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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105년 역사 … 부산 최고 명성 혼수전문 ‘부산진시장’

한복·섬유·문구·액세서리 넘쳐나는 이웃 ‘남문시장’

내용

부산진시장 

 

진시장의 추억들


“부산진시장….”

길남 씨는 부산진시장을 하루에 한 번씩은 마주친다. 대연동에 사는 그는 서면 쪽이든 남포동 쪽이든 어딘가로 흘러갈 때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 자성대를 지나는 사거리에서 그는 부산진시장 건물의 그 굉장한 위용을 매일 확인한다. 그런데 그 ‘매일’이 문제다. 하루하루가 쌓여 1년·10년·30년 매일 확인하다 보니 그곳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시장으로 여길 뿐, 시장 속을 들여다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길남 씨는 부산진시장에 대한 추억이 많다 못해 넘치고 흐르는 지경이다. 그럼에도 그간 왜 그리 무심했던 것일까?

 

부산진시장에 대한 길남 씨의 추억은 바나나로부터 시작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바나나는 엄청난 과일이었다. 감히 평소에 맛볼 수 없는 꿈의 과일을 구경하는 것만 해도 감동이던 시절…. 길남 씨는 부산진시장에서 그 맛을 처음 볼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범일동 철도로 향하는 부산진시장 곁의 길은 부평깡통시장처럼 수입물품을 판매하는 또 하나의 메카였다. 이모의 결혼식 예단을 맞추러 들렀던 날, 수많은 가게들 속에 번쩍번쩍 빛나던 옷감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꼬마딱지가 그런 옷감에 만족하겠는가? 시장 건물을 나와 걸었던 철도 쪽 길가의 외국과자와 바나나, 파인애플의 향연! 마치 해외여행을 간 듯한 착각에 몸부림치는 어린 길남이를 어머니는 비싼 바나나 한 꼭지로 달랬다.

 

청소년 길남이는 금성고등학교를 모교로 둔 이유로 3년간 그 외국 길을 또 뻔질나게 다녔다. 영화 ‘친구’에서 주인공들이 열나게 뛰어다니던 시장길이 익숙했던 이유도 그런 이유다.

 

길남 씨는 이번 부산진시장 취재에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105년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진시장과 그 곁에서 형제처럼 지키고 있는 남문시장을 살피다 보니 욕심이 한도 끝도 없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곳을 다루는데 자성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자면 영가대(永嘉臺)를 빼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걷는 김에 좌천가구거리와 연결되는 철교를 말하지 않을 수 없고, 굴다리로 연결되는 매축지 마을까지 레이더에 걸려드는 마당에 철도 등굣길에서 매일 마주치던 동여고 여학생의 수줍은 웃음까지 소환되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하나 눈앞에 있는 것부터 처리해야 하는 법! 지면이 모자라면 다음 기회에 쓸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부산진시장은 위치적 특성 덕분에 부산 상권 중심가로 평가받고 있다.

▶ 부산진시장은 위치적 특성 덕분에 부산 상권 중심가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진시장 105년의 역사 

우선 길남 씨는 부산진시장이 자랑하는 105년의 역사에 대해 다뤄야 한다. 일단 그는 연제구 거제리 일대를 부른 옛 지명인 ‘홰바지’란 말에 주목한다. 원래 부산은 동래부가 위치한 동래성과 부산진성부터 초량왜관, 그리고 다대진까지의 지역이 합쳐져 생긴 지역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통행하던 옛길을 살펴보면 동래부에서 한성을 연결하는 영남대로가 있고 현재 부산으로 일컫는 지역 안에서의 여러 갈래 지선(支線)이 형성돼 있었다.

