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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세워진 민주주의의 횃불(민주공원)

부서명
문화유산과
전화번호
051-888-5091
작성자
조정선
작성일
2025-08-26
조회수
285
내용

2025 부산 미래유산 8월 - 민주공원


작성자 무경 (작가)



부산에 세워진 민주주의의 횃불


보수산 산꼭대기에 부산항 일대를 내려다보듯 횃불이 서 있다. 횃불 형상을 한 조형물은 산 아래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조금 뜬금없이 돋아난 것처럼 보인다. 남포동이나 영도에 볼일이 있어 갈 때면 무심히 이 형상을 보았다. 하지만 정작 그곳으로 가 볼 생각은 정작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자료를 찾으려 멀리 외출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가끔 보수산 꼭대기 가까이에 있는 중앙도서관을 가야 할 때도 있다. 중앙도서관을 갈 때면 그 근처에서 민주공원이 있다는 팻말을 보았다. 그 횃불이 민주공원 한가운데 우뚝 세워진 조형물이라는 걸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현행헌법 제1조의 조문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세워진 뒤부터 이 나라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누리기까지는 무척 긴 시간이 필요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사실 ‘민주공화국’이라는 대의를 내건 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까지의 여정과 그것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부산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부산은 민주주의의 중심지였고, 부당한 권력의 횡포와 억압에 저항하는 이들의 역동성이 끓어올랐다. 부산 사람은 그저 지켜보지만 않았으며 필요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거센 불길이 되었다는 증거가, 부산 중구 보수산 꼭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민주공원으로 가는 길


민주공원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부산역이나 남포동 일대에서 ‘민주공원‧중앙공원행’이라고 적힌 버스를 방향에 맞게만 탄다면 산꼭대기의 공원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 버스는 가파른 경사를 따라 산복도로를 한참 달리고 난 뒤 보수산 꼭대기에 도착한다.

종점에서 버스를 내린 사람들이 갈 곳은 민주공원 외에도 여럿 있다. 중앙공원으로 갈까? 아니면 중앙도서관? 4.19 광장도 인근에 있으며, 광복기념관 등의 여러 시설도 지어져 있다. 이왕 보수산 꼭대기까지 올라왔으니 이 모든 곳을 차근차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민주공원이다.





부산광복기념관과 중앙도서관. 민주공원을 들르는 이들이 방문해 보기 좋은 곳이다


이 일대는 많은 이들이 휴식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더러 보인다. 민주항쟁기념관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조형물이 보인다. 당장 정류장에 도착하면 곧바로 6.25 호국유공자 기념비가 보인다. 조각들 너머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학무부장을 지냈고 해방 이후 국회의원을 지낸 장건상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장건상 선생의 동상이 보인다면, 어느새 우리가 민주공원에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건상 선생의 동상. 그 아래 고양이가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문 대신 후문을 향해 걸어간다. 길을 따라 민주항쟁기념관 곁으로 돌아 올라가면 입구에 장승이 서 있다. 장승의 배에는 ‘天下大將軍(천하대장군)’과 ‘地下女將軍(지하여장군)’이라는 한자 대신 ‘평화할배’와 ‘민주할매’라는 한글이 적혀 있다. ‘민족통일대장부’와 ‘민주평화여장부’이라는 당당한 이름이 붙은 장승이다. 거기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나란히 선 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심은 기념식수이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두 거목의 흔적이 그렇게 나무로 남았다.




‘평화할배’와 ‘민주할매’. 이 장승들은 2016년 세 번째로 세워진 것이라 한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두 거인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나란히 서 있다



민주항쟁기념관 안에 세워진 불꽃


민주공원은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을 기록하고 민주주의에 몸 바친 열사들을 기리는 곳으로 1997년 기공식을 하고 1999년 10월 개관했다. 3.1 만세운동과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과 6월 항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부산 지역의 민주화 운동 전반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전세계적으로도 한 지역의 정신을 기리는 드문 장소이다. 부산 시민의 숭고한 민주 정신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상징적 공간으로 만들어진 민주공원의 한가운데 민주항쟁기념관이 우뚝 서서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담아내고 있다.

민주항쟁기념관은 하얗고 둥근 건물이다. 사각형으로 각진 모양이 아니라 오히려 원통이나 거꾸로 세워진 원뿔에 가까운 모양이다. 기념관 한가운데는 비어 있다. 그곳은 커다란 철제 조형물이 우뚝 서 있다. 가까이서 보면 철근들을 얼기설기 엮은 듯 보이는, 선과 선의 무질서한 연결 같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 보면 그 선들이 하늘을 향해 기세 좋게 타오르는 불꽃을 형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건물이 왜 그런 형상으로 지어진 것인지는 이제야 명확히 보인다. 민주항쟁기념관은 그 자체로 불꽃을 오롯이 담는 봉화대의 형상을 그려낸 것이다. 이 불꽃 조형물은 ‘민주의 불꽃’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민주의 불꽃’은 단순한 듯 우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조형물의 진면목을 보려 기념관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부산항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 또한 일부러 민주공원까지 올라와야지만 볼 수 있는 절경일 것이다. 부산항 너머로 펼쳐진 바다에서는 과연 ‘민주의 불꽃’이 어떻게 보일지 새삼 궁금해진다.




