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제202302호 전체기사보기

1천23일 간의 피란수도 부산, 그 중심지를 가다

피란수도 부산 그 흔적을 찾아서①임시중앙청&경무대&아미동 비석 피란 주거지

내용

6·25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다이내믹부산’은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일어선 생생한 역사의 흔적을 돌아보며 평화의 시대 부산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산은 대한민국 역사 중 가장 아팠던 1천23일간 피란수도가 돼 제 몸집보다 훨씬 많은 피란민을 보듬었다.

특히 서구는 정부 주요 기관과 대통령 관저가 모두 자리 잡으며 중요한 의사결정이 펼쳐진 대한민국의 심장이 됐다.

좁고 구불구불, 복잡한 부산 거리의 탄생

122_5 전쟁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멈출 수 없었다(사진 오른쪽은 6·25 전쟁기 부산에 자리했던 천막교실, 왼쪽은 임시수도기념관의 천막교실 체험에 참여한 시민들).

사진 제공:국가기록원, 부산일보


부산은 유라시아 대륙의 시발점이자 국제관광도시이며, 영화의 도시이다. 한편으로 부산은 복잡한 도로와 가파른 언덕까지 쏟아질 듯 빽빽이 들어선 집들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는 어쩌다 미로 같은 도로와 좁은 골목이 가득한 채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오늘날 부산 거리의 탄생을 알아보려면 1950년대 6·25전쟁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50년 6월 25일,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던 새벽.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전쟁이 발발했다. 38선을 넘어 순식간에 밀려든 북한군을 피해 전국 각지의 피란민이 기약 없는 피란길에 올랐다. 사람들은 남으로 남으로 고된 길을 걸어 유일하게 남아있던 평화의 터,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전쟁 전 약 40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까지 늘어났다. 그렇게 부산은 대한민국 역사 중 가장 아팠던 1천23일간 피란수도가 돼 제 몸집보다 훨씬 많은 피란민을 보듬었다.

몰려든 피란민들은 생존을 위해 높은 언덕에 판잣집을 지었다. 이렇게 생성된 마을이 자리 잡으며 감천문화마을, 이바구길 같은 부산의 명물 산복도로 마을이 됐다. 전쟁으로 폐허가 돼 도시를 다시 정비해야 했던 타지방과 달리 부산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생성된 근대 도시의 터 위에 피란민의 집과 상점들이 더해지며 더 좁고 더 복잡한 형태로 굳어졌다. 복잡하고 좁은 부산 거리는 전쟁의 아픔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눈물과 피란민을 포용한 부산 사람의 넉넉함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부산시는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을 보전하고 기억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와 문화재 지정을 추진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8일, 6·25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문화재청이 개최한 세계유산분과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총 9곳으로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임시중앙청(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옛 부산측후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로 구성된다.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도심지 유산의 국내 첫 유네스코 등재 추진 사례로 의의가 크다. 또한, 그동안 외면받았던 우수 근대유산의 후세 보전에도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1천23일 대한민국의 중심임시중앙청&경무대

111사진은 임시수도 당시 임사중앙청으로 사용된 경남도청(현 동아대석당박물관). 사진 제공:비짓부산


부산 중구와 서구, 영도구, 동구 등 원도심 지역은 6·25전쟁 기간 피란민이 정착하고 긴박한 전시 상황에서 각종 정책을 수립·집행한 중심이었다.


그중에서도 서구는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의 심장을 담당했다.북한군에 점령된 서울을 피해 우리나라 정부 각 기관도 부산으로 내려왔다.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5일까지(서울 수복 기간 제외) 1천23일간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수도가 됐다. 정부는 당시 경남도청(현 동아대 석당박물관)에 임시중앙청을 꾸렸다. 국무회의소와 국무총리실, 총무처, 공보처, 법제처, 기획처, 내무부, 외무부, 국방부, 법무부, 대통령·부대통령·국무총리비서실 등 8개 정부 부처가 임시중앙청에 터를 잡았다. 국회는 옛 부산극장에 들어섰으며, 사법기관과 경제·사회·문화 대표 기관들도 모두 인근에 모여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임시중앙청에서 10분 남짓 거리에 있던 경남도지사 관사 경무대에 자리를 틀었다. 임시중앙청에서는 날마다 열띤 회의가 열렸고 경무대에서는 장관 임명과 유엔군 총사령관 만남 같은 중요 행사가 치러졌다.

