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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동헌 담장 넘어 꽃피웠던 상것들의 세상, 그곳에 길이 있었네

한 번쯤 이 곳 - 동래시장

내용

그곳에는 장돌뱅이의 피가 흐른다. 커다란 봇짐을 지고 장터를 떠돌며 전을 펼쳤던 이들의 거친 숨소리와 씩씩한 걸음이 살아 퍼덕인다. 팔도를 유람하며 귀동냥했던 소문과 이야기를 풀어놓던 골목, 손님을 끌어모으던 흥과 신명이 골목 어귀에 새겨져 있다. 그곳은 소란스럽다. 사람들은 크게 소리 지르고, 박장대소하고, 느닷없이 드잡이한다. 천 원 한 장에 시비가 붙고, 동전 한 닢에 마음이 다치기도 한다. 다친 마음도 시장에서 달랜다. 정구지 지짐 한 장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족하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값 비싼 명품 브랜드가 없어도 이곳은 세상 만물이 모여들고 흐르고, 섞이고, 한데 나아간다. 느리게, 천천히 꿈틀거린다. 부산의 시장이 시작된 곳, 동래시장이다. 

 

동래시장을 지키고 있는 상인 중에는 유독 나이든 어르신이 많다. 이들은 동래시장을 지켜온  증인이자 산역사이기도 하다. 

▲동래시장을 지키고 있는 상인 중에는 유독 나이든 어르신이 많다. 이들은 동래시장을 지켜온 증인이자 산역사이기도 하다. 

 

동래시장은 조선시대 동래읍성 5일장에서 유래했다.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시간의 퇴적은 땅과 하늘을 바꾼다. 수백년 동안 상인이 오고가고, 거래가 이루어지고, 물산이 오고가던 이곳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상인의 땅이다. 시장 어귀에서부터 좁은 골목 사이 샛길에도 조선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상인의 피가 흐른다. 

 

동래시장 입구는 여느 시장과 다르다. 고풍스런 분위기가 이곳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시장 입구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에 위치한 동래부동헌부터 들러야 한다. 동래는 부산의 역사를 모두 품고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공단과 장관청 같은 조선시대 건축물에서부터 동래향교, 복천박물관 등 부산 역사를 간직한 공간들이 가득하다. 동래부동헌과 송공단, 장관청같은 유적지를 지나 동래시장으로 가는 길은 도저한 역사 속으로 뛰어드는 길이다.

 

동래부동헌 담장이 보이는 시장 점포 

▲동래부동헌 담장이 보이는 시장 점포. 

 

인간 삶 지탱하는 의식주 판매

 

5일장이었던 동래시장은 일제강점기 때 상설시장이 되면서 부산 제1호 공설시장으로 지정됐다. 이후 교통문제 등으로 인해 1937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이 때 동래시장 건물이 처음 지어졌다. 동래시장은 광복 후 1955년 부산공설시장으로 승격했는데 1968년 대형화재로 건물 전체가 불에 탔다. 2년간의 공사 끝에 지금의 동래시장 건물을 지었지만 1972년 다시 한 차례 불이 나면서 시장 2층을 태웠다. 현재 동래시장 건물은 두 번의 화마가 삼킨 잿더미 위에 세워졌다. 시장의 강인한 생명력이 불 탄 자리에 새롭게 장터를 피워올린 것이다. 

 

시장 1층은 식당가다. 밥 시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점포마다 놓인 간이의자에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칼국수, 김밥, 당면, 보리밥, 국밥.   오래된 골목처럼 메뉴는 조촐하지만,  맛의 깊이는 이곳의 시간만큼 수굿하게 단정하다. 시간이 익힌 소박하고 깊이있는 맛은 동래시장의 자랑이다.

