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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5-06-15 19: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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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근현대는 특별했다. 부산의 역사를 사랑하며 자랑스럽다!
부산 근현대역사관은 부산의 "근현대"시기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이 담고 있는 박물관으로 신기한 곳이었다. 부산 중구 대청동에 있는 부산 근현대역사관은 용두산 공원과 40계단 문화거리,임시수도기념관이 가까이 있어 함께 돌아보기 좋다.
본관과 별관으로 나눠져 있는데 본관은 옛 한국은행의 부산본부 건물로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은행 부산 지점으로 쓰였던 곳이라고 한다.광복 후에는 한국은행으로 바뀌었고 우리 기술로 첫 화폐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니 매우 흥미로웠다. 지하1층에는 금고 미술관과 1층에는 카페, 2층에는 기획전시실, 3~4층에는 상설전시실, 5층에는 수장고가 있다. 별관도 일제강점기 때 지어져 일본이 우리나라 땅과 자원을 빼앗기 위해 만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산 지점으로 사용되었었고 광복 후에는 주한미국대사관, 부산미국문화원으로 활용되었지만 현재는 도서관과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 기획전시실 안내 포스터: 본인 촬영 >
개항기를 맞이한 조선의 부산은 일본에서 출발한 서양인들의 방문으로 시작되었고 부산해관에서의 근무나 선교와 의료활동들을 하며 서양 문물을 소개했다. 개항을 시작으로 일제는 부산을 경제수탈 기지 및 대륙 침략을 발판으로 삼았다. 역사관 안에는 당시 부산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성장해갔던 근대시설의 사진이 많이 있었다. 부산역의 주변으로 관공서과 회사, 숙박 시설들과 부산대교 개통과 전차가 생겨났고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조선 자원에 대한 일제의 수탈을 부추겼다고 한다. 지금의 광복로 일대와 동래온천등 근대적 관광문화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나라를 빼았기고 힘든 시간이 근대화를 핑계삼아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니 우리에겐 너무 가슴 아픈 역사이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는 많은 발전을 했지만 이런 아픈 과거가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역사관을 돌아보면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 관광의 시작 : 본인 촬영 >
<부산의 근대시설 : 본인 촬영>
일제에 맞선 부산 사람들도 광복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였다. 학생들은 비밀 결사단체를 조직해 독립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고 3.1 운동때에도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부산의 독립운동가들의 사진과 활동들을 볼 수 있어 더 뿌듯했다.이 분들의 노력으로 광복이 되어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역사관에서 우리의 올바른 과거를 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부산의 독립운동가들 : 본인 촬영 >
< 부산의 독립운동가들 : 본인 촬영 >
광복 이후 부산은 정착한 귀한동포들과 전쟁을 피해 내려온 피란민들로 급격히 인구는 증가하고 주택난, 식량난, 식수난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6.25 전쟁까지 겪으면서 피란수도 부산은 물 부족과 위생문제가 심각했고 판자촌과 국제시장의 대화재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돌아갈 곳 없는 이들에게 부산은 하루하루 버티고 살아남아야 희망의 땅이였을 것이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매우 감명깊게 보았는데 역사관을 둘러보면서 그 영화속의 영상들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사셨던 시대의 모습이라고 할아버지께서 설명해 주셨는데 살아남기 위해 거리로 나가 물건을 팔고 부산항 부두, 군부대, 부산역 주변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역사관 속 사진에 담겨있었다.
< 피란 학교 천막교실 : 본인 촬영 >
< 생계유지를 위해 국제시장에 물건 팔러 나옴 : 본인 촬영 >
부산은 광복과 전쟁을 거치면서 인구증가와 원조 물자의 받기쉬운 항구등 유리한 조건으로 공장들이 생겨나고 기업들이 모이면서 산업도시로 성장했다. 섬유, 금속, 화학, 고무 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항만시설이 확장되며 부산은 우리나라의 수출입의 관문으로서 잠들지 않는 부산항이 되었다. 이 항구를 중심으로 어시장과 수산물가공업체가 생겼났다고 한다.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팔던 자갈치 아지매, 영도 조선소에서 수리하는 배 밑바닥에 붙어있는 부식된 녹과 조개껍데기 등을 망치로 "깡깡깡" 두드리며 벗겨내는 작업을 하던 깡깡이 아지매는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부산여성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부산여성이 강하기만 한 것 아닌거 같다. 어릴적 시장에 가면 정 많은 시장의 할머니들은 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나에게 주시며 활짝 웃으셨다. 이뻐해주시는 할머니가 좋아서 시장가는 재미가 난 항상 좋았었다. 정 많던 시장의 할머니들은 힘든 그 시대를 살아오셨다. 그래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셨었다. 조선소 발달과 부산의 신발 산업은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수출 증가로 산업 활동을 성실히 해내는 사람들로 인해 경제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가난했던 그 시대의 과거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갈 미래를 바라며 열심히 일했던 분들! 근현대역사관의 역사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설명해 주신 그대로였다.역사관을 둘러보면서 지금의 우리는 이렇게 편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옛날엔 저렇게 힘든 시간을 어떻게 참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팠다.
<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 본인 촬영 >
< 부산의 신발 산업 : 본인 촬영 >
< 대한민국 조선업의 1번지 부산 : 본인 촬영 >
아빠와 엄마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 나의 고향인 부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부산! 내가 몰랐던 부산의 역사들!
이번 취재는 부산에 대해 잘 알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다. 아직 부산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 같다. 이 글이 그런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되길 바란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부산은 어떠한 역사가 있을지 궁금하지? 직접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이번 역사관 방문을 통해 난 우리의 조상들이 만들어온 역사처럼 우리가 만들어갈 역사도 매우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를 위해 우리가 만들어갈 역사는 바르고 정직해야 할 것이다. 그 많은 자료들이 어떻게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지 하는 놀라움도 컸었기에 그것을 우리가 오래동안 잘 지켜나가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1년간 부산 꼬부기 기자단 활동을 하며 더 재미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테니 기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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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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