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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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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 대상

내용

2013년 1월, 아침 9시 서울역. 들뜬 얼굴을 하고서 수다삼매경에 빠진 우리는 부산발 KTX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동안 떨어져 지낸 우리는 곧 입대를 앞둔 친구를 위해 다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이 어떻겠냐며 계획을 세웠고, 여행지는 국내여행의 꽃이라 불리는 부산으로 정해졌다. 4월에 입대를 앞둔 친구를 제외하고 나를 비롯한 친구2명은 모두 직장이 있거나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여행은 자연스레 방학과 휴가시즌이 있는 1월에 떠나게 되었다. 너무나도 추웠던 2012년 겨울에 이어서 2013년 새해 역시 손발이 꽁꽁 얼어버릴 정도의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렇게 추운데도 여행계획을 자연스럽게 세웠던 이유는 단순하다. ‘부산은 겨울에도 눈이 안 내린다며?’하는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추운 서울에서 출발해도 부산은 따뜻하니까 여행이 수월할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은 크나큰 오산이라는 것을 서울역에서 까지 몰랐다.

열차 안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즐거웠다. 군 입대를 앞둔 친구(남자)를 제외하고, 나를 비롯한 친구 2명은 모두 여자였기에 열차 안의 사람들은 조금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는 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셋이 떠나는 여행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그림이기는 했다.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넷은 특이했다. 단짝인 여자 세 명과 나와 특별히 더 친한 남자까지 더해서 4명이 어딜 가든 뭉쳐 다녔고, 굉장히 다정했던 남자인 친구는 우리를 항상 위해주며 신나게 놀고는 했다. 우리는 그런 관계를 특이하기보다는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며 고등학교 생활을 했다. 특별했던 고등학교 생활을 졸업과 함께 떠나보낸 우리는 성인이 된 후로 잘 모이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에게 겨울 부산여행은 소중한 추억이 될 기회였다. 한 시간 한 시간이 아까웠던 친구들은 서로 이야기를 했고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부산에는 이것이 유명하다더라, 저것이 유명하다더라 하며 쉴 새 없이 웃으며 떠들었다.

부푼 기대 속에서 우리는 부산역에 도착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부산역에서 가깝고 유명하다는 본전 돼지국밥 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역시 유명한 집은 다르구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무척 많았고, 우리 넷은 테이블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인 상태로 기다리게 되었다. 그때,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툭툭 치며 “아이고~학생 여 같이 앉으면 될 꺼 아이가?” 하시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남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괜찮아요~ 드시는데 불편하시면 저희 나가서 기다릴게요~” 라고 대답한 뒤에 뒤돌아 나가려던 찰라 아주머니께서 “아~! 앉아도 된다카이.” 라고 하시며 나를 옆자리로 미시며 앉히셨고 친구들은 덩달아 “감사합니다”며 앉았다. 친구들은 몰라도 사실 난 그러한 상황을 굉장히 싫어했다. 흔히들 말하는 오지랖이라 생각하며 타인이 나에게 베푸는 일종의 친절을 달가워하지는 않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국밥을 먹고서는 우리는 남포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도시철도로 남포동에 도착한 우리는 4명이 동시에 외쳐대던 씨앗호떡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씨앗호떡은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옷 구경을 하자며 국제시장 쪽으로 향했다.

국제시장을 둘러보다가 길을 잃은 우리는 마음에 들었던 가게를 찾기 위해 같은 길을 계속 빙빙 돌았다. 한낮이 지나고 나니 추위는 조금씩 심해졌고 우리는 부산도 겨울에는 매우 춥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추운 날씨 속에서 30분이 넘게 걷고 있자니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 명 두 명 말이 없어지고, 미간에는 주름이 생기고 있었다. 짜증이 나는 와중에 비슷한 것이라도 사라며 친구는 화를 내었고, 옷 가게를 찾던 다른 친구는 왜 화를 내느냐며 다투고 말았다. 나는 상황을 수습해보고자 친구가 찾는 스타일의 스웨터가 있는 가게를 발견해 주인아주머니께 “이거 얼마에요~?”라고 웃으며 물었다. 아주머니는 가게 안쪽에서 “이리 가꼬 온나!”라고 하셨고, 나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니요, 이거 가격이 얼마에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래, 이리 가꼬와야 알제~이리 가꼬온나!”라고 하셨다. 추운 날씨 속에 다툰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아주머니의 큰 목소리와 사투리는 우리에게 시비조로 들렸다. 결국 우리는 스웨터 구입을 하지 않았고 국제시장을 벗어나 태종대로 떠났다.

