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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포

석포는 등하천 옆에 있던 포구로, 등하천에 돌이 많아 돌 "石"자와 포구 "浦"자를 합하여 석포라고 불렀다. 돌개라고도 부른다.『신증동국여지승람(1530)』산천조에 의하면, 석포에는 목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동래부지(1740)』산천조에 의하면, 석포는 부의 남쪽 23리에 있으며 목장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1759년에 간행된『동래부지』에는 옛날에 목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옮겼다고 하였다.『동래부지(1740)』방리조에는 "석포리는 남촌의 관내에 있으며, 관문에서 27리 거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04년에 간행된『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에 의하면, 남하면 관내에 석포동이 있다. 당시 석포동의 호수는 10호고, 10호 모두가 정씨이다.

석포에는 오래 전부터 동래 정씨가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1530년 무렵 동래성의 수문장인 정복덕의 아들 정춘세가 동래에서 수영을 거쳐 용소마을로 이주해 살았다고 한다. 석포는 천제등(부산공고 뒷산 일대)과 전선등(남부운전면허시험장 일대)사이에 있던 한적한 포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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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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