그런 건 아니에요. 대표적인 예로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여명의 눈동자」는 추리소설이 아니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여명의 눈동자」의 속편을 애타게 기다린다고 하자, 작가는 그런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후편을 쓰실 계획이라도……? 라고 묻자 작가의 명쾌한 대답,

“「여명의 눈동자」는 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지만 후편은 쓸 수도 있고 못 쓸 수도 있어요. 이게 내 대답입니다.”

작가는 창 밖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소설의 모티브를 얻기 위해서 무작정 훌훌 떠나거나 여행을 자주한다는 선생님은 작가는 늘 세상 모든 곳으로 촉수가 뻗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다시 작가의 말,

“여행으로 시야가 넓어지고 모험심이 충족되며 이해심이 증대되어 종내는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모든 것들이 문학적 자료로 취합되어 글쓰기에 지대한 자양분이 되지요. 그러니 기회가 닿으면 여행으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해요.

문학을 하려고 도전하거나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사라지는 많은 후배 문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글쓰기를 취미로 해서는 안돼요. 목숨을 걸고 끝까지 도전해야만 합니다. 문학은 애인처럼 곁에 두고 평생을 함께 가야 하는 업입니다. 하루 이틀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일이 아닙니다.”

이어 화두처럼 던지는 한마디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추리문학관에 들어섰을 때, 세계문학사에 빛나는 위대한 작가들의 대형사진들이 나를 압도했다. 세계의 소설과 소설가의 초상,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헤밍웨이에 이르는 문호들의 사진이 백여 점이 넘게 전시되어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완할 예정이라 한다.

문학이 실종되었다는 이 메마른 시대에, 망각의 저편에서 홀현홀몰 나타나는 작가들은 분명 위대한 문학혼으로 추리문학관을 찾는 많은 이들의 영혼의 결핍을 채워줄 것이다. 눈으로 보는 세계문학의 초상은 교육적 차원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으며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의 대화의 장으로서 문화사랑방으로 추리문학관이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계 중 가을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깊은 밤에 주로 창작을 하시지요?” 라는 나의 질문에, “낮에는 주로 글쓰기를 하고 밤엔 수면을 취한다.” 는 말로 간단하게 나의 예단이 빗나갔음을 확인시켜 준다.

오늘처럼 자신의 오랜 독자를 만나면 많이 불편하고 낯설다고 말씀하시며, 소년 같은 웃음을 지으신다. 현재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작가와 1층으로 걸어 내려온다.

추리문학관 1층 표지석 조형물에 몇 개의 구멍이 나 있다.  “이거, 꼭 총알구멍 같네요?” 내가 묻자 작가는 웃으며 “네 맞아요.”라고 대답한다.

“총알은 파괴에요. 파괴는 곧 창조를 의미하잖아요.”

창조를 위한 파괴, 역시 최고의 추리소설가 김성종 작가다운 정의다.

작가란 바다를 걸어 들어가듯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물이 배꼽에 차오를 때까지만 들어가야 하며 삶에 너무 매달려 있으면 삶을 명확히 볼 수 없다는 플로베르의 말을 끝으로 오늘의 만남을 접었다.

수평선 저만큼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천천히 잦아들고 해묵은 소나무의 푸른 솔잎들마저 고요해지는 시간, 고단한 새들이 깃들 곳을 찾아드는 시간이다.

작성자
예술부산 2009년 1·2월호
작성일자
2012-04-1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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