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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010호 기획연재

부산 글밭 일군 한국 현대문학 두 거인 `문학 혼' 품은 집

부산의 전시문화공간 ⑩ -요산문학관 · 이주홍문학관

내용

남산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요산문학관
 

부산의전시문화공간-요산문학관01

요산문학관.  

 


요산((樂山) 김정한(1908∼1996)과 향파(向破) 이주홍(1906∼1987). 두 이름을 나란히 놓고, 지음(知音)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마음이 통하는 벗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는 나와 있지만, 실은 마음이 통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서로를 알아주는 친구'가 그것이다. 공자가 `나를 아는 자가 없다'고 탄식하면서 `나를 아는 자, 저 하늘이다'라고 했던 말의 뜻을 새겨 보면, 자신을 알아주는 벗 한 사람만 있어도 삶은 행복하다고 할 것이다.
 향파와 요산,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두 사람은 부산이라는 지역성에 머무르지 않는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이다. 두 사람에게서 지음(知音)을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후배 문인들에 의해 지금도 회자되는 이야기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로 집에까지 드나들고, 함께 술을 마시고, 동인지를 내고, 같은 문학단체에 회원(향파의 부음을 듣고 요산이 쓴 글 중에서)'이었던 두 사람은 광복 직후인 1947년부터 향파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40년간 교유한 평생 친구이자 동지였다.
 두 사람은 문학 예술인으로 같은 길을 걸었지만, 그 방향과 결은 달랐다. 요산 선생은 평생 소설가로 살았고, 향파 선생은 시, 소설, 동화, 시나리오, 중국어 번역뿐만 아니라 연극 연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또 서예에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문단 만화를 그려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두 사람의 작품 경향도 달랐다. 요산이 현실참여적 경향이었다면, 향파는 순수예술을 지향했다. 그러나 "기질은 달랐지만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문학 정신은 같았다."(요산 선생의 `부산일보' 인터뷰 중에서).


 요산 김정한과 향파 이주홍 선생은 이렇듯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걸으면서 부산 문단의 양대 산맥이 됐다. 두 사람의 문학과 예술 정신은 요산문학관과 이주홍문학관을 통해 현재에 이어지고 있다.


부산의전시문화공간-요산문학관02

요산문학관 서가. 



"사람답게 살아가라" 가르침 생생
 스스로를 `낙동강의 파수꾼'이라 부른 요산 선생은 서울과 일본 와세다대에서 보낸 유학 시절을 빼고는 부산을 떠나 본 적이 없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일생을 보냈다. 부산은 요산 문학의 근간이다. 가난하고 핍박받는 민중에 대한 애정,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항거를 작품 속에 녹여 낸 요산 선생은 삶과 작품, 정신과 행동이 하나였다.
 요산 선생은 민족문학의 정점에 서있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군부 독재가 엄중하던 1974년 독재와 유신에 반대하는 문학인들의 모임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했고,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창설됐을 때는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요산 선생은 1928년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됐다. 그는 일제의 조선인 교원 차별에 항거하기 위해 조선인교원연맹 조직을 계획한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일경에 체포됐다. 이 일을 계기로 선생은 교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0년 일본 와세다대 제일고등학원 문과에 입학, 수학하면서 사회주의 문학운동 단체에 참여하기도 했다. 1932년 여름방학 때 귀국한 선생은 양산 농민봉기사건에 관련돼 투옥되자 학업을 중단했다. 이듬해 보통학교 교사를 하면서 농민문학에 투신했다. 1936년 단편 `사하촌(寺下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식민지 현실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단편들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민중을 선동하는 요주의 작가'로 지목됐다. 그 후 동아일보사 동래지국을 인수해 운영하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경찰에 체포됐고,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지자 붓을 꺾었다.


 광복 후 부산중학교 교사를 거쳐 1949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1966년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를 발표하면서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요산문학관은 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했던 금정구 남산동 조용한 주택가에 있다. 1908년부터 청년 시절까지 보낸 생가가 2003년 복원됐고, 그 옆에는 2006년 세워진 문학관이 있다. 요산 선생이 소장했던 육필 원고와 창작 메모, 작품집, 소설 속의 현장과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매년 요산문학축전, 특별전시전, 독후감 토론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선생을 기리고 있다. 특히 서가를 가득 채운 책과 원고지 칸에 정성을 기울여 쓴 육필원고는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부산 문학의 거목이 온 생을 바쳐 걸어갔던 문학의 길과 인간의 길이 생생하다.뼽
 요산문학관 벽에는 선생의 작품 `산거족' 중에서 발췌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사람답게 살아가라!"
 일제에 항거해 붓을 꺾고 30년 동안 작품 생활을 하지 않았던 선생이 일갈하는 듯하다.


