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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257호 기획연재

1953년 동광동 40계단

‘그 때 그 시절’ 추억 어린 40계단

내용
1953년 아이 업고 물동이를 인 은 아낙네가 40계단 위를 내려서고 있다(사진 왼쪽). 추억과 애환의 장소인 40계단의 최근 모습(오른쪽).

동광동 40계단은 1909년부터 1912년 사이 당시 부산에 거주한 일본인 거류민단이 쌍산(영선산 및 영국 영사관산)을 평평하게 깎아 내리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인들은 거류지에서 초량방면으로 가려면 쌍산 위의 영선고개를 넘어야 했다. 1905년부터 관부연락선과 경부선 철도가 개통한 이후 많은 일본인들이 부산으로 밀려오고, 수출입 물동량도 늘어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쌍산을 허문 것이다.

40계단이 사람들의 추억과 애환의 장소가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밀려오면서부터다. 당시 40계단은 부산역에서 대청동과 보수동 방면으로 가는 길목인 데다 부산항과 부산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

1953년 11월 발생한 부산역전 대화재 이후 옛 계단은 남쪽으로 30m 가량 옮겨 개설, 현재 동광동 40계단이 됐다.화재 후 폐허로 변한 40계단 위에서 아이를 업고 물 한 동이를 이고 내려오는 아주머니와 그 아래 보따리 짐을 이고 서성이는 아낙네의 표정은 당시 부산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재 현장의 참혹함 뿐 아니라 어렵게 보냈던 당시 부산의 표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현재 40계단 주변은 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로 조성돼 당시 생활상을 재현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계단을 기념하는 ‘40계단 문화관’에서는 매년 40계단 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작성자
부산이야기
작성일자
2007-02-2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2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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