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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중반 수영비행장
부산이야기 2007-06-13
부산수영공항에 많은 의전단과 환영인파가 몰려있다. 1967년 독일 뤼브케대통령 내외가 부산을 방문한 때로 추정한다(아래 사진은 최근의 센텀시티 일대). 지금의 해운대구 우동 센텀시티는 1970년대 중반까지 부산수영공항이 있던 자리다. 수영공항은 한국전쟁 당시 임시 활주로를 개설해 사용해 오다가 1959년 9월 부산수영공항으로 정식 출범한다. 1963년 9... -
1960년대 말 영주동 일원
부산이야기 2007-06-06
영주동은 부산항부산역과 가깝기 때문에 1960년대 피란민들의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이 일대 산꼭대기까지 피란민들의 집이 들어 서 있다. 오른쪽은 최근의 영주동 일대.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37년 부산부가 최초로 도시계획을 수립할 당시 부산 인구는 21만3천여 명이었다. 부산부는 이를 기준으로 1965년 계획인구를 30만명으로 설정했지만 1944년 32만... -
1970년대 초 범내골 로터리 주변
부산이야기 2007-05-30
1970년대 초 범내골 로터리 주변은 도로를 건설하는 등 근대화사업이 한창이다. 범천(凡川)은 호천(虎川) 또는 범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 범천 계곡을 흐르는 냇가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불리어진 이름이다. 70년대 범내골 로터리 주변은 도심 내 준공업지역이었다.70년대 후반까지 범천2동에는 삼화고무, 동산유지, 철도차량 정비창, 각종 염색공장... -
60년대 후반 자성대 주변
부산이야기 2007-04-11
60년대 후반 자성대 주변은 도시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자성대는 임진왜란 이후 부산진첨사영터로 성곽이 아주 넓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자성대의 군사관련 시설을 파괴하고, 오늘날 부산진시장 쪽은 전차선로를 깔기 위해 성문과 성벽을 허물었다. 사진은 최근의 자성대 일대. 남쪽 바다는 메워서 뭍을 만들고, 북쪽은 도로와 시가지로 만들었다. 동쪽도 메워 주... -
60년대 후반 원동인터체인지 부근
부산이야기 2007-04-04
한가로운 강촌마을이었던 1960년대 후반의 수영강 일대.아래 사진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최근의 수영강변. 60년대 후반 수영강과 원동인터체인지 부근은 사람의 손 때가 묻지 않은 한가로운 강촌마을을 연상케 한다. 수영강은 총 연장 20km로 낙동강에 이어 부산에서 두 번째로 긴 하천이다. 강의 상류에는 부산시민의 식수를 공급하는 회동수원지가 있고, 하류에... -
60년대 중반 문현고개·대연동
부산이야기 2007-03-28
1966년 문현대연동 일대는 도로확장공사로 길은 넓게 뚫렸으나 한적한 어촌을 연상시킨다. 아래 사진은 최근의 문현대연동 일대. 1960년대 중반 문현고개와 대연동 일대는 한적한 어촌마을을 연상케 한다. 논과 밭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 계단식 논, 산, 바다가 그렇다. 문현고개는 일명 지겟골이라고 부른다. 지게는 마루나 바깥에서 방으로 드나드는... -
70년대 중반 서면로터리
부산이야기 2007-03-21
오륙도 형상의 부산탑이 우뚝 솟아 있는 1970년 대 중반 서면로터리 모습. 아래 사진은 빌딩 숲으로 변모한 최근의 서면교차로 일대. 서면에 교차로 형태의 로터리가 처음 생긴 것은 1957년이다. 1957년은 부산이 처음으로 중서동영도부산진동래 등 6개 구로 행정구역을 나눈 뜻 깊은 해다. 사진설명: 오륙도 형상의 부산탑이 우뚝 솟아 있는 1970년 대 ... -
1960년대 남부민동 해안가
부산이야기 2007-03-14
1960년대 방파제 공사를 끝낸 남부민동 해안가 모습(사진 위). 아래 사진은 부산종합어시장이 들어선 최근의 남부민동 일대. 충무동에서 남부민동에 이르는 해안부지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 제2기 남항매축공사 때부터 매립을 시작했다. 당시 공사를 맡았던 부산축항합자회사는 해안매립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남부민동 방파제 공사를 먼저 준공했다. 그러나 부산축항합... -
1952년 유엔묘지
부산이야기 2007-03-07
유엔묘지는 1951년 유엔군사령부가 창설했다. 1955년 유엔총회에서 ‘국제연합기념묘지’로 지명한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묘지다.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유엔은 안보리 결의를 통해 16개 국가가 참가하는 유엔군을 파견한다. 전쟁 초기 유엔군은 한국 지형에 익숙하지 않아 많은 사상자를 냈고, 인천, 대전 등 6곳에 임시 묘지를 설치한다. 1952년에 촬... -
영도다리 마지막 들어올리는 모습
부산이야기 2007-02-28
1966년 영도다리를 마지막으로 들어올리는 모습(사진 오른쪽)과 복원공사를 앞둔 현재의 영도다리. 영도는 구한말까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목마장이었다. 1876년 개항 이후 부산으로 이주한 일본인들과 생계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영도로 모여 들어 주거지로 변했다. 1890년 영도 사람들의 뭍 나들이를 위해 나룻배가 생겼다. 당시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