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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115호 전체기사보기

“5년 준비한 올림픽, 결코 포기할 수 없었죠”

올림픽 두 달 앞두고 무릎 수술…‘할 수 있다’ 마음속 수만 번 다짐
수없이 베이고 찔린 아픔·눈물…인생 최고 순간과 행복 만들어
‘2030월드엑스포 유치’ 응원…아빠와 롯데 경기 시구 희망

내용

마운드 위에서 거침없이 공을 던지는 아빠의 모습은 어린 딸에게 너무 멋져 보였다. 세상 최고의 존재였다. 아빠는 공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넣어 던졌다. 언제나 경기의 시작부터 끝을 책임졌다. 그런 아빠를 팬들은 ‘고독한 승부사’, ‘고독한 황태자’라고 불렀다.


2∼3-메인-도쿄올림픽 펜싱 2∼3면-1여자 샤브르 단체 한국 동메달02-부산일보

△윤지수 선수는 2020도쿄올림픽 펜싱 사브르 여자단체전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승리를 이끌었다.

   한국은 윤 선수의 맹활약으로 올림픽 여자 사브르 단체전 첫 메달을 일궜다(사진은 한국 여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이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는 모습. 사진 왼쪽부터 김지연·윤지수·최수연·서지연 선수).  사진제공·부산일보
 

중학교 2학년 때 운명처럼 펜싱과 인연

프로야구 스타인 아빠를 보고 자란 딸은 어린 시절부터 운동 신경이 남달랐다. 아빠의 승부사 기질과 운동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딸은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운동선수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승부의 세계가 얼마나 냉정한지 잘 알고 있었다. 딸의 운동을 결사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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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수 선수와 윤학길 전 롯데 2군 감독. 사진제공·국제신문
 

중학교에 진학한 딸은 운명처럼 펜싱과 마주했다. 학교의 펜싱 선수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잘할 자신도 있었다. 펜싱이 너무도 하고 싶었던 딸은 아빠를 설득했고, 어렵게 허락을 받아냈다. 해운대 양운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펜싱과 인연을 맺은 딸은 아빠에게 물려받은 타고난 운동 신경과 좋은 신체 조건, 남모를 노력으로 입문 1년 만인 중학교 3학년 때 출전한 모든 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그때부터 아빠는 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딸은 아빠의 기대대로 부산디자인고 3학년 때인 2011년 만 18세의 어린 나이로 펜싱 사브르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다.


해운대 양운중·부산디자인고·동의대 출신

2020도쿄올림픽 펜싱 사브르 여자단체전 동메달리스트 윤지수. 윤지수 선수는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6라운드에서 무려 11점을 혼자서 뽑아내는 엄청난 경기력을 뽐내며 승리를 이끌었다. 한국은 윤 선수의 맹활약으로 올림픽 여자 사브르 단체전 첫 메달을 일궜다.


2∼3-윤지수02-국제신문

△윤지수 선수가 환호하는 모습. 사진제공 국제신문
 

위기 때 더 힘을 내는 윤 선수의 승부 근성은 아빠로부터 물려받았다. 윤 선수의 아빠는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레전드 윤학길 전 2군 감독이다. 윤 전 감독은 롯데자이언츠에서만 활약하며 117승 94패 평균자책점 3.33을 기록했다. 앞으로 영원히 깨어지기 힘들 전인미답의 100 완투 경기를 기록한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윤 감독도 올림픽 무대를 밟은 적이 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열린 야구 대표팀 멤버였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하면서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다.


윤 전 감독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딸의 두 번째 올림픽 도전을 누구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응원했다. 윤지수 선수는 올림픽을 두 달 앞두고 무릎 연골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런 만큼 올림픽 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윤 선수만큼 윤 전 감독도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윤 전 감독은 윤 선수가 동메달을 메고 부산 해운대 집으로 금의환향했을 때 말없이 꼭 안아주었다.


만 18세에 첫 태극마크…‘부산의 펜싱 천재’

윤지수 선수는 일찍부터 ‘부산의 펜싱 천재’로 불렸다. 태극마크를 달고 만 19세 나이에 처음 출전한 2012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할 정도로 한국의 여자 사브르를 이끌어 나갈 공인된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았다.

기대에 걸맞게 윤 선수는 2014인천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첫 올림픽 무대였지만 2016리우데자네이루 대회도 메달이 유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당혹스러운 ‘5위’였다.


