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어린이신문
최신호 보러가기
등록일
2026-01-15 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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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환승을 하기 위해 4호선 수안역을 자주 이용합니다. 하지만 역 안에 있는 역사관을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동래읍성 모형이 있구나” 하고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전시된 동래읍성 모형이 유난히 눈에 들어와 자세히 보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모형 뒤쪽으로 전시 공간이 더 이어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출처 - 직접 촬영
모형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
역사관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동래읍성 모형뿐 아니라 유물, 기록, 설명 자료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전투와 부산(동래)전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시를 따라가며 읽다 보니, 제가 알고 있던 임진왜란은 정말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 직접 촬영
“싸워 죽을지언정, 길을 내줄 수는 없다”
역사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동래부사 송상현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왜군이 부산 앞바다로 침입하며 전쟁이 시작되었고, 송상현은 동래읍성을 지키는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 동래의 군사 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경상좌병사 이각은 부하 장수가 “적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송상현에게 성을 지키게 하고는 북문으로 도망쳤습니다.
왜군은 성 앞에서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비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송상현은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 주기는 어렵다”라며 이를 거절하고 끝까지 싸우기를 선택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굳은 결심이 담긴 말이라는 것을 전시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출처 - 부산충렬사홈페이지
너무나 참혹했던 부산(동래)전투
전시 글과 기록을 읽을수록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동래읍성 전투는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전쟁터가 된 참혹한 사건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왜군은 성을 포위한 뒤 총과 칼로 공격했고, 군사뿐 아니라 성 안에 있던 많은 백성들까지 함께 처참히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성 안에는 시신이 겹겹이 쌓였고, 가족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통곡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특히 전시에서 소개된 글 중 “죽은 사람을 곡해(슬퍼해) 줄 사람조차 남지 않은 집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 전투가 끝난 뒤의 동래가 얼마나 끔찍한 모습이었을지 상상되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출처 - 직접 촬영
땅속에서 발견된 전투의 흔적
이 전투의 참혹함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산지하철 4호선 수안역을 건설하던 중, 이곳이 과거 동래읍성을 둘러싸고 있던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을 따라 파놓은 못) 자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발굴 조사 과정에서 임진왜란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수 많은 인골과 함께 칼, 창 같은 다양한 무기류가 출토되었으며, 이를 통해 부산(동래)전투가 실제로 얼마나 치열했는지가 확인되었습니다.
내가 매일 오르내리던 지하철역 아래에 이런 아픈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출처 - 직접 촬영
이제는 다르게 보이는 ‘동래부순절도’
역사관 관람을 마치고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오니, 벽면에 그려진 동래부순절도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그림이었는데, 이제는 그 속에 담긴 끝까지 싸우다 순절한 사람들의 모습과 마음이 떠올라 더 이상 가볍게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출처 - 직접 촬영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이 있는 수안역은 부산(동래)전투의 참혹함과,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숭고한 마음을 잊지 않게 해 주는 살아 있는 역사 공간입니다.
수안역을 지나게 된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이 역사관에 꼭 한 번 들어가 보길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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