 

그 지선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홰바지’의 의미에는 여러 해석이 따라붙는다. ‘횃불을 들고 사람들을 기다렸다’는 해석이 가장 보편적이다. 그렇다면 왜 횃불을 들고 기다렸을까? 동래부 부근의 사람들이 볼일을 보기 위해 부산진 부근까지 걸어왔다 돌아가는 시간이 거의 해질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부산진시장이 공식적인 오일장으로 거듭나기 전에도 부산진 부근은 상권이 발달한 곳이었다. 인근 ‘초량왜관’을 위시했기 때문일 터.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만든 최초의 일본인 거류지와 대형 공장이 초량왜관 일대와 부산진 부근에 형성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부산진시장은 부산을 두 개로 나눴을 때 그 중심에 있는 주요 거점이었다. 부산 상권의 큰 맥을 잇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곳이란 이야기다.

 

부산진시장은 1913년 9월 132㎡와 198㎡짜리 2동의 함석 상가를 지어 매일 열리는 상설시장이 됐다. 시장은 그 위치에서 수명과 역할을 가늠할 수 있는 법이다. 부산진시장은 계속 성장했고, 1967년에 공영시장에서 민영시장으로 탈바꿈했다. 1993년 5월 시장 상인들이 290억 원의 사업비를 마련해 동시 주차 1천대 규모의 주차빌딩을 건립하면서 현대화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7년 8월 냉·난방 및 환기시설을 완비하고 2002년부터 외벽 및 마감 리모델링·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교체 및 설치·인터넷 홈페이지 구축· 고객편의 수유실 마련 등의 사업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사실 부산진시장에 대해 설명하자면 조선방직이란 공장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부산진시장 부근을 통틀어 칭하는 명칭이 아직 ‘조방 앞’인 것만 봐도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부산진시장이 혼수·섬유·의류를 주로 다루는 포목점 전문 시장인 것도, 근처 평화시장·자유시장이 의류·신발을 주력으로 다루는 것도 모두 조선방직의 영향이다. 이중 부산진시장은 서울 동대문 시장과 대구 서문시장에 비견될 정도로 막강한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자성대 부근을 비롯한 주변 상가가 온통 재봉틀 전문점·혼수 한복 전문점·승복 전문점이란 점에 비춰보면 부산진시장의 위상은 아직도 건재하다. 길남 씨의 대학 시절에도 학과 행사에 쓸 대형 천이 필요할 때는 무조건 부산진시장으로 가곤 했다.

 

 

 

 

혼수품으로도 유명한 부산진시장에는 그릇 가게가 다수 입점해 있다(사진은 판매용 제기를 닦고 있는 한 상인의 모습).

▶ 혼수품으로도 유명한 부산진시장에는 그릇 가게가 다수 입점해 있다(사진은 판매용 제기를 닦고 있는 한 상인의 모습).

 

 

 

나란히 서있는 형제 ‘남문시장’ 

 

부산진시장 건물 왼편에는 형제 같은 남문시장이 있다. 시장 건물 일부와 건물 왼편 골목을 남문시장이라 일컫는데, 섬유·한복·문구·액세서리 등을 다루는 상점이 대부분이다. 시장은 골목으로 연결돼 매축지마을로 향하는 다리 부근까지 흔적을 남긴다.

부산진시장의 규모와 유명세가 워낙 큰 편이라 많은 사람은 남문시장을 부산진시장으로 오해하고 찾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대접을 받기엔 영 섭섭하다. 지난 시절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곳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많은 영화가 이 부근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부산진시장을 비롯한 자성대 인근 상가에는 미싱 전문점·혼수 한복 전문점·귀금속 전문점이 즐비하다. 서울 동대문시장과 대구 서문시장에 비견될 정도로 막강한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

▶ 부산진시장을 비롯한 자성대 인근 상가에는 미싱 전문점·혼수 한복 전문점·귀금속 전문점이 즐비하다. 서울 동대문시장과 대구 서문시장에 비견될 정도로 막강한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

 

 

역사와 공존하는 공간, 부산진시장 부근을 걷다 

 

길남 씨는 어느 일요일 가족과 함께 자성대를 찾았다. 매일 그렇게 지나쳤지만, 계단을 올라 자성대공원의 꼭대기 망루에 올라가 보니 감회가 깊다. 세상에나!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부산시민회관에서 만화영화 한 편 감상하고 올라가 보고는 처음이니 이곳에 들른 지가 30년이 넘는 셈이다.

