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는 이미 다양한 창업 지원 사업과 AI 관련 인프라가 존재합니다. 부산기술창업투자원, 창조경제혁신센터, AI 실증지원센터 등 여러 기관이 창업 생태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는 분명 지역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노력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지금 부산의 창업 지원 철학은 과연 AI 시대에 맞게 충분히 진화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여전히 창업을 이야기할 때 익숙한 방식부터 떠올립니다. 더 넓은 오피스, 더 많은 입주기업, 더 큰 클러스터, 더 많은 기업 유치, 더 큰 산업단지. 물론 이러한 물리적 인프라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미래 경쟁력이 보장되던 시대는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AI는 지금 경제의 생산성 단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사람을 계속 채용해야 했습니다. 기획자가 필요했고, 개발자가 필요했고, 디자이너와 마케터, 운영 인력까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최신 대규모 언어모델과 AI 에이전트, 자동화 툴을 활용하면 단 한 명의 창업자가 과거 10명, 20명, 경우에 따라 수십 명의 팀이 수행하던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솔로프리너(Solopreneur)’가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솔로프리너는 단순한 1인 사업자가 아닙니다. AI를 공동 창업자처럼 활용해 기획, 개발, 마케팅, 운영, 고객 대응까지 수행하는 초고생산성 창업가입니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생산성을 증폭시키는 파트너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KAIST가 추진하는 OverEdge 프로그램은 이러한 시대 변화를 정확히 읽고 있습니다.본 프로그램은 정송 KAIST 김재철AI대학원장, 배현민 KAIST 창업원장, 경계현 전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지난 1년간 브레인스토밍해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AI를 통해 1인 창업 시대를 열기 위한 새로운 실험입니다. KAIST는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는 1인 창업가 100명을 선발해 교육, 기술 고도화, BM 검증, 투자 연계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창업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한 사람이 하나의 기업이 될 수 있는 구조’를 육성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부산에도 필요합니다.
부산은 해양, 물류, 금융, 제조, 관광, 콘텐츠 등 AI가 적용될 수 있는 산업 기반이 매우 풍부합니다. 문제는 산업 기반의 부족이 아니라, 그 기반을 AI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전략의 부족일 수 있습니다.
이제 부산도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어떤 대기업을 유치할 것인가?”
“어떤 산업단지를 만들 것인가?”
이 질문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합니다.
“부산 시민 한 명 한 명의 생산성을 어떻게 AI로 증폭시킬 것인가?”
“부산에서 어떻게 1인 유니콘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인가?”
더 나아가, 지원 프로그램의 규모뿐 아니라 ‘무엇을 보고 가능성을 판단할 것인가’라는 평가 철학 자체도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AI 시대 이전의 창업 생태계에서는 팀 규모, 조직 구성, 사업계획서 완성도, 발표력, 정형화된 시장 분석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창업 지원 프로그램은 여전히 이러한 프레임 안에서 운영됩니다. 얼마나 깔끔한 IR Deck을 만들었는지, 얼마나 정교하게 시장 규모를 설명하는지, 얼마나 매끄럽게 발표하는지가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곤 합니다.
물론 이러한 요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AI-native 창업에서는 이것만으로 창업자의 잠재력을 충분히 평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문서를 잘 작성하는 창업가가 반드시 뛰어난 창업가인 것은 아닙니다. 발표를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시장을 혁신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앞으로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창업가는 AI를 활용해 기존보다 10배 빠르게 실험할 수 있는가?
이 창업가는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10명이 하던 일을 1명이 수행할 수 있는가?
이 창업가는 제한된 자본과 인력으로도 글로벌 수준의 제품을 빠르게 출시할 수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의 핵심 평가 기준이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평가 역량의 고도화입니다. 이는 특정 심사위원 개인의 역량 문제 이기도 하지만 , AI 기술 발전 속도가 기존 평가 체계의 진화를 앞지르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에 가깝습니다.
AI 에이전트와 대규모 언어모델은 불과 2~3년 만에 창업의 본질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 산업 경험만으로 AI-native 비즈니스 모델의 잠재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특히 솔로프리너형 창업은 더욱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작은 1인 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AI를 활용해 과거 수십 명 규모 조직에 준하는 생산성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심사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팀이 작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저평가될 위험이 있습니다.
미래를 평가하는 기준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부산은 가장 혁신적인 창업가들을 스스로 놓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부산이 진정 AI 시대를 선도하고자 한다면, 지원 프로그램뿐 아니라 선발 및 평가 체계 역시 AI-native 방식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기존 산업 전문가뿐 아니라 frontier AI practitioner, AI founder, agentic workflow 전문가 등 최신 기술 변화에 직접 노출된 평가 인력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부산시가 ‘AI 솔로프리너 100’ 프로그램을 추진할 것을 제안합니다. AI 에이전트 교육, GPU 및 클라우드 인프라 지원, 창업 멘토링, 초기 사업화 자금, 투자 연계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제공해 부산을 대한민국 최고의 AI 솔로프리너 도시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부산의 미래는 단지 더 많은 건물을 짓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산성을 극적으로 확장시키는 AI를 통해, 한 사람이 하나의 기업이 되는 시대를 준비하는 데 있습니다.
부산이 AI 시대를 선도하려면, 이제는 기업만 키우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 자체를 증폭시키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