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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사람들이 외치는 묵음의 아우성, 그 아픈 소설적 기록

`권여선 소설 아직 멀었다는 말'

내용

 중견소설가 권여선의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은 지난해 나온 장편소설 `레몬'에 이어 권여선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책에는 `모르는 영역' `손톱' `희박한 마음' `너머' `친구' `송추의 가을' `재' `전갱이의 맛'까지 단편 8편이 실려 있다. 권여선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먹먹함과 함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현상의 이면을 꿰뚫는 예리함에 찌릿한 통증을 동시에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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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은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권여선 소설의 이 같은 특징은 `생의 비극성에 대한 이해와 연민'의 깊이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을 곱씹으며 `아직 멀었다는 말'의 책장을 넘기면 그속에는 버려진 사람들이 삼키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그득하다. 버려진 이유는 딱히 명확하지 않다. 세상 사는 일이 무 자르듯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다만 독자들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떠난 사람들조차 `어쩔 수 없어서' 떠났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어서, 혹은 살기 위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버린다, 떠난다. 남겨진 사람은 사막같은 현실 속에서 외롭고 위태롭게 생을 버틴다. 간절하게, 절박하게 버틴다. 그 위태로움이 읽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그 버림의 이유가 이 땅의 비극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는 탓에 가슴은 먹먹함과 통증이라는 모순적인 감정들로 들끓는다.

 `손톱'의 묘사는 압권이다. `굵은 고정쇠가 소희의 오른손 엄지손톱을 푹 뚫고 나와 손톱 절반이 뒤로 꺾이고 살이 찢'(54∼55쪽)기고, 손톱이 빠진 자리의 `혹에 끈끈하게 고인 약과 피와 진물'(73쪽)같은 묘사는 주인공 `소희'가 손톱을 다친 과정에 대한 묘사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약자들이 어떻게 버려지고 짓밟히고 상처 받는가에 대한 은유다. 권여선은 버려진 사람들의 고통과 이후에 겪게 되는 가혹한 현실을 육체의 손상이라는 비유를 통해 서늘하고 처절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그때 보여지는 작가의 시선이다. 권여선은 폐허의 현장에서 눈물 흘리지 않는다. 안과 밖의 경계에서 무서울 정도로 고집스럽게 서있다. 이 같은 엄정함은 이번 소설집 곳곳에서 드러난다. 버려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권여선의 냉정함은 그러나 냉혹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어쩌면 무력함에 대한 절망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쳐서 죽고, 떨어져서 죽고, 스스로 허공에 몸을 던져 죽고, 버리고 버려지는 사람들은 넘쳐난다. 그들이 쏟아내는 울음은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 담장에 갇혀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시대의 소설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멀었다는 말'에는 들리지 않지만 들리는 작가의 탄식이 묵음으로 아우성친다. 그 함성은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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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소설가.                          사진 제공 : 부산일보

소설들을 읽으며 곤궁, 고독, 아픔, 공포, 절망, 소외 등의 고통이 전해진다. 그 고통이 느껴질 때 권여선은 묻는다. 당신이 고통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이냐고. 그런 고통을 있게 한 전제와 맥락, 윤리에 대해서까지 사유하게 한다. 얼핏 무력해보여서 다분히 지쳐보이는 작가의 언어가 멈춘 지점에서 질문이 시작된다. 따라서 작가의 멈춤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일 것이다. 사유하기를, 대답하기를. 작가의 사유와 대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당신이라면 허공에 매달려 울부짖은 고통의 소리를 그저 도시의 소음쯤으로 외면하지는 않으리라. 문학동네 펴냄


                                                                                                                 김영주_funhermes@korea.kr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20-06-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07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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