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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004호 기획연재

암벽 때리는 시원한 파도 소리, 음악은 잠시 꺼두셔도 됩니다

함께 걷는 부산 길 ④770km 해파랑길 시작, 이기대 해안산책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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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해맞이공원은 770㎞ 해파랑길과 1천463㎞ 남파랑길이 만나는 곳이다(사진은 유채꽃이 피기 시작한 오륙도해맞이공원).


‘시작이 반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770km 해파랑길의 시작인 오륙도해맞이공원은 이 격언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 중 하나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박물관·공연장 등이 임시 휴관에 들어간 지난 3월, 늘 1장부터 공부하는 수험생의 마음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파랑길 첫 코스를 찾았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4월 절정을 맞이하는 유채는 벌써 노란 꽃망울을 드러냈다. 봄은 느리지만 그렇게 오고 있었다.


· 코스: 오륙도스카이워크~이기대 자연마당~농바위~치마바위~이기대 어울마당-옛 구리광산~이기대 동생말
· 소요 시간: 약 3시간


해파랑길·남파랑길 만나는 오륙도해맞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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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쓴 채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부산 갈맷길,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우리나라에는 역사·문화·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걷기 좋은 길이 많다. 다양한 걷기 코스 중에서 오륙도해맞이공원은 특히 중요하다. 770km 해파랑길과 1천463km 남파랑길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에 펼쳐진 다양한 걷기 코스 중 동해·남해·서해·비무장지대 지역을 잇는 길을 모아 ‘코리아둘레길’로 지정했다. 그 첫 번째 코스인 해파랑길(동해안 코스)은 지난 2016년 개통했는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770km에 걸쳐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해파랑’은 동해에 떠로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코스인 남파랑길(남해안길)은 올해 전체 개통 예정인데,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까지 이어지는 1천463㎞ 90개 구간이다. ‘남파랑’은 남해안의 상징인 쪽빛 바다를 의미한다. 동해와 남해가 나뉘는 곳, 오륙도에서 길은 그렇게 양쪽으로 또 만나고 헤어진다.

오늘의 걷기 노선은 해파랑길 1코스 중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이기대 동생말까지 이어지는 이기대 해안산책로다. 원래 해파랑길 1코스는 오륙도해맞이공원을 출발해 광안리해변을 지나 해운대 미포까지 17.8km에 이르지만, 가벼운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이기대 동생말까지 걷는 단축코스도 인기다.


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오륙도해맞이공원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스카이워크로 이어진다. 지난 2013년 개장한 오륙도 스카이워크는 부산에 생긴 첫 번째 공중보행로이다. 35m 해안절벽 위에 바닥이 투명한 유리 다리가 15m 이어진다. 고작 15m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다리 아래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자면 다리가 후들거려 한 걸음 떼기도 쉽지 않다. 오륙도 스카이워크는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우리나라 대표 관광명소 중 하나다. 평소에는 유리 다리 위에서 각가지 포즈를 취하는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스카이워크는 임시 휴관 중이었다. 아쉬움 속에 스카이워크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한다.


의로운 기녀들 전설 품은 이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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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수선화가 곱게 핀 `이기대 자연마당.


오륙도 스카이워크를 내려와 맞은편에 자리한 약간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해파랑길 안내 사이트인 두루누비(www.durunubi.kr)에는 코스 난이도가 ‘쉬움’으로 표시돼 있지만 잘 포장된 도시 길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시작부터 쉽지 않다. 숨이 차오를락 말락 할 때쯤 ‘이기대 자연마당’에 도착한다.

오륙도가 시원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자연마당은 평지이고 곳곳에 의자와 화단이 있다. 코로나19로 학교와 유치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마스크를 쓴 채 즐겁게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노란 수선화와 이제 꽃망울 맺기 시작한 유채꽃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분위기다. 여기서 코스가 끝이라면 좋으련만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알리는 표지는 이제 시작된다.

종종 대학 이름을 오해하기도 하는 ‘이기대’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이기대(二妓臺)’라는 지명은 경상도 좌수사 이영하(1849, 12.30∼1950.8.21. 재임)가 쓴 좌수영 역사·지리 기록지 ‘동래영지’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향토학자인 최한복(1895~1968, 수영출신) 씨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영성을 함락하고 축하연을 열자 두 명의 의로운 기녀가 적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을 소개하며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다.

전설을 품은 이기대 해안산책로는 오륙도 방향에서 출발하면 거의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오르막길이니 오륙도에서 출발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등산을 잘못하는 기자는 발끝에 힘을 주느라 잠시 놓쳤지만 사실 이 길은 걷는 모든 순간이 절경이다. 오른편으로는 파란 바다 위로 암벽에 부딪힌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촤 촤 촤”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왼편으로는 이름 모를 나무와 꽃이 신록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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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방향에서 출발하면 이기대 해안산책로는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산길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염원하던 때, 다행히 산길이 끝나고 이번엔 나무데크 계단이 맞이한다.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들은 이제 끝이라며 환호성을 지른다. 여기서는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 때문에 바깥에도 못 나가고 여간 답답해야 말이죠. 이곳은 바닷바람이 세니 바이러스도 날려버릴 것 같아요.”
선글라스와 마스크가 곱게 잘 어울리는 70대 어르신들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행하듯 온몸을 땀으로 적신 채 혼자 걷는 사람, “요즘 운동이 너무 부족해”라며 함께 나온 가족, 친구들과 단체로 방문한 어르신,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 꽃 이름 풀 하나 찬찬히 살피는 노부부….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거의 자체 격리된 요즘, 사람들은 숨 쉴 공간을 찾아 그렇게 이 길을 찾고 있었다.


