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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16년 11월호 통권 121호 부산이야기호 기획연재

‘깡깡’ 망치소리, 치열한 삶 간직한 길 … 해안절벽마을 골목길, 해안절경 명소

I♥Busan / 부산을 걷다 / 원도심 스토리투어 ① 영도 깡깡이길·흰여울길

내용

 

깡깡이길과 흰여울길은 영도 해안길. 이 두 길은 ‘부산원도심 스토리투어’ 코스 중 일부다. 부산원도심 스토리투어는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원도심(중구·서구·동구·영도구)에 퍼져 있는 근대 역사문화 자원과 부산의 먹거리·볼거리를 연계해 만든 관광코스다. 이 지역에서 청춘을 보낸 원도심 스토리텔러가 함께해 더욱 알차게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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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 깡깡이길은 영도대교에서 시작한다. 추억의 도개교인 영도대교는 2013년 다시 다리를 들어 올렸다.​​
 

영도대교에서 시작하는 ‘깡깡이길’

길의 시작은 영도대교다. 영도대교를 건너면 ‘현인 노래비’가 반갑고 영도경찰서 담장을 따라 이어지는 감성적인 갤러리가 반갑다. 현인은 한 시대를 풍미한 국민가수다. 어린 시절을 영도에서 보냈다. 담장 갤러리 제목은 ‘영도이야기’. 절영도에서 말을 키우던 군졸부터 피란민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영도대교까지 반세기 전 영도를 아스라하게 들춘다. 시내에서 영도로 수돗물 들어가는 배관이 다리 상판에 놓이면서 1966년 번쩍 들린 것을 멈췄던 추억의 도개교인 영도대교는 2013년 다시 다리를 들게 됐다. 다리는 매일 한 번, 오후 2시에 든다. 담장 갤러리 끝나는 곳에서 우회전하면 대평동 물양장. 

선박 부속품 가게가 이어진다. 순간 어느 길로 갈지 헷갈린다. “길을 모르겠으면 물 따라가면 됩니다.” 부산관광공사 부산 원도심 스토리텔러 정연지 선생은 그럴 땐 무조건 바다를 끼고 걸으란다. 정 선생은 과학을 가르쳤던 교사 출신. 우연한 계기로 부산 원도심 스토리텔러로 나섰다. 과학 교사 출신답게 꼼꼼하다. 일제강점기 지도, 옛 사진을 스크랩북에 담아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다르며 또 어떻게 같은지 꼼꼼하게 들려준다.

  

통통배 오가던 도선장 터

부속품 가게 모퉁이에 대풍포 매축비가 보인다. 포구였던 이곳을 1916년부터 10년간 메워 시가지로 조성했다고 증언한다. 대풍포(待風浦)는 바람을 막는 포구란 뜻이다. 태풍이나 강풍이 피하는 배 피신처였다. 매축지 다음은 대동대교맨션. 스탠더드 석유회사가 있던 곳이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만 해도 부자 동네였다. 대부분이 2층집이었고 세금 납부액이 대신동과 1, 2위를 겨룰 정도였다고 정연지 선생은 귀띔한다. 선박 부속품 가게인 진영상사 앞 컨테이너는 도선장 터. 자갈치시장을 오가던 도선이 승객을 태우고 내리던 곳이다. 디젤 엔진에서 통통 소리가 난다고 통통배라고 불렀다. 통통배 역사는 꽤 오래다. 영도대교가 놓인 1934년 이전에도 있었고 2000년대 초반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추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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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도심 스토리텔러가 ‘현인 노래비’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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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깡이길은 수리조선소에서 망치로 배를 두드리던 소리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지금은 그라인더를 사용하지만 1990년대까지 영도에서는 망치로 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에 매달려 망치 두드리던 조선소 

‘깡! 깡! 깡!’ 1990년대까지 영도는 망치로 배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수리를 위해 조선소에 올린 배 갑판을 두들기던 곳은 영도 대평동 바닷가. 해안을 따라 조선소가 이어졌고 해안을 따라 깡깡이 소리가 귀를 때렸다. 망치를 두드리는 사람은 아주머니. 2인 1조 아주머니가 양끝에 밧줄을 매단 나무 널빤지에 앉아 갑판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망치를 두들겼다. 따개비 녹슨 페인트가 차례차례 벗겨지면서 낡은 배는 말쑥해졌다. 그 시절 깡깡이 소리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여는 두드림이었다.

진영상사 옆 종합해사에서 좌회전하면 조선소가 보인다. 다나카 조선소 자리다. 다나카는 1887년 설립한 최초의 근대식 목선 조선소다. 실질적인 깡깡이길은 여기서 시작한다. 다나카 조선소 옆에 나카무라 조선소가 있었고 그 외 크고 작은 조선소 60여곳이 이어져 배를 두들기는 소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요즘은 기계화돼 그라인더를 쓰지만 이전에는 망치를 썼다. 배 두들기는 망치는 세 종류. 하나는 뭉툭해 널찍한 데를 두들겼고 하나는 빼족해 좁고 구석진 곳을 두들겼고 하나는 긁는 망치였다.  

깡깡이 망치질은 여자 몫이었다. 기술은 따로 필요 없고 힘만 있으면 됐다. 그러나 고된 일이었다. 쇠 먼지 날려 비닐과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야 했고 마스크를 세 겹으로 둘렀다. 땡볕에도 그랬다. 2인 1조 작업을 마무리할 때까지 대소변 참는 것도 고역이었다. 생활력 강한 인근 이북마을 아낙들이 도맡았다. 이북마을은 지금도 있다. 올해 여든일곱 김장화 할머니는 이북마을 주민. 깡깡이 일을 하느라 왼손이 망가졌고 이후엔 남포동 먹자골목에서 김밥을 말아 아이들 공부시키고, 시집보내고 장가보냈다. 

