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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대

영가대 ( 永嘉臺, 동구 )

영가대(永嘉臺)는 오늘날의 동구 범일동 성남초등학교 서쪽 경부선 철로변에 있었다.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철거되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옛터에 표지석만 세워져 있다. 이곳은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행(通信使行)과 관련이 깊은 명소로, 1614년(광해군 6) 경상도 순찰사 권반(權盼)이 부산진성(釜山鎭城) 근처의 해안이 얕고 좁아 새로 선착장을 만들었는데, 이때 바다에서 퍼 올린 흙이 쌓여 작은 언덕이 생겼고 이곳에 나무를 심고 정자(亭子)를 만들었다.
1617년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였던 오윤겸(吳允謙)이 영가대에서 일본으로 출발한 이후 통신사행은 줄곧 이곳에서 해신제를 올리고 일본으로 갔다. 1624년(인조 2) 선위사 이민구(李敏求)가 일본 사절을 접대하기 위해 부산에 파견되었다가 이 정자를 보고 권반의 고향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永嘉)를 따서 ‘영가대’라고 이름지었다.
통신사행은 조선후기 한일관계를 밝혀주는 대표적인 선린사절로,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파견된 것은 1636년부터 1811년까지 총 9차례로 일본국왕의 요청으로, 막부(幕府)가 있는 에도(현 東京)에 파견된 사절이었다. 통신사행은 8개월간의 긴 여정으로 거친 대한해협을 건너가기란 무척 힘든 일정이었다. 통신사행은 출발 전에 영가대에서 안전 항해와 무사 귀환을 비는 해신제(海神祭)를 올렸다. 영가대는 경치가 빼어나 시인 묵객(墨客)은 물론 이곳을 거쳐간 통신사행들이 많은 시를 남겼다.

高臺蕭瑟出雲端 높은 대가 소슬하게 구름 끝에 솟았는데
陂水千尋石色磻 언덕 밑 천길 물에는 돌그림자 서려 있네
柯艦穩如藏大壑 배들이 평온히 큰 구렁에 숨겨져 있는 듯
海中終日自波瀾 바다 가운데에는 온종일 물결이 치는구나. (1643년 신유 「영가대」)

영가대는 1905년 경부선의 개통으로 양분되고 일제강점기 때 오이케 다다스케(大池忠助)의 별장인 능풍장으로 옮겨졌다가 그후 도시화 과정에서 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2000년 부산광역시의 역사유적지 표석 설치계획에 따라 동구 좌천동 지하철역 부근의 도로공원에 “부산포왜관·영가대터” 표석을 세웠고, 2003년 동구청에서 자성대 인근에 영가대 정자를 복원하여 역사교육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료관리 담당자

문화예술과
시사편찬실 (051-888-5058)
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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