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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를 품은 바닷길, 부관연락선

부서명
문화유산과
전화번호
051-888-5091
작성일
2026-07-21
조회수
17
내용



한 세기를 품은 바닷길부관연락선


희석(작가)






지하철 1호선 초량역에서 내려 바다로 향했다. ‘이게 맞나?’ 싶어 몇 번이나 지도 앱을 확인하며 걸었다오늘의 목적지는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부산에서 태어난 이후 생의 과반을 부산에 살았지만놀랍게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90년대생에게 해외로 가는 길은 바닷길보다는 하늘길이 익숙했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내게 늘 한결같던 부산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초량역 6번 출구에서 나와 바다 쪽으로 걸어가면 작은 표지판이 등장한다분명 저 멀리 터미널이 보이는 것 같긴 한데눈앞에는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다표지판을 따라 시선을 둔 곳에는 어두컴컴한 지하차도가 기다리고 있다저곳을 통과해야 터미널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솔직한 마음으론 의심이 앞섰다. ‘정말로 터미널이 나온다고?’


 




지하차도를 통과해 지상으로 올라서면그제야 안심할 만한 거리가 나온다큰 도로를 지나 몇 개의 건널목을 지나자 눈앞에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곡선으로 흐르는 유리 외벽 위로 부산항 개항 150주년이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방금 지나온 지하차도 위로는 부산역을 드나드는 철길이 지난다이 길 역시 역사가 깊다. 1905년 1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고그해 9월에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정기 뱃길이 열렸다철도의 종착점과 뱃길의 출발점을 한자리에 가진 도시는 부산이 유일했다일본은 이 연결을 딛고 대륙으로 향했다.

 

배에 오르는 길이 이렇게 멀다는 것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그래도 잘 닦인 시멘트 길을 걸은 나와 달리, 120년 전의 사람들은 더 거친 흙길을 지나 배에 올랐을 것이다매끈한 건물 앞 신호등을 기다리며 살펴본 광경에선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 120년이 흐르는 항구

 


터미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점은 공항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여러 개의 게이트가 존재하고게이트 앞에는 관광객들과 귀국하려는 외국인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출국장은 터미널을 통과해 3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넓은 대합실에는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설렘을 안고 기다리는 중이다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닷길이냐 하늘길이냐만 다를 뿐나들목으로서의 모습은 공항과 똑같다대합실 중앙 천장에 매달린 전광판은 오늘의 배편을 알리고 있었다.







후쿠오카상하이시모노세키다시 후쿠오카목적지 칸에 적힌 일본과 중국의 도시 이름들 사이에서나는 익숙한 글자를 찾아 헤맸다시모노세키오후 9시 출항선명은 성희성희호가 오늘 부산을 떠나는 배다이 성희호를 띄우는 여객선사가 바로 부산의 역사를 품고 있는 부관훼리옛 부관연락선의 뱃길을 이어받은 회사다.






출국장 테라스에 나가면 정박된 배를 볼 수 있다흰 선체에 파란 별을 그린 커다란 여객선뱃머리에 한글로 성희라 적혀 있고옆구리에는 PUKWAN FERRY라는 글자가 길게 새겨져 있다.


1905이 항로에 처음 뜬 배는 1,680톤의 이키마루였다시모노세키로부터 밤에 떠나 이튿날 아침이면 부산에 닿는일본과 한반도를 잇는 첫 정기 연락선이었다그 뒤로 공고마루곤론마루 같은 배들이 뒤를 이어 이 바다를 오갔다.


그런데 배들의 이름이 공교롭다초기의 고라이마루와 시라기마루는 고려와 신라조선의 옛 나라 이름을 땄고, 1935년부터 투입된 7,000톤급 대형선에는 흥안·천산·곤륜일본이 넘보던 중국 대륙의 산맥 이름이 붙었다이미 삼킨 땅과 앞으로 삼키려는 땅의 이름이 나란히 뱃머리에 새겨져 있던 셈이다그리고 지금 눈앞엔 같은 물길 위에 성희호가 떠 있었다.





여객터미널 부두에는 성희호 외에도 다른 배들이 접안해 있다사진상 앞쪽에 보이는 ‘STAR LINE(스타라인)’은 부산과 대마도를 잇는 쾌속선이며저 멀리 아파트만큼 큰 크루즈선은 주로 세계를 일주하는 Royal Caribbean 크루즈다아마도 전 세계를 관광하다 당일에 부산항에 잠시 머물렀을 것이다. 120년 전엔 단 한 척만 오가던 항구는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국제 항구가 됐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대합실 양쪽에는 고려훼리스타라인팬스타라인닷컴 등의 여객선사들 매표소가 쭉 이어져 있다그중 한 매표소에 시선이 멈췄다파란 간판에 흰 글씨로 PUKWAN FERRY, 그 옆에 한자와 한글로 시모노세키(下関)라 적혀 있다간판 왼쪽 끝에 작은 글씨가 보인다. Since 1969.