민주항쟁기념관의 꼭대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부산항 일대. 멀리 중앙공원 충혼탑이 보인다



기념관 여기저기에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록한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늘펼쳐보임방’이라는 이름으로 전시 공간 또한 마련되어 있다. 전시관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부산 사람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찾고 지키려 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부산지역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 일제강점기의 만세운동과 항일 투쟁의 역사부터 현대의 여러 사건을 아우르는 전시물이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장에는 민주화 운동의 흔적만 남아 있지 않으며, 독재를 정당화하고 권력을 쟁취하려던 이들이 어떻게 시민들을 억압하려 했는지 또한 남아 있다.







이곳 전시관에는 단순한 설명과 사진만 나열되어 있지 않다. 전시관 곳곳에 그 시대의 시공간을 충실히 재현하여 보여준다. 보수동에서 설립된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을 설명하는 공간에는 당시 금서로 지정되었던 수많은 책이 자리 잡고 있다. 전시관 한편에는 군모와 진압봉, 수갑이 전시되어 있으며, 또 한편 구석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붙잡힌 이들을 가둔 감옥 또한 재현되어 있다. 관람객은 제 몸 하나 제대로 눕히기 어려운 좁은 공간 안을 직접 들어가 보며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다.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순탄치 않았음을 보이는 전시물과 감방의 재현 공간



민주항쟁기념관의 정문으로 나와 본다. 정문 쪽에도 다양한 조형물이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의 기념식수를 찾아볼 수 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나무나 조각, 건물로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세의 사람들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민주주의를 바랐는지를 느끼고, 나아가 그들의 의지와 열정을 자신들의 몸과 마음에 불씨로 이어받을 수 있을 터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념식수



민주항쟁기념관의 정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부산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무척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세워지면서 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문구를 가장 앞세워 넣는다. 당시의 헌법에서 제시된 이 원칙은 현재의 헌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이어져 계승되었다.

하지만 이 한 문장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고난이 뒤따라야 했다. 일본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를 견뎌야 했으며, 해방된 이후에도 좌와 우가 갈라져 싸웠다. 남과 북이 이념이 갈려 분단되고, 한국전쟁이라는 골육상잔이 벌어졌다. 전쟁이 끝난 뒤 독재에 항거하여 4.19 혁명이 일어났다. 유신 독재 시기에도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독재에 맞섰다. 잠시 민주화의 봄이 오는가 했지만 곧 신군부가 들어섰으며, 다시금 폭압적인 통치가 이어졌고 광주에서는 5.18이라는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은 꺾이지 않았고, 결국 1987년 6월에 커다란 함성을 터트렸다. 이후에도 민주주의는 소수 권력자의 손에 위협받았고, 다수 국민의 손으로 지켜졌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이 싸움은 과거의 기억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도 우리는 독재를 꿈꾸던 자의 시대착오적인 만행을 지켜보았고 그에 맞서 거리에 나서 소리 높이지 않았던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대한민국의 역사에 부산은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부산 또한 민주주의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3.1 운동의 만세 물결이 부산 또한 뒤덮었다. 부산에서 의거를 보인 이들도 있었고,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 보낸 이도 있었다. 한국전쟁 때 부산은 피란민들을 품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였다. 4.19 혁명 때에도 부산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 불의에 저항했다. 1979년의 부마항쟁은 유신 독재를 끝내는 방아쇠가 되었다. 6월 항쟁을 상징하는 ‘아! 나의 조국’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사진은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찍혔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민주화 운동가 중 세 사람이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문현로타리에서 찍힌 상징적인 사진



이렇게 본다면 부산에 민주공원이 들어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부산을 떼어놓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설명하기는 무척 어렵다. 부산이 가진 민주주의의 상징성은 대한민국의 그 어떤 지역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

부산 사람은 성격이 급한 것처럼 보이지만, 뜻밖에 잘 참는다. 부산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불의가 세상에 넘실거리는지를 지켜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은 말한다. “암만 그래도 이거는 아이지!”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불의는 무너지고 올바름이 다시 세워진다. 부산 사람들이 뭉쳐서 움직이면 기세가 불꽃처럼 거세게 피어오른다. 그들이 피운 불꽃은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뜨겁고 밝게 비춘다. 과거의 부산 사람들이 비춘 빛 아래를 지금의 우리는 걸어간다. 언젠가 우리 앞에 다시 어둠이 찾아오면 다시 뒷사람을 위한 불꽃을 피워올릴 각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