 

시대와 호흡하며 유구히 이어져

 

동래시장은 부산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오랫동안 부산 장날을 주름잡았다. 그러다 초량에 큰 왜관이 생기고 세를 뺏기면서 규모가 작아졌다. 그러나 장꾼들의 땀과 눈물로 일구어진 유서 깊은 시장의 명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동래시장은 시대의 변화와 호흡을 함께 하며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왔다. 지난 세월동안 동래시장은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외형을 바꿔왔다. 시장에 입점한 점포의 구색은 변화의 산 증인이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가 이곳에 모여있다. 1층이 식(食)의 공간이라면, 2층은 의(衣)의 공간이다. 동래시장의 2층 의류 코너는 소박하면서도 멋이 흐르는 옷집들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옷뿐인가. 옷과 어울리는 다양한 액세서리와 가죽신 등의 수제품들이 눈길을 끈다. 지금의 동래시장은 세월이 할퀴고 간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새롭게 일군 역사와 전통의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을 나와 골목을 돌아 동래부동헌 담장을 따라 내려가면 다시 커다란 시장이 시작된다. 동래시장의 동생격인 수안인정시장(壽安人情市場)이다. 수안동이라는 행정지명과 인정이라는 보통명사가 함께 붙은 시장의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옛 동래읍 장터, 동래시장에서 자연스레 연결돼 확장된 수안인정시장은 좁은 골목을 중심으로 상가점포가 연결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동래시장 아우 수안인정시장

 

수안인정시장과 동래시장은 서로 닮았으면서 또한 다르다. 동래시장은 건물 안에 비슷한 점포가 밀집되어 있는 반면 수안인정시장은 살짝 미로 같은 골목이 이어져 있다. 좁은 골목에는 이름 없는 맛집들이 숨어 있다. 국밥, 분식, 족발, 통닭 등 서민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싸고 푸짐한 밥집은 시장의 풍경을 가장 시장답게 만든다. 좁은 골목을 찾아 들어간 맛집은 빈부와 신분의 격차없이 공평하게 객을 맞는다. 그 고요하고 한결같은 환대는 낮고 따스하고 정겹다. 수안인정시장에는 외국의 유명 음식점 평가 사이트는 결코 찾아낼 수 없는 보석같은 맛집들이 은하수처럼 흐른다. 

 

골목 안 숨은 맛집 가득

 

무명(無名)으로 유명(有名)을 능가하던 맛집과 그곳을 품은 골목은 디지털 입소문을 타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SNS의 확산으로 점점 유명해져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올 정도가 됐다. 유명세는 공간의 풍경도 바꾼다. 좁은 시장골목은 일요일 저녁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 앞에는 긴 줄이 생겼다. 허름한 분식집 앞에 한 눈에 봐도 여행자로 보이는 다섯 명이 사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사정을 한다.  

 

"아저씨, 여기 짜장면 맛있다고 해서 먼데서 왔어요."

 

"저희까지만 파세요. 예? 아저씨?"

 

문을 닫으러 나왔던 사장님은 난처한 얼굴이다. 멀리서 온 손님을 야박하게 돌려보내야 하는 안타까움이 얼굴에 가득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미 그날 준비한 재료는 다 떨어졌다.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 가게 주인은 못내 미안한 표정으로 먼길을 찾아온 손님들을 달랜다.

 

"미안함미더. 다음에 오이소. 아니, 내일 오이소. 내 진짜 맛있게 해드리께예."

 

그래, 이거다. 이것이 시장이고, 이것이 장터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물건과 돈을 주고 받는 곳으로 시장말고 무엇이 있을까. 배고픈 사람, 가난한 사람, 외로운 사람의 아픔을 달래주는 곳 또한 장바닥이다. 사람들은 장터로 모인다.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는 시장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만은 아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과 인정을 나누고 다독이는 곳이기도 하다.

 

동래시장의 숨은 맛집. 

▲동래시장의 숨은 맛집. 

 

동래시장은 시장이면서 역사다. 유구한 시간 위에 터를 잡고 서민들의 생활사와 미시사를 증언해주는 생생한 현장이다. 좁은 골목과 오래된 점포, 낡은 가게를 지키고 있는 나이 많은 상인들은 한 시대를 증언한다. 옛 동래읍성의 성곽을 따라 이어진 발걸음들이 만들고 지켜온 이곳은 상것들이 만든 새로운 삶의 길이었다. 지난 시간은 사라지고 없지만, 새 길은 사람을 통해 새롭게 이어진다. 역사와 전통이 사람들이 숨 쉬는 삶과 섞여있는 곳. 동래시장과 수안인정시장은 우리 안에 살아있는 부산의 역사와 전통이 만나는 곳이다. 

글·김영주/사진·김성기 기사 입력 2018-10-31 다이내믹부산 제1848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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