1969광복으로 끊긴 뱃길을 다시 이으려 부관훼리가 세워진 해다. 1945미군의 공습으로 항로가 막힌 뒤 이 바다에는 정기선이 오가지 못했다스무 해가 지나 두 나라가 국교를 맺자배를 다시 띄우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1970마침내 훼리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기 시작했다그 역사가 간판 한 귀퉁이에 조용히 적혀 있다.

 

다시 열린 뱃길은 곧 생활의 길이 되었다. 1970~80년대 이 배의 주된 손님은 보따리상이었다농수산물을 싣고 건너가 판 돈으로 시계와 전자계산기밥솥을 사 와 국제시장에 넘기며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이다두 나라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면서 보따리상은 자취를 감췄고지금은 관광객과 수학여행단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매표소 유리창에는 운임표가 붙어 있다스위트디럭스, 1등실, 2등실값이 등급을 따라 차례로 낮아진다오늘날의 승객은 지갑 사정에 맞춰 원하는 방을 고르면 된다그러나 이 배가 처음 다니던 시절조선 사람에게 이 뱃길은 그렇게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조선인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도항증명이라는 번거로운 수속을 거쳐야 배에 오를 수 있었고배 안에서는 감시를 받았다트렁크를 열어야 했고몸수색을 당해야 했다일본인에게는 없는 절차였다.

 

이를 증명하듯 일제강점기를 몸으로 겪은 소설가 이병주는관부연락선이라는 장편소설에 그 시절을 담았다소설 속 조선인 유학생은 2등표를 고집한다. 3등 칸은 감시가 심해서조선인은 십중팔구 트렁크를 열고 비굴한 몰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같은 배 위에서도 조국이 어딘가에 따라 대우는 확연히 달랐다.

 

지금 그 등급은 객실의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오늘의 승객은 몸수색을 당하지 않고원하는 방을 고를 수 있다그 사실이 새삼스러워 운임표를 한참 들여다본다광복 전까지 이 항로를 오간 사람은 3천만 명에 이른다그 가운데에는 징용으로 끌려가던 이들이 있었고수탈에 농토를 잃고 북해도 탄광으로 향하던 이들이 있었다.





매표소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카트를 옆에 세워 두고창구 너머로 무언가를 묻는 노년의 여행자시모노세키행 표를 사는 중일 것이다그 뒷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백 년 전 이 바다를 건넌 수많은 사람들도결국은 저렇게 배표 한 장 앞에 선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항구 내 유일한 미래유산

 

매표소 옆 기둥에 명패가 하나 붙어 있다그 옆으로는 커다란 화면이 일본 온천 여행을 광고하며 쉴 새 없이 바뀐다유카타가이세키 정식유모토 온천화려한 사진들 곁에서손바닥만 한 파란 동판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부산미래유산 인증 동판이다.




2015년에 새로 지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건물은 매끈하고 환하다사람들은 표를 사고면세점을 지나배에 오른다이 바다가 어떤 바다였는지, 120년 동안 무엇이 오갔는지를 알려 주는 존재는 이 작은 명패 하나뿐이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이 항로는 박물관에 놓인 유물이 아니다지금도 매일 배가 뜨고사람이 오르고물자가 실린다살아 있기에 굳이 전시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다만 그 살아 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명패는 잊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밤에만 떠나는 배

 

성희호는 밤에만 떠난다오후 9시에 부산항을 출발해 이튿날 아침 시모노세키에 닿는다바다를 건너는 데는 일고여덟 시간이면 되지만배는 새벽에 도착하고도 항구에 머문다일본의 항만이 문을 여는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승객을 내린다.

 

낮에 찾은 터미널에서는 그 출항을 볼 수 없었다배는 부두에 조용히 매여 있고갑판 위 초록색 계류 장비만 햇빛을 받는다저 배가 어둠 속에서 부산항대교의 불빛을 지나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은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발길을 돌려 터미널을 마저 둘러본다건물 위층에는 전시컨벤션센터가 들어서 있다대형 홀 몇 개가 복도를 따라 이어지고행사 안내판과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배를 기다리는 공간 위에서 회의가 열리고 전시가 열린다배가 뜨고 내리는 일 사이사이이 건물은 사람들이 모이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었다.





먼 과거의 이곳은 일본이 대륙으로 뻗어 가기 위해 놓은 길목이었다조선 사람에게는 마음대로 오를 수도 없던 배가 뜨던 자리다그 자리에 지금은 국제 항구가 서고그 위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얹혔다길은 그대로인데길의 쓰임이 바뀌었다.

 

오늘 밤 9시에도 성희호는 부산항을 나선다그 배가 건너는 바다가 한때 어떤 바다였는지 기억하는 한이 뱃길은 앞으로도 오래 살아 있는 미래유산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