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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는 언제부터 영도였을까?

부산 지명 유래 ⑤절영도와 영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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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전경. 사진제공 부산일보.


영도는 원래 절영도에서 줄여진 지명이다. 절영도가 역사 기록으로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인데 여기서는 절영산으로 나타난다. 절영산이란 뜻은 그림자가 끊어진 섬, 즉 발길을 끊은 산 독산을 비유적으로 이름한 것일 수 있다. 절영산은 '고깔산'으로 불렀던 지금의 '봉래산'이다. 고깔산은 해무가 낄 때 모자를 쓴 것 같은 모양이라 붙인 이름이고 이것이 신선이 사는 봉래산과 같다고 봐 봉래산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고깔산은 일제강점기에 고깔이라는 뜻을 살려 변봉으로 표기하기도 하고 음 그대로 고갈산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18세기 이익의 한시 절영마가에서는 "바다 안에 산이 있어 그 이름이 절영"이라고 절영산을 언급하고 있다. 


'고려사'에는 '절영도 총마'로 나타나는데, 절영산이 있던 섬이란 뜻으로 절영도로 불렀고 이후 절영산 대신 절영도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1601년 설치된 절영도왜관, 1881년 설치된 절영도진 등 절영도가 나타난다. 


일제강점기에는 '목도'를 공식 명칭으로 썼지만 절영도라는 지명은 지속적으로 사용했으며 그 뜻은 섬의 그림자가 끊겨서 바다에 비추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명 해석을 붙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세 글자의 지명을 줄일 때는 앞글자를 따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절영도에서 절도로 부르지 않고 영도로 부르는 것은 절도라는 지명이 절해고도, 즉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을 의미하고 도둑을 연상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절영도가 영도로 나타난 것은 일제 강점기 자료인 1912년 '조선지지자료'의 '영도진'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자료에 나타난다고 해서 일제가 붙인 지명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조선지지자료'가 지명 개편을 위해 전통적인 지명 자료를 정리한 것도 많기 때문에 '영도'는 이 시기 기록에 나타난 지명으로 이해해야 한다. 일부 자료에서 광복 후에 절영도에서 절을 떼고 영도로 불렀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해석이다.

작성자
강아랑
작성일자
2022-05-2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209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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