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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한국과 영국의 역사적 첫 만남의 장소, 신선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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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앤드류왕자 방문 기념비


신선대는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 산 170번지 일원에 자리한다. 1797(정조21) 1014일 영국의 탐사선 영국 해군소속인 프로비던스호 일행이 부산항 입구 용호동 신선대를 방문하여 한국 주민들과 최초 접촉을 한 곳이다. 해방 후에는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해수욕장과 취락시설이 운영되었고 잠시 번성기를 맞이하였던 곳이다. 용당동 일대는 동명목재상사가 들어서면서 이 일대는 공장지대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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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전용부두 전경.


현재는 컨테이너 전용부두와 군사작전구역으로 변하였다. 신선대 정상에 올라서면 오륙도가 눈앞에 일렁이고, 영도와 국립해양대학교가 있는 조도와 부산내항을 조망할 수 있다. .영 양국 사람이 첫 만남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념비도 세워져 있는 역사적인 명승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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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전경


<이른 아침 우리 배를 보기 위해 호기심에 가득한 남자, 여자, 어린아이들을 가득 실은 작은 배들이 우리 배를 둘러쌓다. 그들은 누볐거나 겹 천으로 된 흰 무명천으로 헐렁한 상의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크고 헐렁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여자들은 속바지위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남녀 모두가 흰 무명 버선과 볏짚으로 만든 짚신을 신고 있었다.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정수리에 묶어 상투를 틀었고,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꼬고 땋아서 머리위에 올려놓았다.> 


영국 해군 함장이 쓴 일기에 당시 우리조상들의 생활상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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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뒤편에 적힌 일기


<우리 배에서 가까운 남쪽에 있는 산(신선대)으로 올라가 방위각을 재기 위해 뭍으로 나갔다. 정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야는 매우 넓었고, 항구의 모든 부분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이 산의 강한 자력으로 인해 나침반의 바늘이 정확한 방향을 알리지 못하고 항상 북쪽이 아닌 동쪽을 알리므로 방위각 측정은 소용이 없었다. 나는 가파르고 높고 튀어나온 이 산이 우리 나침반 바늘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지도상에 이산의 이름을 자석의 머리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 비문에 적혀있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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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조도 풍경. 바다와 섬, 그리고 배들이 어우러진 모습.


이곳 신선대는 울창한 소나무와 잡목들이 덮고 있다. 나무 사이사이에는 상록활엽수와 낙엽활엽수가 고루 섞여 있다. 이것은 많은 산새들의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오륙도와 조도, 날씨가 맑은 날에는 수평선 저 멀리 일본대마도를 조망할 수 있는 명승지로 손색이 없다.


주변산세는 못을 둘러싼 용의형상과 같다고 해서 용당이라고 이름 붙였다. 신라 말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유람하였다고 전한다. 그 이름은 산봉우리에 있는 무제등이라는 큰 바위에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말발자취가 남아 있는데서 유래 됐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이 없다.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는 곳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한편 신선대는 1797년 10월 윌리엄 브로우턴 함장의 부산방문 200주년을 기념하여 그가 부산항을 정밀하게 측량관측 했던 지점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함장의 일기에 기록된 당시 우리선조님들의 생활상을 잘 표현한 일기 일부분을 비문에 조각했다.



작성자
황복원
작성일자
2019-11-0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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