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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23년 제빵 외길, 부산 유일 대한민국 ‘빵 명장’ 명란바게트 특허‧매출 100억대 성공 신화

내용

제과제빵 이흥용 명장 

 

 

 

부산에도 제과제빵 명장이 나왔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제빵 명장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5년부터 한길을 걸어온 이흥용(53) 셰프가 그 주인공. 정부에서 선정하는 ‘대한민국 명장’은 명장 중의 명장으로 꼽힌다. 전국 지자체가 추천한 37개 분야 후보자 중 올해는 고작 7명만 선정됐을 정도다. ‘명품 도시’ 부산의 ‘명장 도시 시대’를 활기차게 연 이흥용 셰프를 만났다.

 

올리브유‧바질‧마늘로 비린내 잡은 명란바게트

“명란바게트 평가가 대단히 좋았지요. 특허까지 받은 빵이니까요.”

대한민국 명장 선정은 꽤 까다롭다. 우선은 지자체 추천을 받아야 하고 서류며 생산 현장이며 5개월 가까이 심사를 받는다. 신제품 개발, 공정개선, 품질과 생산성 등도 꼼꼼하게 따져 봤겠지만, 이흥용 셰프가 명장으로 선정된 결정적 한 방은 명란바게트였다. 부산의 특산물 명란이 들어간 바게트가 심사위원들의 구미에 맞았다.

명란바게트는 창작의 결실이다. 시인이 긴 밤새워 시를 쓰듯 이흥용 셰프가 긴 밤새워 창안한 회심의 한 방이었다. 이 셰프가 부산 남구 문현동에서 처음 빵집을 운영하던 무렵 긴 밤은 오래오래 이어졌다. 해양도시 부산, 수산도시 부산에 걸맞은 빵이 무엇일지 골을 싸매고 고민했다. 그러던 중 번뜩 떠오른 부산의 명품 ‘명란’. 이 셰프는 마침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명란바게트는 이후 ‘오징어 먹물빵’, 오징어 먹물을 가미한 ‘검정고무신’(앙버터빵), 그리고 ‘새우바게트’ 등으로 이어졌다.

“명란바게트 특허 낼 땐 비린내 잡는 게 과제였지요.”

이흥용 셰프는 8년 전 특허를 따냈다. 특허 제10-1408821호 자갈치 명란바게트가 그것이다. 제빵 업계에서 특허를 따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업계 최초라고 내세워도 토 달 사람이 별로 없다. 특허의 방점은 ‘비린내’였다. 명란 특유의 비린내를 잡느냐 못 잡느냐에 명암이 갈렸다. 또다시 긴 밤을 새웠고 또다시 미소를 지었다. 이 셰프는 올리브유와 바질, 마늘 혼합숙성으로 해법을 찾아냈다.

 

빵집 직원 생활 10년 만에 이름 걸고 오픈한 ‘이흥용 베이커리’

이흥용 셰프가 제빵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23년째지만, 빵과 인연을 맺은 지는 더 오래됐다. 경남 밀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셰프는 수저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이웃집 아저씨 소개로 취직한 수저 공장은 반년 만에 관뒀다. 단순 작업이 지겨웠다. 부산으로 왔고 터미널이 있는 사상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거기가 빵집이었다.

사상 뉴욕빵집 생활은 인생의 전기였다. ‘이것이 내 평생의 업이다’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밥은 먹고 살겠구나’ 하는 확신이 섰다. 이름 대신 ‘이 군’으로 불렸지만 신나고 즐거웠다. 유럽 유명한 빵이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는지 알게 됐고, 일본에서는 몇 대에 걸친 명문 빵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일터와 가까운 경남정보대 식품영양학과 야간에 입학했다. 미국소맥협회 간행 ‘제과제빵이론’을 접하곤 한국 최고의 셰프가 되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때가 1985년, 스무 살 무렵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5년. 이름 석 자를 내건 빵집 ‘이흥용 베이커리’를 열었다. 뉴욕빵집 다음 일자리였던 문현동 고려당 주인의 인수 제의를 받아들여 직접 경영에 나섰다. 주인이 인수를 제의할 만큼 이흥용 셰프의 제빵기술은 수준급이었다. 서울에서 제과제빵훈련원 강사로 5년간 지내기도 했다. 그때 부인을 만났다. 서울 신라명과에 다니던 지인이 자기 부인의 친구라며 다정다감한 여자를 소개했다.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정말 천하는 이흥용 셰프의 것이었다. 지난 2003년 제과제빵 기능장으로 이름을 올렸고, 영문 이름 대신 언제 들어도 친근하고 맛있을 것 같은 과자점, ‘이흥용 과자점’으로 가게명을 바꿨다. 반듯하고 장중한 글씨 대신 앙증맞은 손글씨 간판을 내걸었다. 손글씨는 수제 빵을 연상시켰다. 이름 석 자를 내건 상호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대한민국 제과제빵 명장 이흥용 셰프는 ‘명란바게트’로 특허를 획득했다(사진은 이흥용 셰프가 운영하는 매장 모습). 

▶ 대한민국 제과제빵 명장 이흥용 셰프는 ‘명란바게트’로 특허를 획득했다(사진은 이흥용 셰프가 운영하는 매장 모습).


