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일동 매축지마을은 부산의 근현대사가 주민들의 생활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 부산진 앞바다를 매축하면서 만들어졌고, 당시에는 일본군의 숙소와 마구간 등 군사시설이 있었던 곳입니다. 광복 이후에는 해외에서 돌아온 귀환동포들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때는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이 들어와 살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인근 부두와 공장 등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생활하면서 오랫동안 부산 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이곳을 미래유산 후보로 생각한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마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매축지마을 한 곳에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산업화로 이어지는 부산의 변화가 겹쳐 있고, 그 과정에서 실제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도 함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였던 곳이 군사시설이 되고, 다시 귀환동포와 피란민, 노동자들의 삶터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부산이 지금의 도시가 되어온 과정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재개발과 주변 환경 변화로 예전 마을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모든 공간을 그대로 보존하기는 어렵더라도, 남아 있는 골목과 건물의 흔적, 주민들의 사진과 이야기만큼은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 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 지도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는 기록이나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 골목을 직접 걸으며 역사를 볼 수 있는 워킹코스 같은 방식으로 활용한다면 단순히 보는 유산이 아니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부산의 미래유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