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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할머니의 나들이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 가작

내용

할머니의 늙은 손을 붙잡았다.

관절이 좋지 않아, 절뚝거리며 버스에서 내려오시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나는 할머니의 가방을 옮겨 들었다. 할머니는 멋쩍게 웃으시더니 내 손을 붙잡고 버스에서 내려오셨다.

“터미널까지 마중 안 나와도 되는데 왜 왔누.”

할머니는 내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웃으며, 그래도 와야지. 할머닌 부산이 처음인데. 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수줍은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셨다. 그러면서도 터미널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는 것이 이 여행을 기대한 듯 보이셨다. 할머니의 옷차림을 보니 처음 보는 화려한 꽃무늬 바지에 단풍무늬가 새겨진 가방까지 어깨에 메시고 단단히 치장을 하신 듯 보였다. 미소를 머금은 입술에는 티는 나지 않지만 루즈도 바른 듯했다. 목에는 지난해에 삼촌이 사주신 카메라도 걸려있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나보다 더 소녀 같으셔서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가방은 왜 이렇게 무거워요? 할머니 몸도 안 좋으신데 가볍게 오시지.”
“손주 반찬 싸왔지.”

어쩐지 가방에서 김치 냄새가 솔솔 난다고 하였다. 부산 김치에서 나는 젓갈냄새가 익숙하지 않다고 흘리듯 말한 것을 할머니는 기억해주시고 김치를 자주 보내주시곤 하였다. 이번에 부산 오는 김에 몸도 안 좋으신데 또 챙겨 오셨나보다. 고마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학창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난 후 나는 어머니와 외가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어머니는 혼자 나의 양육비를 버느라 집에서 나를 돌봐주던 분은 할머니셨다. 어머니는 타지에서 돈을 버시느라 강원도 고향집에서 실제로 살던 것은 나와 할머니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작년에 대학을 부산대로 오게 되면서 그 큰 집에 할머니 혼자 남으셨다. 할머니는 적적하신지 자주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으시곤 하였다. 그러면서 항상 손녀가 사는 곳에 한 번 가봐야 할텐데 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작년에는 나도 처음 부산에서 생활을 꾸리는 것이라 정신이 없어 그런 할머니의 부탁 아닌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할머니를 부산에 초대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할머니에게 한 번 부산에 오시겠냐고 초대를 하였다. 진작 왜 초대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생길 정도로 할머니는 흥분한 음색을 숨기시지 못하고 그래도 되겠냐고 되물으셨다. 마치 고등학생이 수학여행을 가는 것처럼 신이 나신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나기도 하였다.

그렇게 여행날짜를 잡고 할머니가 부산을 방문하게 된 날이 오늘이었다. 바쁜 어머니는 함께 하지 못하고 할머니만 부산에 오게 되었다. 21년 내내, 할머니와 단둘이 여행해보기는 처음이라 조금 떨리기도 하였다. 나는 할머니에게 오늘 갈 곳에 대해 말씀드렸다.

“할머니, 오늘 우리 용궁사라는 데 갈거야.”
“거기 가나? 그래, 참 예쁜 절이더라.”

불교를 믿으시는 할머니는 고향인 강원도에서도 아픈 몸으로 산에 올라 절에 가시곤 하셨다. 어느 날은 관광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용궁사를 보셨다. 할머니는 바닷가에 절이 위치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셨다. 참 예쁘네. 부산에 있는 절이네. 라고 읊조리던 것이 불현듯 기억나, 나는 할머니와 함께 용궁사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용궁사까지 멀다고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할머니는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이 나셨는지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노포동터미널에서 용궁사까지 대중교통을 타기에는 너무 멀어 미리 렌트해 놓은 렌트카로 할머니를 안내했다. 짐을 뒤의 트렁크에 싣고 할머니를 조수석에 태운 후에 나도 차에 탑승했다. 핸들을 부드럽게 돌리며 터미널을 나와 용궁사로 향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갑갑하신지 창문을 조금 여시더니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셨다.

“할머니, 오늘 자고 갈 거지?”