 

자성대공원은 차가 다니는 대로로 둘러싸였지만, 3분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끄러운 차 소리 대신 새 소리가 들려온다. 공원 안은 어지간한 고궁보다 고즈넉하고 고풍스럽다. 솔향이 풍기는 길에서 부산항 풍경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부산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간은 버려둔 채 다른 동네에만 고개를 돌리는 현실이 살짝 안타깝다.

 

길남 씨는 비가 살짝 내리는 어느 저녁에도 혼자서 부산진시장을 찾아갔다. 그날은 추억을 왕창 소환시킬 작정으로 나선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니 몇 십년간 항상 그랬듯 시장 건물과 찻길 사이의 좁은 인도가 상인들과 행인들로 넘쳐난다. 어묵·호떡·군밤 등 군것질거리 행상이 몇십 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늘어서 있고, 계단과 난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할머니·아주머니 행상들이 앉아 생선·건어물·채소를 판매한다.

 

그는 부산진시장 건물 1층의 화려한 혼수점과 포목점으로 들어갔다가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이불 가게가 끝도 없이 연결되다 칠기 등 그릇이 번쩍이더니 어느새 커튼 가게가 나오고, 혼수용품이 정신을 차릴 새 없이 등장한다. 미로와 같은 시장건물은 어딜 가나 다른 품목의 상점들이 버티고 앉아 있다. 백화점과는 다른 시장 건물의 매력이 듬뿍 느껴진다.

 

길남 씨는 남문시장 정문으로 나와 매축지마을 쪽 영가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영가대는 동구 범일동 경부선 철로변에 있던 유적을 복원한 곳이다. 일본에 파견됐던 조선통신사행과 관련이 깊은 명소다. 자성대공원에 복원돼 있지만, 실제 장소는 철도 옆 담과 다닥다닥 붙은 주택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다. 담에 붙은 초라한 철문을 열면 버려진 공터가 나오는데, 영가대의 기념비가 버려진 듯 남겨져 있다. 길남 씨는 슬퍼지기 시작한다. 부산을 탐방하다 보면 으레 그렇듯 흘러나오는 감정이다.

 

그는 어둑해질 무렵 화려했던 옛 모습을 묻어놓은 영가대의 흔적을 뒤로 한 채 쓸쓸한 걸음을 걷는다. 걸음은 좌천 가구거리로 이어지는 철교로 향한다. 허치슨부두·매축지마을·고가도로와 철교가 한데 뭉쳐져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선사한다. 옛것들이 사라질 듯 버티며 고층빌딩과 공존하는 이곳…. 부산의 현재를 그대로 상징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부산진시장 인근에는 자성대 공원이 있다. 차 도로에 둘러싸인 것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 부산진시장 인근에는 자성대 공원이 있다. 차 도로에 둘러싸인 것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긴 세월 지켜온 부산진시장


부산진시장은 자신의 모습을 지키면서도 바뀌는 세월에 잘 적응해 왔다. 이곳을 지키고자 했던 상인들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길남 씨는 부산진시장이 앞으로도 105년을 더 버틸 수 있는 시장이라 믿는다. 슬프면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다.

 

길남 씨는 이런 감정으로 바로 집에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부산진시장 앞 육교에서 건너편으로 내려가 최근 재단장한 40년 역사의 술집 ‘마라톤’ 앞에 선다. 차가운 계절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따뜻하게 데운 정종과 이 집의 명물 해물파전인 ‘마라톤’을 시키는 길남 씨.

 

그는 정종을 한 잔 마시며 오늘 부산진시장 상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을 떠올려본다.

 

“그라이까 내가 여기서 장사한 게 30년 전이가…? 아니, 40년 됐나…?”

배길남 기사 입력 2018-12-12 부산이야기 12월호 통권 146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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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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