숨겨진 이정표를 찾아라, 농바위·치마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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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을 닮은 `농바위'. 부처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돌부처상 바위' 또는 `돌부처 바위' 라고도 불린다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좀 더 재미있게 걷는 방법이 있다. 농바위·밭골새·치마바위 등 코스 중간중간에 자리한 기암괴석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기대는 태종대·낙동강 하구·몰운대 등과 더불어 국가지질공원이다. 해안가를 따라 발달한 해안절벽과 파도와 바람에 침식돼 생긴 파식대지가 장관을 이룬다.

첫 번째 만날 것은 ‘농바위’. 농을 올려놓은 듯 두 개의 바위가 포개져 있어 가장 알아보기 쉽다. 중간에 농바위 전망대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농바위의 유래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발령으로 상투를 틀지 않게 되자 말총으로 갓을 만들어 팔던 제주 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때 제주를 떠난 해녀들이 부산에 자리 잡아 이기대와 영도 등에서 활동했는데 서로의 연락을 위해 이정표에 이름을 붙이던 중 농바위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농바위는 부처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돌부처상 바위’ 또는 ‘돌부처 바위’ 라고도 불린다. 고기잡이 나간 배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다음 찾아볼 곳은 `치마바위'. 한복 치마를 펼친 모습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 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라 찾기가 쉽지 않다. 대신 발견한 것은 해안가 곳곳에 자리한 초소. 이기대는 해상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한 군사지역으로 오랫동안 일반 시민의 출입이 금지됐다. 지난 1993년에야 민간에 개방됐으며 2005년부터 산책로를 조성해 오늘날 부산을 대표하는 산책로가 됐다. 아직 간간이 남아있는 초소와 철책이 이곳이 군사지역이었음을 말해준다.


천만 관객 영화 ’해운대‘ 촬영지 이기대 어울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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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관객영화 `해운대' 촬영지인 이기대 어울마당. 모처럼의 나들이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나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반갑게도 제법 넓은 평지 ’이기대 어울마당‘이 나타난다. 바다를 마주한 스탠드가 있어 광안대교와 맞은편 해운대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기 좋다. 매년 가을 불꽃축제와 새해 해맞이를 감상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해운대‘에 어울마당에서 바라본 야경이 등장하며 더 유명해졌다. 바다를 마주한 어울마당 한쪽 끝에는 ’영화 해운대 촬영장소‘라는 표지판도 마련돼 있다. 어울마당은 이기대 주차장과도 가까워, 차를 타고 와 잠시 소풍을 즐기는 시민이 많았다. 산길이나 계단이 부담스럽다면 이 코스를 선택해도 좋겠다.

어울마당을 지나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동생말이 가까워지며 마음과 발걸음이 함께 가벼워진다. 이번에 만날 곳은 옛 구리광산 터다. 일제강점기 이기대 일대에는 5개의 구리광산 갱도가 있었다. 표지판이 있는 곳은 2호 갱도가 있었던 곳인데 수평 550m, 수직 380m까지 파 내려갔다고 한다. 구리광산을 지나 해안가로 내려가면 해녀들이 어구를 보관하고 잠수복으로 갈아입던 옛 해녀막사 터가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녀들이 직접 잡은 해산물을 즉석에서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철거돼 막사터만 볼 수 있다.

다시 올라와 여정을 이어간다. 코스를 시작했을 때와 달리 오르내리는 길이 없이 이제야말로 가벼운 하이킹 느낌이 난다. 구름다리를 몇 번 건너 아직 체력이 더 남았다고 생각하던 중 어느새 동생말 전망대에 도착했다. 동생말에서 이제 코스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전망대에서 기념사진만 촬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기양양하게 완주의 기쁨을 누렸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고 했던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름 모를 꽃은 길 내내 함께하고 있었고, 스트레스를 날리는 시원한 파도 소리에 걷기를 위해 특별히 준비했던 음악은 틀어보지도 않았다. 해파랑길 1코스의 끝인 해운대 미포까지도 걸어갈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에너지도 넘친다.
괜히 답답하고 위로가 필요한 어느 날, 파도 소리와 초목이 함께하는 해파랑길을 걸어보자. 걷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더 넘치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는 법:
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 3번 출구 → 시내버스 24, 27, 131번 승차 → 오륙도스카이워크 정류장 하차
4~12월에는 동생말 전망대에서 도시철도 1호선 경성대·부경대역까지 남구 마을버스 2번을 운행한다.


글·하나은/사진·권성훈


1. 함께 걷는 부산 길'은 시민·해설사·기자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다양한 길을 걸으며 길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 공간입니다. 참여를 원하는 시민은 매월 10일까지 다이내믹부산 편집부(051-888-1291∼8) 또는 이메일(naeun11@korea.kr)로신청해 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께는 개별로 연락드립니다.

단, 이달의 걷기는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거리 두기 기간 연장으로 시민 참여 없이 진행할 예정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2. 남구는 오륙도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오륙도 주변과 이기대 해안산책로 구간에 문화관광해설을 운영합니다. 방문 10일 전까지 전화 신청. 남구청 문화체육과 (051-607-4821∼3) 

 

작성자
하나은
작성일자
2020-04-0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04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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