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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피란 의복

피란 의복

월남피란민 이기활님이 기증하신 피란 의복이다. 이 의복은 이기활님이 고향인 평안북도 태천군에서 1.4후퇴 당시 15세의 나이로 피란 올 때 고향에 남겨진 어머니가 손수 농사짓고 실을 자아 장만해 준 무명저고리 2벌이다.
신경복선생 일기

신경복선생 일기

신경복 선생 일기는 신경복 선생이 한국전쟁 발발 당시 기장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쓴 중요한 기록물이다. 이 일기는 총 6권으로 되어 있으며 1950년부터 1959년까지 신 선생의 군대, 가정, 직장, 농사 등에 관한 생활사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교과서 부족과 노천학교 등 1950년대 열악한 교육현실과 교육일정, 교육제도 등이 기록되어 교육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시장물가나 부산풍경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여 일반 서민 생활사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대한도기 그림 접시

대한도기 그림 접시

대한도기주식회사는 해방이후 부산 영도에 건립 운영된 근대 도자회사로, 1917년 일제가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설립한 조선경질도기주식회사가 그 전신이다. 가나자와(金澤)에 있던 일본경질도기주식회사와 분공장 성격의 조선경질도기주식회사는 1920년에 합병하여 새로운 일본경질도기를 창설하였고, 1925년 부산공장은 새로운 일본경질도기의 본사가 되었다. 일본경질도기의 부산본사는 해방 후 적산관리대상이 되고 1950년 양산출신의 국회의원인 지영진에게 낙찰되어 대한도기주식회사로 한번 더 개칭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대한도기에는 생활고 때문에 잠시 적을 두고 연명한 화가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은호, 변관식, 김학수, 황염수, 이중섭, 장우성 등이 있었다. 이들 화가들은 대량생산되는 생활도자기와는 달리 장식품, 기념품, 수출품으로 제작되는 특별한 도자기 제작공정에 참여하였다. 대한도기 그림접시는 한국 고유의 풍속을 그리고 접시뒷면에 작품의 제목을 한글과 영어를 병기하였으며 ‘Hand Painted’라 명시하여 대량생산되는 도자기나 전사기법의 그것들과 구별하였다. 대한도기 그림접시는 한국전쟁기 피란화가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제작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이들 그림을 도안으로 한 전사기법의 접시들이 한동안 제작되었다.

자료관리 담당자

임시수도기념관
위순선 (051-231-6341)
최근 업데이트
20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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