태종대에 도착해서도 친구들은 싸운 탓에 서먹서먹했다. 태종대로 올라가는 미니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서있을 때에도 친구들 모두 외투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발등에 뭔가가 느껴져서 밑을 보니 비둘기가 올라가있었다. 나는 “꺅!!!!” 소리를 질렀고 사람들은 우리를 주목했다. 그렇다. 나는 조류공포증이 있던 터라 평소 비둘기를 비롯한 새를 보면 그 길을 피해 달아나곤 했다. 그런 나를 보고도 주변 꼬마들은 내 옆에 서서 새우깡을 던지며 비둘기를 모여들게 했다. 결국 남자인 친구가 아이들에게 한 소리를 했고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나에게 사과를 하시고는 아이들을 꾸짖으시는데, 혼내는 소리가 굉장히 컸다. “쫌!! 이리 안 오나! 만다꼬 그러는데!! 콱 마!! 쯧~~” 뒤로도 사투리를 쓰시며 아이를 나무라시는데 친구들과 나는 부산 아주머니들은 다들 무섭고 억센 것 같다며 이야기를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점심때 국밥 집에서 만난 아주머니, 국제시장에서 본 옷 가게 아주머니에 이어 태종대에서도 큰 목소리에 사투리를 격하게 쓰시는 아주머니를 만났기 때문이다.

태종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고 하니 친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었고, 나에게 새 때문에 놀란 것은 나아졌냐며 안부도 묻고 했다. 그렇게 친구들이 걱정해주니 낮 동안에 느꼈던 부산 아주머니들의 말투에 대한 생각은 잊혀지는 듯했다.

저녁이 가까워지고 숙소에 들러 짐을 풀기 위해 해운대로 향했다. 숙소는 해운대에 위치한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우리는 여자친구들끼리 같은 방에, 남자인 친구는 따로 방을 안내 받았고 짐을 풀자마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으로 곱창을 먹고 해운대 바닷가로 향했다. 해운대의 밤바다는 너무 멋있었고 우리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즐겁게 여행의 마지막인 밤을 보냈다. 한참을 놀다 보니 너무 추워 몸이 얼었고, 근처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몸을 녹여봤지만 안되겠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수다를 떨기로 했지만, 이상하게 몸이 너무 무거워 나는 일찍 자리에 들겠다며 나머지 친구들을 뒤로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친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며 눈이 억지로 떠졌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새벽까지 떠들다가 이제 자야겠다며 남자인 친구는 본인의 방으로 돌아가고 여자친구 두 명은 본인들의 침대에 들어가려 했다고 한다. 그때 내 옆 침대에서 자려던 친구가 이상한 마음에 나를 가까이서 들여다봤고,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입술이 하얘져있었다고 한다. 놀란 친구는 나머지 친구와, 방으로 돌아간 남자인 친구를 다급하게 불러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처음인 친구들은 당황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했고, 남자인 친구는 주인아주머니께 물어보겠다며 방을 나섰다고 한다. 주인아주머니는 안쪽 방에서 쪽 잠을 주무시고 계셨는데 다급한 친구의 목소리에 놀라 깨셨고, 직접 우리 방에 오셔서 나의 상태를 살펴 보셨다. 그러곤 심각한 건 아니고 감기 때문에 앓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아주머니는 놀란 마음에 온갖 비상 약이 들어있는 묵직한 구급 통을 들고 오셔서는 약을 차근차근히 보시며 친구들과 같이 안절부절 했다고 한다.

“아야!! 아야!! 정신이 좀 드나?? 하이고~~” 내가 기억하는 아주머니의 첫마디는 저 말이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없었고 일어나보니 아침이었다. 친구들은 아주머니가 피곤하실 텐데도 계속 카운터와 우리 방을 오가며 나의 상태를 지켜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아주머니는 아침으로 나에게 죽을 끓여주셨다. 원래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의 아침은 토스트와 계란. 아주머니는 서울에서 온 아픈 ‘아’를 어떻게 빵을 먹게 하나며 죽을 끓여주셨다. 죽을 먹으며 간밤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아차’ 했다. 전날의 국밥 집 아주머니, 국제시장의 아주머니, 태종대의 아이 어머니, 게스트하우스의 아주머니 모두 같은 억양의 사투리. 목소리 크기도 비슷하셨다. 그런데 나는 여행 첫째 날의 사투리는 모두 기분 나쁘게 오해해서 들었고,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의 사투리는 따뜻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단지 내가 생각해왔던 기준 안에서 사투리를 받아들였고, 내 기분에만 맞춰 나에게 시비를 건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의 거친 사투리 속에 가려진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하고 나니 사투리가 전혀 시비조로 들리지 않았다.

짐을 챙기고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마친 후에 아주머니께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며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점심 먹고 또 약을 먹으라며 남은 약과 함께 핫 팩도 챙겨주셨다.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또 오겠다는 말을 하고 나가려는데 아주머니는 “옷 단디 입어야제!! 또 아프면 우얄라꼬.”하시며 내가 입은 외투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려주셨다.

아주머니의 마지막 사투리는 엄마생각까지 나하는 너무 따뜻한 한 마디였다. 그 후로 부산 아주머니들의 사투리 매력에 푹 빠져 방학이나 축제가 열릴 때 마다 부산을 찾곤 한다. 여전히 부산 아주머니들은 사투리 속에 따뜻한 인정을 담아주신다. 그때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들었던 아주머니의 한마디가 듣고 싶어진다. “아야! 옷 단디입으래이.”

작성자
김은정
작성일자
2013-11-2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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