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촌부가 들려주는 시론(詩論), 아들이 듣고 엮다
구술 김상순·홍정욱 옮겨 씀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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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는 독특한 책이다. 경상남도 함안에 사는 여든다섯 김상순 씨의 말을 부산에 살고있는 아들 홍정욱 씨가 추리고 엮어 한 권의 개성 넘치는 책으로 만들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구술채록집이라고 분류되겠지만, 세속의 잣대를 뛰어넘는 묵직한 울림과 단단한 힘이 있다.
사진제공·이후
1937년생인 김상순 씨는 무학이다. 스무 살에 결혼해 다섯 아이를 낳고 키우며, 평생을 산과 논과 들에 기대어 살았다. 문자를 배운 적이 없는 그이의 언어는 독특하다. 문자라는 틀에 갇히지 않을 뿐 아니라 문자 너머 대자연을 품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대신 대지와 하늘의 말에 귀 기울이고 눈을 키운 덕분이다. 상순 씨의 학교는 대자연이었다.
김상순 씨는 평생 몸으로 체득한 언어를 겨울밤의 흰 눈처럼 쏟아냈고, 어머니의 남다른 언어를 일찌감치 알고 있던 아들이 소중하게 받아썼다.
저자 홍정욱 씨는 현직 교사이면서,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 `뒷산의 새 이야기' `청딱따구리의 선물' 등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다. 김상순 씨가 무심한 듯 내뱉은 언어는 편편이 질박한 한 편의 시였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눈과 귀가 없었더라면 허공중에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상순 씨의 언어를 차곡차곡 모은 아들 덕분에 김상순 씨의 곡진한 언어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자연의 언어를 체득한 노모와 작가 아들, 두 모자가 함께 살아온 시공간과 삶의 경험이 만들어낸 공동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탄생은 비범하고, 그 내용은 모든 언어와 문학의 원형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일깨운다.
똑 눈 온 거 겉제?/달밤에 살짝 나와서 보면/누가 디라서 뿌려 놓은 눈이라./달밤에는 냄새도 희미해져서/누가 봐도 소복소복 눈이라./허, 엄마가 시를 읊소./시가 뭐꼬?/엄마가 방금 읊은, 그런 게 시요./내사 그런 건 모르고,/소복소복 눈이 쌓이모 너그가 강생이매로 구불다가/낯이 빨개가 들어오면/눈에 묻어 온 산 냄새가/온 방에 퍼지더라./엄마 진짜 잘 한다./그러면 이 시 좀 갖고 가라이./김치매로 치대서 삭혀서 묵든지/더 말리서 물 낋일 때 넣어 무라.
`무말랭이' 전문김상순 씨는 몸을 말리고 있는 무말랭이를 보며 눈이 내린 것 같다고 말한다. 무말랭이는 점점 확장한다. 눈-겨울산-아이들-김치로 이어지는 연상은 `무라'(먹어라)로 이어진다. 한 편의 시는 먹는 것이고,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고 살리는 무엇이다! 시와 문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팔순 촌부의 언어 앞에서 자세를 낮춘다. 시(詩)는 움직이는 것이고 나아가는 것이며 먹는 것이다. 김상순 씨의 시론이다.
여든다섯 촌부가 온 생으로 써온 시(詩)로 빛나는 한 권의 책이다. 서부경남 사투리의 정수를 만나는 즐거움은 덤이다.
■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 구술 김상순, 홍정욱 옮겨 씀, 그림 이우만. 이후 펴냄.
김상순 씨. 사진제공·홍정욱김영주_funhermes@korea.kr
- 작성자
- 김영주
- 작성일자
- 2020-06-01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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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202006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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