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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006호 전체기사보기

팔순 촌부가 들려주는 시론(詩論), 아들이 듣고 엮다

구술 김상순·홍정욱 옮겨 씀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

내용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는 독특한 책이다. 경상남도 함안에 사는 여든다섯 김상순 씨의 말을 부산에 살고있는 아들 홍정욱 씨가 추리고 엮어 한 권의 개성 넘치는 책으로 만들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구술채록집이라고 분류되겠지만, 세속의 잣대를 뛰어넘는 묵직한 울림과 단단한 힘이 있다.


문화면-책01살아보니그런대로괜찮다표지

​사진제공·이후



 1937년생인 김상순 씨는 무학이다. 스무 살에 결혼해 다섯 아이를 낳고 키우며, 평생을 산과 논과 들에 기대어 살았다. 문자를 배운 적이 없는 그이의 언어는 독특하다. 문자라는 틀에 갇히지 않을 뿐 아니라 문자 너머 대자연을 품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대신 대지와 하늘의 말에 귀 기울이고 눈을 키운 덕분이다. 상순 씨의 학교는 대자연이었다.
 김상순 씨는 평생 몸으로 체득한 언어를 겨울밤의 흰 눈처럼 쏟아냈고, 어머니의 남다른 언어를 일찌감치 알고 있던 아들이 소중하게 받아썼다.

 저자 홍정욱 씨는 현직 교사이면서,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 `뒷산의 새 이야기' `청딱따구리의 선물' 등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다. 김상순 씨가 무심한 듯 내뱉은 언어는 편편이 질박한 한 편의 시였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눈과 귀가 없었더라면 허공중에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상순 씨의 언어를 차곡차곡 모은 아들 덕분에 김상순 씨의 곡진한 언어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자연의 언어를 체득한 노모와 작가 아들, 두 모자가 함께 살아온 시공간과 삶의 경험이 만들어낸 공동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탄생은 비범하고, 그 내용은 모든 언어와 문학의 원형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일깨운다.


 똑 눈 온 거 겉제?/달밤에 살짝 나와서 보면/누가 디라서 뿌려 놓은 눈이라./달밤에는 냄새도 희미해져서/누가 봐도 소복소복 눈이라./허, 엄마가 시를 읊소./시가 뭐꼬?/엄마가 방금 읊은, 그런 게 시요./내사 그런 건 모르고,/소복소복 눈이 쌓이모 너그가 강생이매로 구불다가/낯이 빨개가 들어오면/눈에 묻어 온 산 냄새가/온 방에 퍼지더라./엄마 진짜 잘 한다./그러면 이 시 좀 갖고 가라이./김치매로 치대서 삭혀서 묵든지/더 말리서 물 낋일 때 넣어 무라.
 `무말랭이' 전문


 김상순 씨는 몸을 말리고 있는 무말랭이를 보며 눈이 내린 것 같다고 말한다. 무말랭이는 점점 확장한다. 눈-겨울산-아이들-김치로 이어지는 연상은 `무라'(먹어라)로 이어진다. 한 편의 시는 먹는 것이고,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고 살리는 무엇이다! 시와 문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팔순 촌부의 언어 앞에서 자세를 낮춘다. 시(詩)는 움직이는 것이고 나아가는 것이며 먹는 것이다. 김상순 씨의 시론이다.

 여든다섯 촌부가 온 생으로 써온 시(詩)로 빛나는 한 권의 책이다. 서부경남 사투리의 정수를 만나는 즐거움은 덤이다.


■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 구술 김상순,  홍정욱 옮겨 씀, 그림  이우만. 이후 펴냄.


살아보니그런대로괜찮다 김상순
김상순 씨.  사진제공·홍정욱




                                                                                                                          김영주_funhermes@korea.kr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20-06-0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06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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