 

 

“제빵사 이름 단 빵집, 서울 제외하곤 내가 처음”

내가 만든 빵이 최고라는 자신감, 그게 이름 석 자 상호였다. 자신감은 오랜 시간 이어진 담금질에서 나왔다. 제빵기술을 갓 배우던 몇 년간은 쉬는 날이 없었다. 일 년에 명절 이틀만 쉬고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강행군을 이어갔다. 의사나 변호사 정도가 간판에 자기 이름을 내걸던 시절이었다. 제빵 업계에선 김충복 등 서울의 몇 군데뿐이었다. 지방에선 이흥용 셰프가 처음이었다. 이 셰프는 “젊어서 튀었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젊다고 된 일은 아닐 터. 현장과 이론에서 쌓은 내공이 물 한 방울 샐 틈 없이 단단하고 탄탄했다는 방증이었을 것이다.

자신감은 100억 원대 매출로 나타났다. 빵 하나가 얼마인지 얼추 짐작하기에 정말이지 ‘억’ 소리 나는 매출이었다. 100억 원 목표는 지난 2006년 세웠고, 딱 10년 만에 이뤘다. 차곡차곡 벽돌 쌓듯 한 해 한 해 차곡차곡 나아가 ‘억’ 소리 나는 목표를 이룬 것이다. 목표는 누구나 세우지만, 누구나 목표를 이루진 못한다. 이흥용 셰프가 목표를 이룬 저력은 그의 느긋한 심성에 있다. 그랬다. 이 셰프는 멀리 보며 한 걸음씩 느리지만 느긋하게 나아갔다. 이를 나타내는 문구가 바로 ‘행복한 느림보’다.

 

맛과 정성으로 승부하는 ‘행복한 느림보’

‘행복한 느림보’. 이흥용 과자점 여기저기서 보이는 문구다. 건물 안팎 벽에서, 모든 포장지에서 이 문구가 보인다. 행복한 느림보는 이흥용 셰프가 빵을 통해 추구하는 삶의 가치다. 빵은 발효식품인 만큼 오랜 시간 뜸을 들여야 한다. 오랜 시간 뜸 들여 정성스럽게 만들어야 좋은 빵이 된다. 고객에게 좋은 빵을 내놓으려는 마음, 고객이 좋은 빵을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행복한 느림보’이자 10년 만에 목표를 달성한 비결이다. 그렇다면 이 셰프는 어떤 빵을 추구하고 있을까.

“매일 먹어도 속이 편한 빵이지요.”

돌아온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고수일수록 말수가 적다더니 과연 명장다웠다. 속 편한 빵이 되려면 계량제를 쓰지 않고 천천히 발효시켜야 한다고. 계량제는 소금 같은 첨가제다. 팽창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질감과 부피를 돋보이게 해 거의 모든 빵에 주로 쓰인다. 시간과 비용을 줄이므로 빵집에서 계량제를 쓰지 않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위기는 없었을까. 딱 한 번 있었다. 1998년 여름이었다. 문현동 빵집 바로 앞에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섰다. 자본이며 광고, 마케팅 등등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벽을 넘지 못하면 꺼꾸러져야 했다. 하루하루 위기감을 느꼈고, 하루하루 절실했다. 이흥용 셰프가 가진 무기는 오로지 맛, 그리고 정성이었다. 맛과 정성으로 위기를 넘겨야 했다. ‘정성껏 재료를 구하고 정성껏 만들고 정성껏 보살피자!’ 그렇게 위기를 넘겼고 ‘성공 신화’로 나아갔다.

 

 

 

 

이흥용 셰프는 지난 2016년 매출 100억 원을 달성했다. 현재 강남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한 ‘이흥용 살롱 드보레’는 대구 신세계백화점 입점을 앞두고 있다. 

▶ 이흥용 셰프는 지난 2016년 매출 100억 원을 달성했다. 현재 강남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한 ‘이흥용 살롱 드보레’는 대구 신세계백화점 입점을 앞두고 있다.




“초심 잃지 않고 우리 빵 세계화 위해 노력할 것”

“강남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해 모두 아홉 군뎁니다. 12월에는 대구 신세계에 들어가고요.”

성공은 성공이다. 문현동 동네빵집에서 시작해 전국 최고급 대형백화점에 입점했고, 한 해 매출액이 100억 원이니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초심만큼은 잃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리 성공해도 지켜야 할 것은 지키려고 한다. 찬 방에서 새우잠 자던 빵집 점원 시절을 늘 마음에 두고 ‘나를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겠다’는 풋내기 사장 시절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흥용 셰프는 현재 부산청각장애인협회 이사를 맡아 매달 생일파티 케이크를 기부하고 있다. 이밖에도 대학 세 곳에 매년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으며, 푸드뱅크에 연간 1억500만 원가량을 지원하고 있다.

“제빵기술을 공유하고 전수한 디딤돌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흥용 셰프는 우리 빵을 미래지향적이며 세계적인 산업으로 내다본다. 지금은 유럽을 비롯한 서양과의 사이에 경계가 있지만, 언젠가는 빵의 세계에서 경계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 이 셰프는 명장이 가진 기술을 매뉴얼화하고 레시피를 공개했다. 남이 비법을 알까 쉬쉬하는 세상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이흥용 과자점의 리얼레시피’ 책 두 권으로 공개했다. ‘다 같이 잘되자’는 마음을 담아 밤새워 쓴 역저다.

한국 빵을 세계로 이끄는 디딤돌 기업인 이흥용 셰프. 그에게 다가가면 냄새가 난다. 어릴 때부터 맡은 구수하고 친근한 빵 냄새,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으며 살아온 명장의 냄새다.

동길산 기사 입력 2018-11-06 부산이야기 11월호 통권 145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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