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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555호 시정

응답한 박춘대 가족, 오십 년 만에 다시 만나다

응답하라, 박춘대. 그 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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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대|바티스타
내용

“더 욕심내면 안 되는데, 이젠 직접 한번 보고 싶네요.”

열여덟 살에 머나먼 이국땅, 부산에 발을 디뎠던 미군 모리스 바티스타 씨는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한 예순여덟의 할아버지가 되어있었습니다. 당시 눈에 띌 정도로 아름다웠던 강춘희 씨는 일흔둘의 나이로, 어느새 쉰을 넘긴 딸과 함께 대한민국의 여느 어머니처럼 다정다감, 손을 꼭 잡고 바티스타 씨를 마주했습니다.

부산에서 박춘대 씨를 만나 각별한 인연을 쌓은 모리스 바티스타 씨가 부산시에 '박춘대 씨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해온 지 한 달. 부산시는 SNS와 시보 '다이내믹 부산'을 통해 박춘대 씨를 찾기 시작했고, 결국 박춘대 씨는 이미 3년 전 돌아가셨고, 그의 가족들은 건강하게 부산에서 살고 있단 소식을 접했습니다. 태평양을 넘고, 반세기를 넘어 결국 박 씨의 부인 강춘희 씨와 그의 딸 미정 씨는 바티스타 씨와 만났습니다. 지난 10일 부산시청에서 '화상채팅'을 통해서요.

부산시청에서 화상채팅을 통해 만난 박춘대 씨 가족과 바티스타 씨.

"부산에서 지내던 시절을 하나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정말로…. 박춘대 씨가 참 그리웠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 고인이 되신 아버지도 항상, 바티스타 씨의 얘기를 그렇게 하셨어요."

오십 년 만에 마주한 바티스타 씨와 박미정 씨의 대화. 통역하기도 전에, 그들은 표정과 말투만 보고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박미정 씨가 세 살배기 꼬마였을 때, 바티스타 씨는 그녀의 '대부'가 되어 종종 아이를 안아 들고 사진을 찍곤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박춘대 씨는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또 언제쯤 직접 얼굴을 보며 얘기할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반가워 크게 웃고, 괜히 먹먹해져 눈물을 삼키면서요.

박미정 씨의 조카이자 박춘대 씨와 강 씨의 손자가 얼굴을 내밀자, 바티스타 씨는 크게 웃으며 반겼고, 페이스북에 친구 추가를 해달라 당부했습니다. 혹시 한국의 소식을 듣고 있냐는 물음에, 바티스타 씨는 '싸이' 열풍에 대해서도, 한국 '대선'에 대해서도 빠삭하더군요. 젓가락을 제대로 쓰지 못해 불편하던 시절의 추억, 지금 플로리다의 일식·중식당에서 젓가락질을 연습하고 있단 얘기까지 들려줬습니다.

박춘대 씨가 돌아가시고 생활은 어렵진 않은지, 혹 필요한 건 없는지 묻는 바티스타 씨에게 강 씨는 "가족들과 부산에 한 번 놀러 오시라. 오면 꼭 한번 보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바티스타 씨는 은퇴한 후 2014년엔 꼭 부산을 찾겠노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서 꿈만 같다"는 말은, 이산가족의 정을 방불케 합니다. 눈물을 삼키고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오십 년의 회포를 푸는 이들에게서, 참사람의 정은 세월도 국경도 넘어 끈끈하단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작성자
이용빈
작성일자
2012-12-1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555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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