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보

부산 동구 초량동 망양로580번길2에는 ‘유치환 우체통’이란 조형물이 있습니다. 초량 이바구길의 막바지에 세워져 있는 유치환 우체통은 산복도로를 한눈에 조망하는 전망대일 뿐만 아니라 편지를 넣으면 1년 뒤 수취인에게 전달되는 느린 우체통이기도 하답니다. 

부산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에 자리한 유치환 우체통.

청마 유치환은 1908년 경남 통영에서 부친 유준수와 모친 박우수 사이 5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유치환의 형은 저명한 극작가인 동랑 유치진입니다

일본의 아나키스트들과 정지용의 시에 깊은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유치환은 1931년 문예월간에 ‘정적(靜寂)’이라는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유치환 우체통에서 바라본 부산 시내 전경. 우체통에 붙인 '행복'이란 시 구절이 인상 깊다.

1932년 평양으로 이주해 사진관을 경영하지만 형편이 풀리지않자 1934년 부산 동구 초량동 100번지로 이사했습니다. 이때 그는 화신연쇄점에서 근무하며 시인 조벽암 문하에서 구매 사무를 보고, 아내 권재순은 현재의 초량동 삼일유치원에서 보모로 일하게 됩니다. 1935년에는 초량동 집에서 득남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유치환 우체통 건물 아래에 자리한 유치환의 시 '깃발'과 '그리움' 

1945년 조국 해방 이후 유치환은 활발하게 시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 온 그는 문인구국대를 조직해 육군 제3사단으로 종군하기도 했습니다. 1952년 10월에는 초량4동에 자리한 부산고등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여 교가를 작사하기도 했습니다.

시인 유치환 생존 시절의 다양한 인물 사진.

1963년에는 경남여자고등학교에 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후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현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의 교장직에 있던 그는 1967년 2월 13일 부산문인협회의 회원들과 모임을 가진 후 수정동 자택으로 귀가하던 중 좌천동 봉생병원 앞 건널목에서 시내버스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송 도중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초량 이바구길이 우리 마을 향토 자원으로 인정 받은 인증서.

이런 시인 유치환을 기리기 위해 부산 동구 초량동에 유치환 우체통을 만들게 된 것이랍니다. 유치환 우체통을 설치한 건물 아래에는 엽서 작성 코너가 있고, 유치환의 대표적인 시이자 한국인이 널리 애송하는 ‘깃발’과 ‘그리움’을 부착해 두어 방문객이 여유롭게 시를 감상하게끔 해놓았습니다.

여건이 되면 동구 초량동 유치환 우체통을 찾아 시인 유치환의 명시를 감상해 보고 아울러 산복도로 고지대에서 부산시 전경을 조망해 보면 어떨까요. 또한 자신에게든 사랑하는 가족에게든 아니면 친근한 벗에게든 정성껏 편지를 적어 느린 우체통에 넣어 봅시다. 1년 뒤에 편지를 받으면 색다른 감동에 젖어들 것입니다.

부산역에서 시내버스 22번, 52번을 타고 부산컴퓨터과학고교정류소에 내리면 유치환 우체통에 바로 도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