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를 품은 바닷길, 부관연락선
희석(작가)
지하철 1호선 초량역에서 내려 바다로 향했다. ‘이게 맞나?’ 싶어 몇 번이나 지도 앱을 확인하며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부산에서 태어난 이후 생의 과반을 부산에 살았지만, 놀랍게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90년대생에게 해외로 가는 길은 바닷길보다는 하늘길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게 늘 한결같던 부산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초량역 6번 출구에서 나와 바다 쪽으로 걸어가면 작은 표지판이 등장한다. 분명 저 멀리 터미널이 보이는 것 같긴 한데, 눈앞에는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다. 표지판을 따라 시선을 둔 곳에는 어두컴컴한 지하차도가 기다리고 있다. 저곳을 통과해야 터미널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솔직한 마음으론 의심이 앞섰다. ‘정말로 터미널이 나온다고?’

지하차도를 통과해 지상으로 올라서면, 그제야 안심할 만한 거리가 나온다. 큰 도로를 지나 몇 개의 건널목을 지나자 눈앞에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곡선으로 흐르는 유리 외벽 위로 ‘부산항 개항 150주년’이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방금 지나온 지하차도 위로는 부산역을 드나드는 철길이 지난다. 이 길 역시 역사가 깊다. 1905년 1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고, 그해 9월에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정기 뱃길이 열렸다. 철도의 종착점과 뱃길의 출발점을 한자리에 가진 도시는 부산이 유일했다. 일본은 이 연결을 딛고 대륙으로 향했다.
배에 오르는 길이 이렇게 멀다는 것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그래도 잘 닦인 시멘트 길을 걸은 나와 달리, 120년 전의 사람들은 더 거친 흙길을 지나 배에 올랐을 것이다. 매끈한 건물 앞 신호등을 기다리며 살펴본 광경에선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 120년이 흐르는 항구
터미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점은 공항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여러 개의 게이트가 존재하고, 게이트 앞에는 관광객들과 귀국하려는 외국인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출국장은 터미널을 통과해 3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넓은 대합실에는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설렘을 안고 기다리는 중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닷길이냐 하늘길이냐만 다를 뿐, 나들목으로서의 모습은 공항과 똑같다. 대합실 중앙 천장에 매달린 전광판은 오늘의 배편을 알리고 있었다.

후쿠오카, 상하이, 시모노세키, 다시 후쿠오카. 목적지 칸에 적힌 일본과 중국의 도시 이름들 사이에서, 나는 익숙한 글자를 찾아 헤맸다. 시모노세키. 오후 9시 출항. 선명은 성희. 성희호가 오늘 부산을 떠나는 배다. 이 성희호를 띄우는 여객선사가 바로 부산의 역사를 품고 있는 부관훼리, 옛 부관연락선의 뱃길을 이어받은 회사다.

출국장 테라스에 나가면 정박된 배를 볼 수 있다. 흰 선체에 파란 별을 그린 커다란 여객선. 뱃머리에 한글로 ‘성희’라 적혀 있고, 옆구리에는 PUKWAN FERRY라는 글자가 길게 새겨져 있다.
1905년, 이 항로에 처음 뜬 배는 1,680톤의 이키마루였다. 시모노세키로부터 밤에 떠나 이튿날 아침이면 부산에 닿는, 일본과 한반도를 잇는 첫 정기 연락선이었다. 그 뒤로 공고마루, 곤론마루 같은 배들이 뒤를 이어 이 바다를 오갔다.
그런데 배들의 이름이 공교롭다. 초기의 고라이마루와 시라기마루는 고려와 신라, 조선의 옛 나라 이름을 땄고, 1935년부터 투입된 7,000톤급 대형선에는 흥안·천산·곤륜, 일본이 넘보던 중국 대륙의 산맥 이름이 붙었다. 이미 삼킨 땅과 앞으로 삼키려는 땅의 이름이 나란히 뱃머리에 새겨져 있던 셈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엔 같은 물길 위에 성희호가 떠 있었다.

여객터미널 부두에는 성희호 외에도 다른 배들이 접안해 있다. 사진상 앞쪽에 보이는 ‘STAR LINE(스타라인)’은 부산과 대마도를 잇는 쾌속선이며, 저 멀리 아파트만큼 큰 크루즈선은 주로 세계를 일주하는 Royal Caribbean 크루즈다. 아마도 전 세계를 관광하다 당일에 부산항에 잠시 머물렀을 것이다. 120년 전엔 단 한 척만 오가던 항구는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국제 항구가 됐다.
#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대합실 양쪽에는 고려훼리, 스타라인, 팬스타라인닷컴 등의 여객선사들 매표소가 쭉 이어져 있다. 그중 한 매표소에 시선이 멈췄다. 파란 간판에 흰 글씨로 PUKWAN FERRY, 그 옆에 한자와 한글로 시모노세키(下関)라 적혀 있다. 간판 왼쪽 끝에 작은 글씨가 보인다. Since 1969.

