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머금은 곳, 구덕령꽃마을
희석(작가)
8월의 뜨거운 하늘을 견디며 구덕령 꽃마을을 향하려다 멈칫했다. 대중교통으로 가면 분명 마을 도착하기 전에 지쳐서 아무것도 살피지 못할 것 같았다. 택시 앱을 열어 목적지에 ‘구덕령 꽃마을’을 입력했다. 검색 결과가 없다. 다른 지도 앱에 똑같이 검색하니 그제야 주소가 뜬다. 택시 기사님이 조금 더 잘 찾아갈 수 있게 ‘구덕령 꽃마을회관(부산 서구 꽃마을로163번길 7)’ 주소로 선택했다.

산길을 한참 오르자 ‘꽃마을 프로방스’ 안내판이 보였다. 사실 기사님도 초행길이어서 서로 긴장하고 있었다. 이곳이 맞는지, 이대로 올라가면 되는지 의문인 상황에서 안내판이 보이자 그제야 기사님도 웃으며 말했다.
“택시 20년 하면서 요는 내 또 처음 와보네예. 완전히 별천지네 여기!”

별천지라는 말이 정확했다. 인근 승학산과 구덕산을 자주 오르거나, 평소 등산을 즐기던 이에겐 구덕령 꽃마을이 익숙할지도 모른다. 등산객의 정류장 같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어 ‘대신동 꽃마을’이라고도 자주 불린다.
하지만 나처럼, 또 택시 기사님처럼 등산과 먼 삶을 살던 이들에겐 그야말로 별천지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든 생각은 하나다.
‘부산에 이런 곳도 있었다고?’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왔으면 어디쯤이 정류장인지 찾아보는데, 대진슈퍼를 바라본 상태로 고개만 오른쪽으로 돌리면 곧바로 보인다. 서구1번 버스가 회차 대기 중이었다. 구덕꽃마을에서 동대신동역과 서대신동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다.

# 오르막을 채운 시락국
대진슈퍼를 오른쪽에 끼고 얕은 오르막을 오르면 본격적으로 구덕령 꽃마을 관광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가 사실상 마을이라 보면 된다.

구덕령은 원래 ‘넘어가는 길’이었다. 대신동에서 고개를 넘으면 엄궁이 나오고 거기서 구포로 이어졌다. 먼 과거, 부산장과 구포장이 서는 날이면 장꾼들로 붐볐다고 한다. 지금은 고개 아래로 터널이 뚫렸고, 이 길은 넘어가는 길이 아니라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길이 됐다.
사람이 여기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개항 이후다. 일본인들이 지금의 중구 일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일거리를 찾아온 사람들이 산비탈로 밀려 올라왔다.

꽃마을이라는 이름은 여기 사람들이 꽃을 내다 팔아서 붙었다. 처음에는 구덕산과 엄광산에 핀 야생화를 꺾어다 팔았고, 나중에는 국화와 카네이션을 길러 시내 다방과 상점에 넘겼다. 새벽마다 대야를 머리에 인 아낙들이 줄지어 고갯길을 내려갔다고 한다. 1980년에 진입로가 포장되고 마을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꽃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승학산, 구덕산, 엄광산, 시약산 등. 어느 쪽에서 올라왔든 능선을 타다 보면 구덕령을 한 번은 지나게 된다. 여기까지 내려오면 대개 다리가 풀린다. 그래서 식당이 하나둘 생겼다고 한다.

1980년대 말, 두어 집이 공터에 천막을 치고 가마솥으로 시락국을 끓였다.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시락국을 팔았고, 냄새가 골목을 진동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시래기를 넣고 오래 끓이는 시락국은, 재료가 싸고 양이 넉넉하고 뜨겁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에게 팔기에 이만한 음식이 없다.

지금도 길 양쪽에 시락국 가게들이 마주 보고 늘어섰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메뉴가 다양해졌다는 것. 콩국수, 열무국수, 선지국수, 메밀국수 등이 시락국과 함께 손님상으로 나가고 있다. 단체석 완비라고 알리는 집도 보인다.
천막 아래서 하산객들을 붙잡던 작은 가게들은 이제 현대식 건물에서 새시대 손님을 맞고 있다. 시대에 맞춰 메뉴 구성도 다양하게 맞췄으나 시락국이라는 꽃마을 상징성만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 꽃마을은 지금

그러나 모든 것이 좋게만 바뀌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 차가 몰릴 수밖에 없기에, 꽃마을은 현재 불법 주차와 싸우고 있었다.
공영주차장이 곳곳에 존재하지만, 오르막을 오르기 버겁다는 이유로 차를 갓길에 세우는 이들로 인해 보행자 통로 확보가 어려웠던 것 같았다. 이에 현수막 내용처럼 가게들 앞에는 화단으로 보행자 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과 같이 비상등도 켜지 않은 채 화단 옆에 차를 세워두는 사람이 있었다. 현수막과 화단으로 마을의 안전을 지키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잠시 들렀다 떠나는 이의 무심함이 보였다.