잠시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춰 있을 때 할머니를 바라보며 물으니 할머니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라야제, 그라야제, 손주가 사는 데 보고 가야지. 라며 할머니는 소박하게 웃으셨다. 나는 집 청소 해놓길 잘했다 내심 생각하며 지나가는 풍경들 중에 내가 아는 경치가 나오면 할머니께 이것저것 설명해 드렸다.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우신지, 몰래 카메라를 드시고는 지나가는 경치를 찍는 모습을 보고 나는 미소 지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용궁사에 도착하였다. 용궁사 입구까지 차로 올라가 주차를 해 놓고는 할머니와 함께 용궁사로 향했다. 절을 보길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용궁사 초입부터 있는 큰 동상들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셨다. 12간지 동상들을 보시고는 아이고, 동상들이 참 크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카메라를 뺏어들고는 할머니 띠 앞에서 사진하나 찍자 하였다. 할머니는 수줍게 양띠동상 옆에 서시더니 살포시 미소 지으셨다.

“할머니, 브이 해야지, 브이.”
“뭘, 그런 것까지.”

말은 그렇게 하시더니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들어 볼 옆에 딱 브이를 하시는 할머니를 보고 나는 웃음을 삼키며 셔터를 눌렀다. 슬며시 내 옆에 와 사진이 잘 나왔는지 확인까지 하는 모습에 결국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내 띠인 말띠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동해시에서 살아서 바다라면 실컷 보았는데도 바닷가 위에 세워진 용궁사를 보고 감탄하셨다. 생각한 것보다 예쁘다, 곱다. 하며 아프신 다리를 이끌고 나보다 앞서나가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셨다. 절 안에 들어가셔서 소원도 비시고, 절 안에 있던 검둥이 개에게 먹을 것도 나눠주시며 뭐가 그렇게 볼 것이 많으신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셨다. 지나가던 관광객에게 부탁하여 절을 배경으로 할머니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이것저것 둘러보다 어느새 시간을 보니 저녁 시간이 다되어 가길래 할머니에게 해지기 전에 나가자고 말씀 드렸다. 할머니는 내 말을 듣고는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저 멀리 석양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둘이 함께 들어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나왔다. 나오는 와중에 할머니가 입구에 있던 돌상 하나를 보셨다. 돌상에는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는 해동용궁사’라고 써 있었다. 할머니는 그 문구를 보시더니 잠깐 멈춰보라고 말하셨다.

“왜, 할머니?”
“여기서 소원 빌고 가야겠다.”

뜬금없는 할머니의 말에 의아했지만 벌써 합장하시고 무언가 소원을 비는 할머니의 모습에 나도 발길을 멈추고 옆에서 함께 소원을 빌었다. 뭐라고 옆에서 할머니가 중얼거리며 소원을 비는 내용이 들려 귀 기울여 보았다. 우리 손주랑 또 여행 오게 해주세요. 손주 취업 잘되게 해주세요. 손주 밥 굶지 않고 건강하게 해주세요.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쓴 웃음을 삼켰다. 여까지 왔으면 할머니 관련된 소원 빌지, 왜 또 나랑 관련된 소원만 빌어. 할머니의 소원들을 들으며 그럼 할머니 건강하게 지내고, 밥 굶지 않고, 오래오래 나랑 같이 여행 다니자는 소원은 내가 빌어야 겠다. 라고 되뇌이며 나도 소원을 빌었다.

할머니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할머니 맛있는 것만 먹고, 나랑 또 여행 많이 다니게 다리 좀 그만 아프게 해주세요.

소원을 다 빌고 옆을 쳐다보니 할머니도 소원을 다 빌었는지 나를 보며 웃으셨다.

“뭐 빌었니, 우리 손주.”
“비밀인데, 할머니는?”

웃으며 할머니에게 말하자 할머니가 멋쩍게 웃으며 내 손을 붙잡으셨다.

“나도 비밀이다.”

나는 그게 뭐야, 라고 웃음소리를 내며 할머니의 손을 맞잡았다. 또 할머니와 함께 여행을 오길 바라며. 할머니가 부산에서 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 바라며.

할머니의 늙은 손을 붙잡았다.

작성자
최단비
작성일자
2013-11-2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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