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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아버지의 바닷물 옥수수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 장려상

내용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

여름이 되었다. 더워지자마자 거리에선 옛날 가요며 요즘 노래며 여름 노래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난 여름이 싫다. 단순히 남들처럼 더워서가 아니었다. 겨울을 더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여름에 어디가노?”
“부산”
“야 완전 좋겠다.”

좋긴. 정말 싫다. 나는 여름도 싫어하고 부산도 싫어한다.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름 싫어하는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여름에 부산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전국에 나 하나 밖엔 없을 거다. 드디어 부산가는 날이 되었다. 아버지가 깔끔한 모습으로 방에서 나오신다.

“옥수수 잘 챙기고”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놈의 옥수수도 참 지긋지긋하다. 나는 7살 때부터 아니, 아니, 6살 때다. 6살 때 유치원 생일잔치를 안가고 그 해 여름부터 부산을 줄곧 갔으니깐. 어릴 땐 좋아했다. 낯설고 설레는 곳에 가는 걸 신기하게 여겼으니 말이다. 아버지와 나는 항상 부산을 갈 때는 기차를 탄다. 대구와 부산이 그렇게 먼 건 아니지만 2시간동안 아무 말도 안 하려니 너무 뻘쭘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부산만 가는 날이 되면 갑자기 우울해졌다.

부산 도착. 이젠 바닷물을 생수에 넣어서 높디높은 초량동으로 가야 한다. 남들은 비키니 입고 해운대, 광안리 갈 때 우리는 평범하게 입고(거기다 어딘가 모르게 경건하기까지 하다) 초량동 등산을 한다. 그리고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일식 가옥 앞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말없이 앉아 바닷물에 옥수수를 절여먹는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근데 진짜 다행인 것은 저 바닷물 옥수수는 절대 이 날을 제외하곤 드시지 않는다.(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저 바닷물 옥수수를 먹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펑펑 우는 건 아니었지만 조용히 흘리는 눈물이 더 불쌍해 보이고 나까지 서러워져왔다. 괜스레 아버지가 작아진 것 같아서 나는 너무 싫었다. 그랬다. 단순히 휴가를 즐기질 못해서가 아니라 쨍쨍한 날 높은 동네에 등산을 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저 측은한 모습이 나는 너무 보기 싫었고 견딜 수가 없었다. 이유나 알면 모를까. 해마다 묻는데도 아버지는 절대 입을 열지 않으셨다. 아마 엄마도 모를 것이다.(혹시나 엄마가 알고 있다면 이건 정말 배신이다. 적어도 엄만 나에게 말해줬어야 했다.) 그리고 한참을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걸 해마다 하고 있으니 정말 죽을 맛이다.

1년이 흘러 또 여름이 되었다. 내 나이는 한 살이 더 보태져 있었고, 아버지는 위암이라는 병마와 싸웠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엄마와 교대하려고 병실 문을 들어설 때였다. 엄마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헐레벌떡 들어가서 상황을 알아보니 아버지가 아니나 다를까 또 부산을 간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거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너무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생각을 안 하냐고, 우리는 아버지가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밤새도록 전전긍긍인데 아버진 그놈의 옥수수 때문에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나도 모르게 악에 받쳐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딸인 나에게 아버지는 두 손을 맞대고 싹싹 빌고 있었다.