오르막을 끝까지 오르면 곧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사진 속 안내판과 같이 엄광산 유아숲 체험원으로 이어지는데, 울창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어서 순식간에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산길을 따라 천천히 가다보면 왼편 너머에 해월당 카페도 볼 수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시원한 곳에서 목 축이기 좋은 위치에 있다. 잠깐 들러서 쉬었다 갈까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에 바삐 걸음을 옮겼다.


여기까지가 마을의 끝이다. 더 올라가면 엄광산, 그리고 앞서 봤던 유아숲 체험장이 펼쳐진다. 더 오르지 않고 발길을 돌려 꽃마을로 다시 향했다. 마을 어귀 옆, 꼭 가봐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 공원과 물터

마을을 다시 내려와 구덕문화공원으로 들어간다. 입구에 나무 기둥 두 개를 세우고 가로판을 얹은 문이 있다. 그 뒤로 돌계단이 이어진다. 가볍게 오르기에는 만만치 않은 경사다.

계단을 다 오르면 두 번째 문이 나온다. 가로판에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선조의 얼이 숨쉬는 곳’이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그 아래 계단 맨 윗단에 고양이 한 마리가 숲길 안내원처럼 앉아 햇빛을 받고 있다. 사람이 다가가도 비키지 않았다.

이정표에 교육역사관, 편백나무숲길, 목석원예관, 다목적관, 다목적운동장, 민속생활관, 숲속놀이터 등 목적지가 일곱 개 걸려 있다. 약도 사진을 봐도 알겠지만 구덕문화공원 부지는 생각보다 꽤 커서 이곳을 다 돌아보려면 족히 두어 시간은 걸린다.
여러 체험 대신 편백나무숲길만 가기로 했다. 이 공원은 2004년부터 3년에 걸쳐 조성됐고, 편백 200여 그루와 소나무 500여 그루가 섞인 숲이 있다. 그 이전에는 수원지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일반인 출입이 막혀 있던 산이었다.

숲길 초입에는 팻말이 꽂혀 있다. 두 개가 함께 걸쳐 있는데, 하나는 평화롭고 다른 하나는 순간 멈칫하게 만든다. 정말로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잠시, 한 어르신 부부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며 곁을 스쳐 지나갔다. 조금 민망한 채로 어르신들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나무가 높아 하늘이 거의 안 보이는 탓에 8월인데도 그늘이 계속된다. 걷는 내내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계곡이 가까운 모양인데 나무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다. 짐작만 해보자면 아마 꽃마을천이지 않을까. 엄광산에서 발원해 사상구 학장동으로 흐르는 이 천은 2015년에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기록이 있다. 숲길을 조금 더 걷다가 돌아 나와 다시 꽃마을로 향했다.

공원을 나와 주택가로 내려오는 길에 어떤 어르신이 텀블러에 물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주택가인 이곳에서 무얼 하시는지 궁금해 다가가니 약수터가 있다.

분홍색으로 칠한 콘크리트 벽에 물고기 모양 부조를 붙여놓았다. 수도꼭지가 두 개, 아래에 배수 그레이팅. 지붕 위에는 태양광 패널이 얹혀 있다.
이 마을에 상수도가 들어온 건 1987년이다. 그전까지는 간이상수도에 식수를 의존했고 가뭄 때마다 물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산에는 오래전부터 수원지가 있었다. 1900년대 초에 구덕계곡에 수원지가 들어섰고, 그 물이 오랫동안 서구 사람들의 식수로 쓰였다.
지금은 집마다 수도가 들어오기에 굳이 다른 곳에서 식수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이 물터는 남아 있다. 산을 오가는 행락객을 위해, 때로는 산에서 내려오는 차디찬 물을 원하는 주민을 위해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 머금은 빛을 언젠가는

마을 구석구석, 그리고 문화공원까지 둘러본 후 다시 산길을 내려간다. 종일 둘러보는 동안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연령층은 대체로 장년층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미래유산이라는 존재는 미래 세대가 그 역사를 이어가야 명맥이 유지된다.
20년 경력의 택시 운전기사도 처음 와보는 곳이라면, 청년층에게 구덕령 꽃마을은 어느 소설에나 나올 법한 가상의 공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곳이 널리 알려지길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마을 주민들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그러나 마을의 존재가 세대를 넘기며 오래오래 기억될 방법으로 말이다.

꽃마을 프로방스라는 안내판의 실제 지명인 ‘프랑스 프로방스’는 빛으로 유명하다. 프로방스의 빛에 매료된 반 고흐는 그곳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어쩌면 구덕령 꽃마을에도 그 빛이 충분한데 아직은 저 먼 곳으로 닿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꽃마을이 품은 빛이 모든 이의 마음에 닿을 수 있길 바라며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