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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물의 집 ‘수정(水亭)’, 그리고 낙동강 화명지구 생태공원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③

내용

“날벼락이지. 여기서 50년을 살았지만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어딜 가겠어. 이러고 살아야지 뭐. 그래도 나중에 해가 저 쪽으로 빠지면 햇볕이 좀 들어와.”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거 같다. 한낮인데도 집 전체가 그늘에 짓눌려 있다. 아닌 밤 홍두깨마냥 50년 동안 잘 들던 햇볕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50년을 살아온 집주인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어르신은 눈가에 비치는 물기를 헛기침으로 애써 감추신다.



수정(水亭), 물빛 이름이 좋았다. ‘물의 집’이다. 옛사람들은 물가나 물 위에 세운 정자를 수정(水亭)이라 했다. 이름만으로 추측컨대, 옛 선비들이 풍월을 읊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뤘다. 아닌 게 아니라 부산시 지명 유래를 보니, “수정(水亭)마을은 앞으로 낙동강 물이 안기는 명당자리였다. 그리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길손이 쉬어가던 유명한 정자나무가 있어 수정(水亭)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한다.

수정마을을 찾은 건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 금정산 고당봉에서 내려오다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들어선 곳이 수정마을이었다. 뉘엿한 햇볕 속으로 할머니 한 분이 ‘삽작길’을 걷는 모습이 너무도 평화롭고 행복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골목이 아니라 ‘삽작길’이 있다는데 무척 놀랐다. 카메라가 있었으면 그냥 손이 갔을 정도였다. 그런데, 다시 찾아온 이곳엔 지금 ‘뉘엿한 햇볕’이 펼쳐놓은 풍경은 사라지고 육중한 콘크리트 그늘이 뒤덮었다.

돌과 흙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아담한 담장 너머로 마당을 손질하고 계시던 어르신께 마당 사진을 몇 장 찍고 싶다고 말씀드린다. “뭐 찍을 게 있다고” 라시며 손사래를 치시다가 대문을 열어 주신다. 마당의 잔디며 마당가 작은 채전(菜田)이 단정하고 깨끗하다. 집주인의 성격이 묻어난다. 늙은 황구 역시 순둥이다. ‘복실이’란다.

“이 집이 50년 전에 내 손으로 지은 집이야. 그땐 50가구가 넘게 살았어. 지금은 다 나가고 (그때 살던 사람들이) 반도 안 남았지. 마을이 아니지 이젠.
빌라 들어서고, 다세대 들어오고 해도 그 사람들이야 여기서 잠깐 있다가 그냥 나갈 사람들인데...”

‘마을’. 단순히 집이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마을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수정마을에도 빌라며 아파트가 여러 채 들어서 있다. 양 옆으로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다. 화명신도시 개발로 이 일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자체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주로 오래된 지붕 개량이나 주거환경 개선사업에 치중돼 있다. 건물이나 골목 모양을 보기 좋게 예쁘게 하는 데만 급급한 듯하다.

사이버 세상, 인터넷에서는 친구를 만들고 이웃과 소통하기 위한 ‘소셜 네트워크’가 강화되고 있는데, 정작 실제 사람들이 사는 현실 세상에는 사람들의 관계망이 끊어지고, 공동체 마을은 사라지고 있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현재와 같은 폐쇄형의 주택환경, 효율성만 따지는 도시 정책으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공사 중인 초대형 아파트 단지가 완공되면 수정마을은 마을 초입에 서 있는 수정(水亭)이란 마을이름 표지석으로만 남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비단 수정마을 하나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데 안타까움이 있다.

“마을이 아니지 이젠.” 어르신의 말씀이 뇌리를 때린다. 너와 내가 어우러져 우리 마을을 이루는, 그런 정겹고 건강한 마을 만들기란 어려운 것일까?


수정마을 뒤로 난 언덕길을 오른다. 아파트 단지 너머로 낙동강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쪽은 탱자나무 울타리, 오른쪽은 아파트 콘크리트 옹벽인 ‘희한한 조화’가 빚어내는 샛길을 따라 강으로 내려간다. 강에 이르는 길은 찾기가 몹시 어렵다.

경부선 철길을 따라 세워진 방음벽과 도로 사이에 조성된 ‘기차길옆 숲속 산책길’을 따라 오가는 주민들에게 강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아는 사람이 드물다. 강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시도 없다.

어렵사리 강으로 통하는 지하 진입로를 찾는다. 그야말로 휑뎅그렁하다. 낙동강 사진 액자라도 몇 개 걸어놓으면 좋으련만. 터널을 지나면 최근 개장한, 4대강 살리기의 첫 생태공원인 낙동강 화명지구 ‘휴네이처 파크’가 나온다.

공원은 금곡동에서 화명동에 이르는 면적 141만㎡ 둔치에 국비와 시비 446억원을 투입했다. 채소를 재배하던 비닐하우스와 각종 폐기물로 가득했던 곳을 인근 주민과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버려진 땅이라고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곳에 야구장 2곳, 테니스장 10개, 농구장 10개소, 축구장 3곳, 족구장 4개, 게이트볼 4곳, 인라인스케이트장 등 체육시설을 두루 갖추었으며, 강을 이용한 생태습지와 강바람을 맞으며 억새 사이로 달릴 수 있는 자전거도로까지 잘 갖춰져 있다. 가족 나들이에 그저 그만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표현할 만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공원을 만들었으면 지역 주민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 맞다. 공원은 철길에 막혀있어 걸어서 공원으로 가기가 무척 어렵다. 공원으로 가는 통로도 총 3곳뿐이다. 그것도 전철역에서 내려 쉽게 찾을 수 있게 친절한 안내 표시도 없다. 매점 같은 편의시설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좋은 뜻으로 만든 공간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다행히 부산시는 2단계 사업 계획을 가지고 있단다. 현재 체육시설 중심으로 1단계 사업을 마쳤으며, 갯버들 10리길, 연꽃. 수련단지, 수변광장, 황톳길 탐방로 등의 2단계 수변생태경관 조성사업을 마치게 되면 화명지구는 명실상부한 시민들의 휴식처와 생태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겨울 평일 오후라 그런지 화명지구 생태공원 ‘휴네이처 파크’는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 몇 명과 철새 몇 무리, 그리고 공사장 인부들만 보일뿐 삭막하고 쓸쓸하다. 낙동강의 자연성을 살리는 가운데 접근성과 편의성이 조화를 이루는 생명력 넘치는 ‘휴네이처 파크’의 새봄을 기대해 본다.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0-11-18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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