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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012호 전체기사보기

BIFF와 영화도시 부산 뿌리였던 극장

기획연재-부산기네스 펃 부산 최초 극장 '행좌'

내용

1903년 무렵 지어져 … 현재 광복로 삼거리 인근 


`영화도시 부산'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흔히들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시작된 무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부산 최초의 극장이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안다면 그 생각은 좀 바뀔 것이다. 

부산 최초의 극장은 현 남포동 BIFF광장 인근에 있던 `행좌(幸座)'이다. 1903년경 지어진 행좌는 연극 전용 극장으로, 일본인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가 건축, 경영했다. 하자마 후사타로는 일제강점기 부산에 영화를 들여오는데 개입한 인물이다. 1899년 마산 지역에 있었던 하자마의 창고 광장에서 영화를 상영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행좌 전경 

-옛 행좌 전경. 사진제공 부산일보


처음 행좌는 일본의 가면극인 `가부키' 같은 극을 보여주는 극장 같은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처음엔 극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1915년 12월 폐관하고, 활동사진(현재의 영화) 상설관인 행관(幸館)으로 신축된다. 


행관은 1930년 11월 10일 화제로 소실됐다. 이후 근대식 극장건물로 지어진 것이 `소화관(昭和館)', 바로 지금의 동아데파트(중구 광복로 38)이다. 소화관은 광복 후에 조선극장(1946년 1월 1일), 동아극장(1949년 12월 8일)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했다. 1968년 7월 22일 폐관될 때까지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부산 최초 극장 행좌의 흔적은 남포동 광복로 삼거리 한 켠에서 볼 수 있다. 부산시가 지난 2009년 설치한 동판 표식과 표지석이 그것이다. 동판 표식은 행좌가 위치했던 자리를 표시하고, 표지석은 행좌와 행관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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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좌의 의미를 전하는 표지석.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때까지 영화 상영을 홍보하기 위해 광대들이 청기·홍기를 앞세우고 일종의 퍼레이드를 열었다. 영화 상영은 그 자체가 축제였다. 광대들은 부산 시내 곳곳을 찾으며 떠들썩하게 만들고 전단지를 뿌리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렇게 부산시민은 영화를 즐겼다. 


이런 흐름을 보면 BIFF가 남포동에서 출발했던 것은 당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좌-행관-소화관-동아극장으로 영화·문화 중심지 계보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부산은 `영화도시'로 한국 영화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 같은 부산의 위상과 저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역사적 흐름과 부산시민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BIFF광장과 남포동은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부산뿐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문화의 중심지이다. 〈끝〉

작성자
조현경
작성일자
2020-12-1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12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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