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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산복도로에 오르다 - 두 번째 이야기

내용
사라진 마을

마을은 이미 없어져버렸고 사람들은 떠났다. 사라진 집들 사이에서 아직도 불을 밝히고 있는 사람들도 곧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동광동5가. 디지털 고등학교 밑에 있던 마을은 지금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불과 2년 전, ‘다큐 3일, 하늘 길을 걷다’에 비쳐진 이 마을 카페에는 마을 할머니들의 웃음이 넘쳐났다. 하지만 지금 카페 문은 잠겼고, 할머니들은 보이지 않는다.

집이 있던 자리에는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시멘트가 덮였다. 간혹 사람 인기척이 있는 집들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좁고 을씨년스런 골목 사이로 간간히 새어나오는 테레비 소리만이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있음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주거환경개선지구. 구청에서 이 곳의 집들을 사들여 하나둘 철거하고 있다.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은 집은 그냥 폐가가 된다.

점심시간인가 보다. 디지털고 후문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에서 학생들 몇 명이 뛰어나와 바로 밑에 있는 집으로 잽싸게 들어간다. 오뎅, 만두 등속의 군것질거리를 파는 구멍가게다. 아래 마을에 사신다는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하고 계신다.

“(점심)급식 지나면 안와. 노는 시간이나 급식하기 전에 잠깐 왔다가 들어가고 그러지. 애들 귀엽게 노는 거 보는 재미로 하는 거지. 늙어서 뭐 할 게 있나요?^^”

할머니는 학생들이 서서 급하게 먹는 모습을 빙긋이 웃으며 보고 계신다.

겨우 한 사람 다닐만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길게 늘어선 집들은 산으로 산으로 계속해서 올라간다. 비바람을 피하고 식구들을 덮어줄 지붕을 올릴 만한 작은 땅만 있으면 온 힘을 다해 올라가 집을 지었을 것이다. 이곳 특유의 길고 긴 계단길이 생긴 이유일 터.

“여기 살던 사람들 다 떠났지. 옆집에 젊은 여자가 살고 있었는데 앞뒤로 집 부수는 소리에 겁이 나서 요 밑에 내려가서 살아. 내가 지금 거기 잠시 들어가 살고 있는데, 나도 곧 아들집으로 갈 거야.

집주인이 여기 없는 집도 많아. 그 사람들은 연락이 안 되니까 함부로 뜯을 수 있나. 모르지, 바다에서 배 들어올 때 보면 이 쪽이 먼저 보이는데 흉물스럽다고 뜯는 거겠지. 뜯고 공원 만든다고 바닥에 시멘트 발라버렸잖아. 풀이 못 올라오게.”

“다 똑 같아. 딱 요만해.” 할아버지는 뜯겨져 나간 집터를 가리키신다.

아직 철거를 못한 부서진 집들과 빈 집들이 을씨년스럽다. 학교 후문 쪽이라 어두워지면 불 꺼진 집들이 사뭇 무섭기까지 하겠다 싶다. 화재가 났던 집은 노란 통제선만 쳐둔 채 그대로 버려져 있다. 한 쪽에선 집들이 뜯겨져 나가고 또 한 편에선 살 집을 못 구해 전셋값이 천정부지인 이 뒤틀어진 세상, 도대체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할까.

라면

할머니는 열일곱에 여기 와서 지금은 일흔 여덟이 되셨다. 진주에서 왔다 하신다.

“대학생들 여기 사진 찍으러 많이 왔어요. 사진 찍고 라면도 끓여먹고 소주도 시켜먹고. 요새는 잘 안 오네.”

“산복도로에서 버스 내려서 이리로 오니까.(위쪽에서 내려온다는 말씀이시다) 밑에 뭐 사러갈 때는 계단으로 다니지. 하도 많이 다녀서 이젠 아무렇지도 안해.” 계단 오르내리시기가 힘들지 않으시냐고 여쭤보니 큰 고생 모르신단다. 계단이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된 탓일까.

“욜로 들어가요. 금방 끓여주께. 우리 막내아들이 점심 먹고 있는데 같이 먹으면 돼. 안으로 들어가요.”

마침 점심때라 할머니께 라면을 시켰더니 안방으로 들어가라신다. 라면 시켜놓고 남의 집 방까지 들어가 보긴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다.

냄비 하나에 밥그릇 반찬그릇 서너 개 놓으면 꽉 차는 소반(小盤)에 어른 세 명이 둘러앉으면 더 앉을 데가 없는 방이다. 세 사람이 눕기엔 좁고 두 사람이 누우면 맞을만하다.

“모르죠. 빌라를 짓는다는 말도 있고, 공원을 만든다는 말도 있고. 시세에 조금 더 주고 나가라고 하는데 그 돈으로 어디 갈 데가 있나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지. 여기(사는 분들은) 거의 다 할머니들뿐인데.”

계면쩍어 점심 먹는 작은아들에게 말을 붙여본다.

“어서 드소. 반찬이 없어서... 이거 젓갈인데 이것도 한번 드셔보소. 뭘 좀 더 드릴까. 밥도 한 그릇 드릴 테니까 말아서 드시고.

집 나오면 고생이지,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는 거 힘들어. 속이 든든해야 힘을 쓰지.”

(.... 계란을 안 넣었네. ㅠㅠ)

냄비 째 라면을 들고 들어오신 할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어 이것저것 자꾸 꺼내주신다.

“(할아버지는)육십 넘기고 가셨어. 3남 2녀. 다 결혼해서 나가서 살어. 저 놈이 막낸데 울산에서 직장 다니고. 오늘 쉬는 날이라고 왔네.” 할머니는 아들 온다고 곰국을 끓이셨다.

“여기 있다고 강제로 나가라고 하겠어요? 여기까지 올라와서 (우리 영감이)직접 지은 건데.”

라면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고, 얼마를 드리면 되겠냐고 여쭤본다.

할머니가 마지못해 입을 여신다.

“천원만 받지 뭐.”

가슴이 울컥한다. 극구 안 받으시겠다는 걸 3천원을 놓고 나온다.

“밑에는 라면 한 그릇에 보통 3천원입니더. 밑에 가격은 드려야지예. 밥도 한 그릇 말아문는데.” (계란을 안 넣어서 그게 쫌..^^)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1-03-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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