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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임진왜란 동래24공신을 만나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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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동래 24공신 공적비

 

부산광역시동래구 안락동에 위치한 충렬사경내에서 임란동래 24공신 공적비를 만났습니다


공적 24명은 동래부사 송상현님을 비롯하여 24명의 공신들을 기리기 위하여 충렬사에 세운 공적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일본에 항복하면 목숨을 보존 받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사나이로 태어나서 한번 죽지 두 번 죽지 않는다.’라는 각오로 왜적들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장수와 공신에게 고개 숙이고 24공신께 묵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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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신위가 모셔진 충렬사 본전

 

충렬사 본전에 총 89신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수위 3신위 동래부사 송상현’, ‘부산 첨사 정발’, ‘다대첨사 윤홍신이다. 배위 16신위, 서편 부산진, 다대진 무명용사, 녹도만호 정운, 동래교수 노개방, 병조참판 윤흥제, 호조정랑 양조한, 군자감판관 송봉수, 예비시주부 송백신위입니다


동편 동래부 전투, 부산포해전 무명용사, 양산군수 조영규, 부사맹 이정헌, 호조좌랑 문덕경, 중부참봉 신여로, 군자감판관 김희수, 중부참봉 김상입니다


중위 70신위 서편 별전공신 24, 동래부 충복 철수, 매동. 합사 선열13, 동편 수영25의용인, 부산진충복 용월, 합사 선열 5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비석의 전문은 ‘’임란동래 24공신공적비라고 한자로 적었습니다


후면은 추증된 공신들의 관직명과 이름을 각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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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전경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 공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1605(선조 38) 당시의 동래부사 윤훤이 동래읍성 남문 근처의 농주산에 송공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처음입니다


그 후 1624(인조 2) 선위사 이민구의 청으로 충렬사라는 사액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592년 왜적이 동래읍성으로 쳐들어와 길을 빌려 달라(항복하라)고 하자, 송상현 공이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라는 글을 나무판에 써 적진으로 던지고,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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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줄당의 전경


소줄당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우시다가 순국하신 선열들의 위국충절의 호국정신과 그 학행을 후세의 사표로 삼기위해 1652(효종3)에 교육도장으로 건립항 강당입니다


소줄당이라는 당호는 한유의 이제송에 나오는 소호일월 부족위명, 줄호태산 부족위고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임진란 선열들의 충절은 일월보다도 밝고, 태산보다도 높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한자는 昭乎日月 不足爲明, 崒乎泰山 不足爲高입니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배우는 초··고등학생들은 가족 동반하여 이곳에서 참 교육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작성자
황복원
작성일자
2021-01-18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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