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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 17번길 17(좌천동)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이미지

주요개요

대상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유형구분
역사
선정연도
2022년
건립시기
1919년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 17번길 17(좌천동)
이력사항

<부산진 일신여학교>

- 1895년 10월 15일 호주 장로교 선교회 여자 전도부가 일신여학교 설립
- 1905년 준공(현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념전시관)
- 1909년 08월 사립학교 인가
- 1919년 03월 11일 부산 최초 독립 만세 운동 전개, 04월 08일에도 시위 전개
- 1925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으로 이전
- 2003년 05월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
- 건물 보수 수리 후 2010년부터 기념관으로 사용 중
- 현재 기념관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 유지재단이 소유하여 관리


<부산진 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 3·1 운동이 발생한 직후 서울 학생 대표가 부산으로 와서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며 시위를 독려
-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태극기를 준비하고 만세 시위를 계획
- 3월 11일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만세 시위를 시작하고 이에 대중들이 호응하여 시위가 시작
- 시위 이후 참가인원 전원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짐
- 이후 학생들과 교사들은 각각 징역 5개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 수감

보존필요성

- 부산지역 최초의 3·1운동
­- 부산진 일신여학교 학생들의 3·11 만세 시위 이후 부산지역에 시위가 확산됨
­- 대부분의 관련자들이 국가로부터 그 공적을 인정받아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음
­-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부산·경남 최초의 근대적 여성 교육 기관
­-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 독립운동사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굳건히 만세를 외친 학생들의 의기는 미래 세대에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정신적 자산

설명문

부산에서 최초로 일어난 만세운동인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은 1919년 3·1운동이 발생한 직후 3월 11일과 4월 8일 두 번에 걸쳐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시위 이후 주도자 14명 전원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고, 학생들과 교사들은 징역을 선고받아 부산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은 부산을 넘어 경남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만든 만세 운동의 기폭제가 된 사건이었다. 이를 기념한 기념비가 1984년 부산시에 의해 조성되어 현재 동래여자고등학교의 교정에 세워져 있다. 부산진일신여학교 만세 운동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공동체 위기에 대한 지역 구성원의 헌신은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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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2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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