1953년 7월 휴전 협정 후 8월 15일, 마침내 피란수도 부산은 그 역할을 끝냈다. 정부는 다시 서울로 환도했고, 임시중앙청은 경남도청이 됐다가, 1983년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한 후에는 부산지방검찰청 청사로 활용됐다. 지난 2002년 동아대가 매입 후 2009년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으니 바로 ‘동아대 석당박물관’이다. 대통령의 거처가 됐던 경무대도 서울 환도 후 경남도지사의 관사로 되돌아 왔다. 1984년 6월 피란수도 부산의 역사를 기억하는 임시수도기념관으로 변신했으며, 지난 2012년에는 관저 뒤편에 자리한 옛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를 리모델링해 전시관으로 이용 중이다. 임시중앙청과 경무대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에서 대한민국 행정 중심지를 지나 이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122_3 사진 위 오른쪽은 임시수도 당시 대통령 관저로 활용된 임시수도기념관, 왼쪽은 내부 재현 모습. 사진 제공:비짓부산

아래 오른쪽은 1950년대 부산 거리 재현 모습. 왼쪽은 피란민 거주지 모형. 사진 제공:비짓부산, 서구


피란수도 부산의 생생한 역사를 보여주는 임시수도기념관은 크게 대통령 관저와 전시관으로 나뉜다. 대통령 관저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수행비서관들이 거주하던 당시의 실내 구조와 분위기를 재현했다. 전시관은 ‘전쟁과 삶’ ‘임시수도 부산의 1,000일’을 주제로 피란수도 시절 부산의 다양한 일상을 담았다. 허름한 판잣집과 그 앞에 자리한 물지게, 천막학교, 국제시장의 좌판,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됐던 밀다원다방 등은 전쟁 속에서도 계속되야 했던 일상의 고단함과 꺾이지 않는 희망을 보여준다.


일본인 공동묘지, 피란민 안식처로아미동 비석문화마을

122_4 사진 위 오른쪽은 아미동비석마을에 자리한 비석 주택 견본, 왼쪽은 비석이 건축재료로 쓰인 골목을 둘러보는 시민들.

사진 아래쪽은 아미동비석마을 풍경. 사진:권성훈


한편, 임시중앙청에서 2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언덕에는 피란민들이 몰리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살던 터전을 잃고 피란길에 오른 서민들의 삶은 정부 부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팍팍했다. 연고도 돈도 없이 무작정 부산에 도착한 피란민들은 생존을 위해 가파른 언덕에 둥지를 틀었다.

오늘날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 자리한 언덕배기 인근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다. 광복 후 일부 사람들은 유골을 가지고 갔지만, 대다수의 무덤은 그대로 남아 무연고가 됐다. 서슬 퍼런 생활의 현실은 무덤이나 망자에 대한 무섬증을 넘어섰다. 가진 것 없던 피란민에게 무덤의 비석은 꺼릴 것이 아니라 훌륭한 건축재료였다. 묘지 터는 축대가 됐고 집에도, 마을 담벼락에도 비석이 쓰였다. 무덤 하나의 크기는 약 3~4평. 무덤 한 칸이 판잣집 한 칸. 무덤 사이의 공간은 그대로 좁은 골목길이 됐다. 산비탈 무덤 위일망정 전쟁은 피했다고, 대통령도 근처에 있다고 주민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을 터이다. 그렇게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 탄생했다.

마을 입구에는 당시 지은 비석주택 몇 채를 모아 조성한 비석마을 피란생활박물관이 있다. 피란생활을 하던 어린이 석이와 미야의 시각으로 고등학생 삼촌의 방, 주방, 좁은 골목에 자리한 구멍가게와 이발소 등을 둘러보며 당시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오늘날 비석문화마을은 골목 곳곳을 고운 벽화로 단장해 감천문화마을, 흰여울마을 등과 더불어 부산을 대표하는 벽화마을로 불린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벽화 밑에 이제는 초연한 모습으로 담담히 드러난 비석의 흔적과 좁은 골목길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어려운 세월 다 지나갔다. 그러나 잊지는 말아주오.

작성자
하나은
작성일자
2023-02-0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302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