1969년. 광복으로 끊긴 뱃길을 다시 이으려 부관훼리가 세워진 해다. 1945년, 미군의 공습으로 항로가 막힌 뒤 이 바다에는 정기선이 오가지 못했다. 스무 해가 지나 두 나라가 국교를 맺자, 배를 다시 띄우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1970년, 마침내 훼리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기 시작했다. 그 역사가 간판 한 귀퉁이에 조용히 적혀 있다.
다시 열린 뱃길은 곧 생활의 길이 되었다. 1970~80년대 이 배의 주된 손님은 보따리상이었다. 농수산물을 싣고 건너가 판 돈으로 시계와 전자계산기, 밥솥을 사 와 국제시장에 넘기며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이다. 두 나라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면서 보따리상은 자취를 감췄고, 지금은 관광객과 수학여행단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매표소 유리창에는 운임표가 붙어 있다. 스위트, 디럭스, 1등실, 2등실. 값이 등급을 따라 차례로 낮아진다. 오늘날의 승객은 지갑 사정에 맞춰 원하는 방을 고르면 된다. 그러나 이 배가 처음 다니던 시절, 조선 사람에게 이 뱃길은 그렇게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조선인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도항증명이라는 번거로운 수속을 거쳐야 배에 오를 수 있었고, 배 안에서는 감시를 받았다. 트렁크를 열어야 했고, 몸수색을 당해야 했다. 일본인에게는 없는 절차였다.
이를 증명하듯 일제강점기를 몸으로 겪은 소설가 이병주는, 『관부연락선』이라는 장편소설에 그 시절을 담았다. 소설 속 조선인 유학생은 2등표를 고집한다. 3등 칸은 감시가 심해서, 조선인은 십중팔구 트렁크를 열고 비굴한 몰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배 위에서도 조국이 어딘가에 따라 대우는 확연히 달랐다.
지금 그 등급은 객실의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오늘의 승객은 몸수색을 당하지 않고, 원하는 방을 고를 수 있다. 그 사실이 새삼스러워 운임표를 한참 들여다본다. 광복 전까지 이 항로를 오간 사람은 3천만 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에는 징용으로 끌려가던 이들이 있었고, 수탈에 농토를 잃고 북해도 탄광으로 향하던 이들이 있었다.

매표소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카트를 옆에 세워 두고, 창구 너머로 무언가를 묻는 노년의 여행자. 시모노세키행 표를 사는 중일 것이다. 그 뒷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백 년 전 이 바다를 건넌 수많은 사람들도, 결국은 저렇게 배표 한 장 앞에 선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 항구 내 유일한 미래유산
매표소 옆 기둥에 명패가 하나 붙어 있다. 그 옆으로는 커다란 화면이 일본 온천 여행을 광고하며 쉴 새 없이 바뀐다. 유카타, 가이세키 정식, 유모토 온천. 화려한 사진들 곁에서, 손바닥만 한 파란 동판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산미래유산 인증 동판이다.

2015년에 새로 지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건물은 매끈하고 환하다. 사람들은 표를 사고, 면세점을 지나, 배에 오른다. 이 바다가 어떤 바다였는지, 120년 동안 무엇이 오갔는지를 알려 주는 존재는 이 작은 명패 하나뿐이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이 항로는 박물관에 놓인 유물이 아니다. 지금도 매일 배가 뜨고, 사람이 오르고, 물자가 실린다. 살아 있기에 굳이 전시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살아 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명패는 잊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 밤에만 떠나는 배
성희호는 밤에만 떠난다. 오후 9시에 부산항을 출발해 이튿날 아침 시모노세키에 닿는다. 바다를 건너는 데는 일고여덟 시간이면 되지만, 배는 새벽에 도착하고도 항구에 머문다. 일본의 항만이 문을 여는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승객을 내린다.
낮에 찾은 터미널에서는 그 출항을 볼 수 없었다. 배는 부두에 조용히 매여 있고, 갑판 위 초록색 계류 장비만 햇빛을 받는다. 저 배가 어둠 속에서 부산항대교의 불빛을 지나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은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발길을 돌려 터미널을 마저 둘러본다. 건물 위층에는 전시컨벤션센터가 들어서 있다. 대형 홀 몇 개가 복도를 따라 이어지고, 행사 안내판과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배를 기다리는 공간 위에서 회의가 열리고 전시가 열린다. 배가 뜨고 내리는 일 사이사이, 이 건물은 사람들이 모이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었다.

먼 과거의 이곳은 일본이 대륙으로 뻗어 가기 위해 놓은 길목이었다. 조선 사람에게는 마음대로 오를 수도 없던 배가 뜨던 자리다. 그 자리에 지금은 국제 항구가 서고, 그 위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얹혔다. 길은 그대로인데, 길의 쓰임이 바뀌었다.
오늘 밤 9시에도 성희호는 부산항을 나선다. 그 배가 건너는 바다가 한때 어떤 바다였는지 기억하는 한, 이 뱃길은 앞으로도 오래 살아 있는 미래유산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