요산문학관
▷주소:부산시 금정구 팔송로 60-6
▷입장료:무료
▷관람 시간: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월·국경일 휴관)
▷문의:051-515-1655




부산의전시문화공간-이주홍문학관01

 이주홍문학관 전시실.



현실을 깨뜨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향파(向破). 현실을 깨뜨리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인 선생의 호는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선생의 성향에 딱 들어맞는다. 가난한 소농의 아들이었던 향파는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단신으로 서울로 갔다. 껌과 은단을 팔고 신문 배달을 하며 고학을 하다 힘겨워지자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막노동꾼으로 등짐을 지며 배움의 길을 모색하던 그는 재일교포 자녀들이 우리말과 글을 잃어가는 현실을 목도한 후 민족 얼의 정수인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학원을 설립해 재일교포 자녀들에게 한글을 교육했다.
 당면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그의 진취적인 성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925년 `신소년'에 `뱀 새끼의 무도'라는 동화를,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가난과 사랑'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그해 아동잡지 `신소년'에 편집일을 맡아 고국으로 돌아왔다. 향파는 식민지 조국에서 다양한 문예잡지를 만들었다. 종합문예지 `풍림' `영화·연극' `신세기'의 잡지 편집일을 맡으면서 일본 경찰에 의해 `불령선인'으로 지목된 선생은 결국 1945년 봄 서울에서 체포돼 8·15 광복 다음날 풀려났다. 이후 배재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초등국사'를 발간하는 등 우리 국사교과서를 되살리기도 했다.


문학·연극·그림 넘나든 전방위 예술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향파 선생이 부산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47년 동래중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선생은 부산에서 지역 문화 예술의 토대를 마련하고 후배 문인들을 이끌었다. 1949년 수산대학(현 부경대) 교수로 근무하면서 연극운동과 문학의 저변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1987년 타계할 때까지 300여 편의 소설과 동화를 비롯해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대한민국예술상, 대한민국문화훈장, 대한민국문학상, 3·1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향파 이주홍 선생이 부산의 문학과 예술에 끼친 영향은 넓고 깊다. 특히 선생은 서울과 부산 문인들의 가교 역할을 했다. 1967년 `문학시대'라는 잡지를 창간해 박목월, 정비석 등 대가들의 작품들을 싣기도 했고, 기라성같은 문인들을 초청해 문학 강연, 육필전 등을 열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이주홍 선생이 아동문학가로 불린 것은 1958년 부산아동문학회 창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부산의전시문화공간-이주홍문학관02

이주홍문학관 마당.



2002년 선생의 제자들은 이주홍문학재단을 설립해 선생이 1971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온천동 집을 구입, 개축해 2004년 이주홍문학관을 열었다. 문학관이 재개발로 철거되면서 지난 2017년 현 장소에 신축 이전했다. 이주홍문학관은 전방위 예술인 향파의 면모를 보여준다. 1만여 권이 넘는 장서 목록은 경탄을 자아낸다. 또 선생이 직접 표지화를 그린 옛 잡지는 우리나라 문학 출판계가 걸어온 역사를 보여준다.
 

이주홍문학관은 매년 이주홍문학축전, 이주홍문학상, 이주홍문학기행, 이주홍학생백일장 등의 행사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서적과 유품 1만여 점과 함께 전국의 문인들과 교류하며 주고 받은 편지, 희귀 문학잡지 등이 보관된 이주홍문학관은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의 산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이주홍문학관
▷주소:부산시 동래구 금강로61번길 20-12
▷입장료:무료
▷관람시간:매주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일·월요일, 국경일 휴관)
▷문의:051-552-0801

 


                                                                                                                  글·김진 / 사진·권성훈




 


                                                                                                                    김영주_funhermes@korea.kr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20-09-2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10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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