“제발 보내도 윤주야. 할머니한테 부탁드려야 된다.”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새파랗게 어린 딸에게 싹싹 빌고 있다니.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나는 아버지의 서글픈 표정을 이길 수가 없어서 의사선생님께 부탁을 하러갔다. 다행히도 퇴원이 4일 밖에 남지 않아서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와 집에 들러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경건하게 옷을 입으시고는 부산으로 떠났다. 물론 나도 함께 말이다. 부산 도착 후, 해마다 하는 연례의식처럼 초량동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병을 이겨내서 그런지 더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아버지가 그 일본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리 내어 펑펑 우셨다. 눈물은 보였어도 소리 내서 운 적은 한 번도 없던 아버지가 말이다. 너무 서럽게 우는 모습에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지만 그 사람들의 눈빛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서글프게 우는 아버지를 달래며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한참을 가만있으시더니 이윽고 결심했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은 1950년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간다.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내려 온 할머니와 아버지는 큰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피난길 도중에 헤어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과 헤어지자 점점 시름시름 앓으셨다고 한다. 그 때 아버지의 나이 6세 때였다. 할머니는 아침이 되면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온 동네방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를 찾으려고 수소문 하셨기 때문에 점점 쇠약해지셨다고 한다. 전쟁이 장기전이 되자 아버지와 할머니는 지금 초량동에 움막을 지으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서질 못하시고 계속 누워계셨는데 아버지는 그때마다 피난 올 때 식량으로 가지고 온 옥수수를 철통에 길러 온 바닷물에 절여 할머니께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옥수수를 딴 사람에게 들키면 뺏길게 분명했으므로 항상 땅에 묻어두셨는데 할머니께 드릴 때마다 신속하고 몰래 빼내야 해서 손톱이 멀쩡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항상 손톱을 깎을 때마다 보고 있는 사람이 아플 정도로 험악하게 학대하곤 했는데 먼저가신 할머니께 죄송해서 언제나 피를 철철 흘리며 손톱을 학대하는 것이었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때 옥수수를 자기 입에 다 털어 넣으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항상 아버지에게 옥수수를 먹지 않고 굶어서 표정이 안 좋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옥수수를 먹으면 할머니가 화가 풀리셔서 일어날 줄 알고 울음이 섞인 입에 옥수수를 털어 넣으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쯤 아버지는 황폐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흐느끼고 계셨다. 나도 펑펑 울었다. 내가 철없이 부산이 싫을 때 아버지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볼 수도 없는 할머니를 보러 부산으로 온 걸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고 내가 너무 싫었다. 한참을 둘이서 그렇게 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 몸을 실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저물어 가는 해를 볼 때, 아버지는 쩍쩍 메마른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정말 신기했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그렇지만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대화가 일절 없었었다.

“윤주야, 내가 왜 이 몸을 해가 부산까지 갔는 줄 아나?”
“할머니 볼라고”

“그것도 맞긴 맞는데, 할머니한테 부탁할라꼬 갔다. 어무이 내 혼자 살아서 진짜 내가 죽일 놈인데 내가 너무 보고 싶어도 아직은 안 된다고. 내 자식들도 마누라도 아직까지는 내 없이는 못 묵고 산다고. 옥수수 많이많이 물테니깐 썽 풀고 아직까지는 내 델꼬 가지 말라고 그랬다. 쫌만 더 살고 간다고 나중에 저서 만나면 호강시켜준다고 말했다.”

그랬다. 위암은 아버지를 더욱 겁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아파서 겁이 나는 게 아니었다. 또 다시 가족들과 강제 이별을 할까 봐 겁이 났던 것이었다. 아버지의 말을 들은 나는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웃어야 했다. 웃어서 아버지를 안심시켜줘야 했다. 그래서 나는 울면서 웃었다.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다.

그 날 이후로, 아버지의 손톱관리는 내가 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손을 만져서 그런지 아니면 아버지의 옛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아버지와 나는 보통의 부녀와는 다른 더 진득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내가 손톱을 깎아줄 때 거부는 좀 했지만 이제는 나에게 져주셨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갈 때는 꽃을 사간다. 또 뻘쭘했던 기찻길은 웃음소리 넘치는 기찻길이 되었다.

이제는 이산가족 뉴스에도 관심이 간다. 아버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난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지만 전쟁은 참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 같다. 다시는 전쟁으로 인해 가족끼리의 강제 이별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성자
김윤주
작성일자
2013-11-2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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