윤지수 선수는 “모든 걸 쏟아부은 만큼 5위라는 경기 결과에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어요. 마치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느낌…, 펜싱 검을 손에 쥘 힘조차 없었어요. 운동을 그만두고 학업(스포츠 심리학)이나 다른 일을 해볼까 심각하게 고민하며 방황했어요. 결국에는 선수 생활을 그만두겠다고 아빠에게 말했어요. 아빠는 ‘너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 너의 올림픽 준비 과정을 아빠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순간이 힘들다고 포기하면 시간이 흐른 후 어쩌면 진짜로 후회할 수 있다’고 말씀했어요. 아빠 말씀에 힘을 얻어 다시 칼을 잡을 수 있었어요. 그때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면 올림픽 메달은 없었죠.”


하루 8시간 이상 맹연습…예상 못한 시련

윤 선수는 하루도 쉬지 않고 8시간 이상 훈련에 매달렸다. 훈련은 달콤한 결실로 돌아왔다. 2017 세계선수권에서 국내 여자 사브르 사상 최초로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미국과의 8강전 6라운드에서 혼자 13점을 획득해 8점 차(17-25) 열세를 뒤집는 활약을 펼쳤다.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여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로 2014년 인천에 이어 2연패에 성공했다. 그런 만큼 도쿄올림픽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은 충만했다.


순조롭던 올림픽 도전은 뜻하지 않은 난관과 부딪쳤다. 한국 펜싱은 유럽이나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 박자 빠르게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이른바 ‘발펜싱’이다. 발펜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술이지만 부상 위험이 높다. 한국의 펜싱 선수 대부분이 온몸에 상처를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선수도 도쿄올림픽을 두 달여 앞두고 무릎 연골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자칫 올림픽 출전이 무산될 정도로 심각했다.


“3월에 열린 헝가리 부다페스트 월드컵 사브르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어요. 그런데 무릎이 너무 아픈 거예요. 병원에서 MRI(자기공명 영상장치)까지 찍었는데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해 답답했죠. 올림픽은 다가오고, 참을 수 없어 결국 수술대에 올랐어요. 그게 6월 초였어요. 수술 후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연습과 재활에 매달렸어요. 5년을 준비한 올림픽인데, 결코 포기할 수 없었죠.”


결코 포기할 수 없어 죽을힘까지 다했지만, 시합 전날까지도 경기력은 만족할 만큼 올라오지 않았다. 마음은 초조해졌다. 더군다나 남자 사브르 단체전(금메달), 여자 에페 단체전(은), 남자 에페 단체전(동) 등 한국 펜싱 올림픽 대표팀은 참가한 단체 종목 모두에서 시상대에 올라 마지막 남은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도 국민의 기대가 높았다.


2∼3-2020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동메달-국제신문

△2020도쿄올림픽 펜싱 사브르 여자단체전 시상식 모습. 사진 맨 오른쪽이 윤지수 선수.  사진제공·부산일보
 

“솔직히 올림픽은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요. 부상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졌으니 그만큼 더 힘들었죠. 하지만 ‘해낼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스스로 격려하며 집중했어요. 10점이나 앞선 이탈리아 선수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는 순간, 몰아붙이면 역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어요. 동료들의 응원도 큰 힘을 줬어요.” 윤지수, 김지연, 최수연, 서지연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 사브르 대표팀은 윤 선수의 활약을 발판으로 이탈리아를 45-42로 물리치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너무도 포근하게 반겨준 고향 부산 바다

윤 선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올림픽 메달을 들고 고향 집에 들어서니 아빠가 제일로 반겨주었어요. 아빠도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메달 문턱에서 가로막힌 기억이 있어서인지 저보다 더 좋아하셨어요. 올림픽 메달이 전부는 아니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시상대 맨 윗자리에 서보고 싶어요.”

윤 선수는 부산에서 꿀맛 같은 일주일의 휴식기를 가졌다. 서울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싱싱한 ‘부산 회’를 마음껏 맛보고 송정 카페에서 부산 바다와 만났다. 고향 부산 바다는 올림픽으로 쌓인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주었다.


윤 선수는 세 가지 소원이 있다. 첫 번째는 2024파리올림픽 출전과 메달, 두 번째는 아빠가 활약한 롯데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사직야구장에서 시구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고향 사람들이 염원하는 ‘2030월드엑스포’를 반드시 부산이 유치하는 것이다.


2∼3-엑스포유치응원

△윤지수 선수의 2030부산우러드엑스포 유치 응원 메시지.
 

윤 선수는 도쿄올림픽 때 부산시민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며 자신도 고향 부산의 엑스포 유치를 힘껏 응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작성자
조민제
작성일자
2021-08-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115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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