 

일제강점기 적산가옥 남아 있어

사천고물상을 지나면 청도식당 사거리가 나온다. 이 일대는 식당가. 조선소 인부가 밥을 먹던 곳이다. 몇몇 집이 남아 깊은 맛을 보인다. 다방도 한창 때 17군데나 됐다. 진주슈퍼 사거리에서 우회전. 우회전하기 전에 잠시 좌회전하면 볼거리가 또 나온다. 페인트 가게 뒤 향나무 이층집은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적산가옥.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온 원형 그대로다. 그 옆은 그 시절 창고건물. 벽면에 한자로 새긴 ‘계(桂)’와 환기창이 이채롭다. 

진주슈퍼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하다가 흰색 4층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우회전하면 이북마을이 나온다. 비좁은 집에 일가족 오글거리던, 궁핍했으나 불끈거렸던 시절 불망비다. 근처 대평유치원과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한 대평시장도 둘러볼만하다. 4층 건물을 나와 오른쪽 담벼락으로 가면 일제강점기 누리끼리한 창고건물이 나오고 건너편에 부산항국제선용품유통센터가 보인다. 센터 정문 100m 전방에 어렴풋 보이는 청색 기와지붕은 용신당(龍神堂)이다. 영도대교 공사 도중 숨진 인부의 영혼을 달래던 신당이라고 전한다. 

 

영도해안 절경 내려다보이는 길

흰여울길은 깡깡이길이 끝나면 이내 나온다. 여울은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 빠른 곳. 영도 봉래산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하얀 줄기가 여기를 지나면서 흰여울길이 됐다. 마을 이름도 흰여울마을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라 풍광은 그저 그만이다. 처음 온 사람이든 평생을 사는 사람이든 누구나 혼이 빠진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을 여기서 찍었다.  

영도 영선동 흰여울길은 남항호안 해상조망로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해상조망로가 어디냐고? 가면 보인다. 이정표가 잘 돼 있고 붉은 등대가 길을 이끈다. 부산관광공사 흰여울길 스토리텔러는 강정분 선생. 바닷길 걷는 게 좋아 스스로 나섰다. 흰여울길은 구불구불한 골목이지만 한때는 손수레가 다니던 넓은 길이었다고 추켜세운다. 

해상조망로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길은 사실은 절영해안로 산책로다. 흰여울길 가려면 산책로를 걷다가 처음 만나는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계단 이름은 맏머리계단. 산책로 네 계단 맨 처음에 있다고 맏머리계단이고 맏머리샘이 있었다고 맏머리계단이다. 흰여울길 샘은 셋. 맏머리샘은 맨 처음 샘이다. 샘은 덮었지만 봉래산 물줄기에서 치솟는 힘을 어쩌지 못해 지금도 배수구로 콸콸 흐른다. 

흰여울길은 길이 마당이다. 집 앞 골목길에 화분을 두거나 텃밭을 일구고 빨래를 말린다. 바닷가 산비탈 이곳에 집이 다닥다닥 들어선 건 1945년 광복 직후. 강정분 스토리텔러 설명이다. 일본 등지에서 귀환한 동포가 고향에 돌아가는 대신 여기 터를 닦았고 1950년 6·25전쟁 피란민이 또 터를 닦으면서 마을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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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여울마을은 광복 직후 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해 6·25전쟁 피란민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형성됐다(사진은 천만 영화 ‘변호인’ 촬영지). 

 

천만 영화 ‘변호인’ 촬영지 ‘흰여울길’

흰여울점빵은 마을 주민이 꾸리는 아담한 가게. 커피 등등을 판다. 작지만 이층도 있고 라면 맛은 천하제일이다. ‘점빵 주인’ 김성희(45) 씨는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가게에서 보는 노을을 격찬한다. “진짜 예뻐요.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게 되더라고요.” 비슷하면서 다 다른 노을이 오묘하고 절묘하다. 강 스토리텔러는 풍광을 격찬한다. 관광객을 안내할 때 말 많이 하는 것보다 전망 좋은 곳, 사진 찍으면 아름답게 나오는 곳에 무게를 둔다.   

길 끝은 이송도 전망대. 전망대 가는 길목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다. 바다를 낀 산비탈 풍광이 빼어난 덕분이다.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등과 SBS 드라마 ‘딴따라’를 촬영했다. 길 끝 전망대 역시 천하제일 풍광이다. 대마도가 손닿을 듯 가깝고 부산 남쪽 바다 섬들, 이를테면 주전자섬이며 나무섬이며 형제섬 같은 앙증맞은 섬이 부산을 백문이 불여일견이게 한다. 전망대에서 절영로 윗길로 올라가면 흰여울문화마을 예술공방이 있다. 

부산 길이 갖는 미덕 하나는 바다다. 곳곳의 길이 바다를 끼고 이어진다. 갈맷길이 그렇고 해파랑길이 그렇다. 바다 낀 길을 걸으며 바닷가 삶을 떠올려 보자. 고달팠으나 건강했던 삶의 현장이 부산의 바닷길이며 그 하나가 영도 깡깡이길과 흰여울길이다. 팔과 귀가 멍들어도 깡깡깡 두드리며 내일로 나아가던 사람들, 바닷가 아슬아슬한 산비탈에 집 짓고 텃밭 일구며 삶을 담금질하던 사람들. 그들이 매일매일 다져서 딴딴해진 길이 깡깡이길이고 흰여울길이다.

 

 

작성자
글 동길산 시인 / 사진 문진우
작성일자
2016-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16년 11월호 통권 121호 부산이야기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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