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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임시수도 거리를 둘러보며

내용

▲ 임시수도 기념거리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학동의 조형물


부산광역시는 한국전쟁 당시 1023일 동안 대한민국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서울에 있던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와서 임시수도가 되었다. 부산 서구 임시수도 기념관(이하 기념관)에서 도시철도 1호선 토성 역까지를 임시수도 거리로 조성하였다. 피란생활을 상징하는 조형 계단과 조형 벽면, 당시 학교가 없어서 길거리에서 공부하던 학동 조형물이 돋보인다.

 


▲ 임시수도 건물 전경. 사람들이 문화해설사로부터 기념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기념관은 국가지정문화제 사적 제 546호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1926년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로 지어진 2층 건물이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하였다. 임시수도가 서울로 환도를 하고 경남도청이 이전 후 1984년 6월 25일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개관을 하였다. 피란 수도 부산의 역사적 발자취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필자가 이곳 기념관을 찾아간 날 부산광역시 기장군 어르신들을 모시고 이곳 기념관을 찾아 오셨다. 날씨가 쌀쌀하여 어르신들의 옷차림도 두툼한 겨울옷으로 치장을 하고 기념관을 관람하시고 있다. 단체로 오셨기에 문화해설사가 어르신들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 이대나무의 특이한 모습


이대나무는 벼과이다. 대나무의 껍질은 단단하고 긴 털이 누운 형태로 빽빽이 나 있으며, 까슬까슬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 중부 이남에서 자라고 있다. 높이 2-5m, 지름 0.5-1.5cm이다. 줄기는 마디가 적고 마디 사이가 길다. 보통 위쪽 1개의 마디로부터 가지가 1개씩 나온다.

 

 

▲ 임시수도 전시관의 전경


기념관 뒤편에 있는 임시수도 전시관은 1987년 9월에 개원한 부산고등검찰청의 검사장 관사로 건축된 건물이다. 2001년 검찰청과 법원이 연제구 신청사로 이전을 하게 되자 기념으로 부속으로 확장 개편하였다. 2012년 전면 리모델링 공사를 하여 한국전쟁기 임시수도 부산의 위상과 역사를 전시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 부산이라는 거대한 도시로 태어남을 이해할 수 있다.

 

 

▲ 전시관 내 부산국민학교 가건물 축소판


한국전쟁 당시 국제시장은 ‘도떼기시장’이라고 불렀다. 귀환동포들이 생계를 위해 노점을 차리고 일본인들이 남기고 떠난 가재도구를 거래하면서 시장으로 출발을 하였다. 1948년 목조건축물이 건립을 하면서 ‘자유시장’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미군물자도 이때부터 흘러들어와 통조림, 기계부속, 청과, 양곡, 잡화 등이 거래를 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한국전쟁 중에서도 국제시장은 더욱 활기를 찾았다. 서울, 이북 피란민들이 시장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작성자
조분자
작성일자
2019-12-08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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