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자성대

자성대 ( 子城臺, 동구 )

부산진지성(부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은 동구 범일동 670-5번지 일대로, 오늘날 좌천동 증산(甑山)에 있었던 부산진성(釜山鎭城)인 본성(本城)에 대한 지성(支城)으로 오늘날 자성대에 있었던 성을 말한다. 자성대(子城臺)라는 이름은 부산진성을 모성(母城)이라고 하고 그 자식인 자성(子城)이라는 뜻으로 말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절경지로 이해하고 있으니, 이는 당시 영가대 부근의 경승지로 이해하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성의 일부분은 1593년(선조 26) 일본군 장수 모리휘원(毛利輝元) 부자(父子)에 의해 쌓은 성이다. 성의 명칭은 여러 가지로 불려졌으나, 1597년(선조 30) 일본군 장수 소서행장이 주둔하였다고 하여 소서성이라고 하였고, 또한 환산성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 왜성이 축조되기 전에 우리의 성이 있었다고 한다. 즉 임진왜란 전 부산포에는 내성(內城)·외성(外城)이 있었는데 내성인 본성은 오늘날 정공단이 있는 일대를 중심으로 뒷산인 증산을 둘러싸고 있었던 성이고, 자성대는 그 외성으로서 쌓여져 있었던 것인데, 이 성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왜성으로 개수(改修)하였다는 것이다.

그 뒤 조선정부에서는 자성대를 중심으로 부산진성을 쌓고 4대문을 축조하여 관위를 정비하였다. 이때 만든 진성은 둘레가 1,689척 높이 13척이었고, 동문을 건춘문(建春門), 서문을 금첩관(金疊關), 남문을 종남문(鍾南門), 북문을 구장루(龜藏樓)라 하였다. 그 외에는 공진관(객사), 검소루, 진남정, 목장창(동쪽 10리), 대치창(동쪽 5리), 석포창(동쪽 45리) 등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성은 철거되었고, 자성대 부근의 바다는 매축으로 인해 옛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왜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지는 2단이며, 성곽이 남아 있는 것은 최고 10m에 최저 1.5m이다. 1974~75년 정화공사 시행하여 동문·서문·장대를 신축하여 동문을 건춘문, 서문을 금첩관, 자성대 위의 장대는 진남대라 하고 각각 편액을 달았다.

또한 1975년 9월에는 동문 주위의 성곽을 개축하였다. 자성대에는 임진란에 참가한 명장 천만리(千萬里)의 후손이 세운 천장군기념비가 남아 있고, 동쪽 산중턱에는 최영장군 비각이 보존되어 있다.

자료관리 담당자

문화예술과
시사편찬실 (051-888-5058)
최근 업데이트
2017-09-15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